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딸내미가 망한 집 장남을 만난답니다

쫄딱 망한 집 첫째 아들은 딸 가진 부모들에게 경계 대상 1호가 된다.


귀하게 키운 내 딸이 망한 집 장남이랑 잘못 엮여 스스로 팔자를 꼴까 봐서다. 딸내미가 혹여라도 가난한 집에 시집이라도 가게 되면 평생 시댁 뒤치닥 거리는 따놓은 당상이요, 돈 고생 마음고생에 인생사 고달파지는 건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없는 집 장남인  한때 만났던 여자가 있었다. 이 여자는 외할머니부터 그 옛날에 서울대학교를 나온 의사에다가 부모도 서울대 출신의 의사였고, 외가 식구들이 죄다 서울대 출신일 정도로 소위 말하는 인텔리 집안이었다. 그에 반해 우리 집은 부모가 서울대 출신도 아니거니와 경제적으로도 폭망한 상태였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의 관점으로 누가 봐도 쳐지는 집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별로 주눅이 들지도 위축되지도 않았다. 우리 집은 비록 집도 절도 없는 신세였지만 자라면서 엄마에게 받은 끔찍한 사랑이 있어 내 안에 모종의 자존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여자에게 우리 집이 망한 상황에 대해 숨김없이 이야기했고 다행히 그녀도 내 조건 때문에 나를 얕잡아 보거나 대번에 이별 선언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여자가 대뜸 나에게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를 물어왔다. 연인 사이에 생일을 묻는 경우는 있어도 생시(生時)를 묻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이게 무슨 일일까. 알고 보니 이 여자의 엄마와 외할머니가 서래마을의 유명한 무당에게 가서 내 사주팔자와 여자와의 궁합을 보려는 것이었다. 당시로서 사귄 지 겨우 한 달이 넘었고 혼담이 오간 것도 아니었는데 이러한 요청은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당시 나의 운기는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지는 형국이었으니 내 짐작에 점괘는 당연히 최악으로 나올 것이고, 점괘의 방향에 따라 이 여자와 나의 관계도 분명 영향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상대 집안에서 저렇게까지 나에 대해 궁금해하는데 어른들의 요청을 거절하기엔 마음이 불편했다. '아 모르겠다, 될 대로 돼라'는 생각으로 나의 생년월일과 생시를 여자에게 알려주었다.


"얘가 이렇게 살 애가 아닌데 애비 때문에 인생이 골로 갔네. 얘 원래부터 없이 살던 애 아니고 사주 나쁘지 않아. 세상 사람들 모두가 알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꽤 유명해져서 이름도 날리고 돈도 만진다"


전직 대통령, 정재계 유명 인사만 드나들 수 있고 복채만 수백만 원이 넘는 영검한 보살이라고 했는데 막상  점괘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으니 여자의 엄마와 외할머니는 적잖이 당황했던 것 같다.


심지어 여자의 집안은 가톨릭 집안이었는데, 사귄 지 한 달 된 딸의 남자 친구 사주를 보러 무당집에 갈 정도면 내가 그들에게 얼마나 불안하고 거슬리는 존재였던 걸까. 그래도 여기까지는 딸 가진 부모의 노파심이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점괘가 나쁘지 않았으니 서래마을 보살의 점사가 이 여자와 나의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진 않겠구나 한숨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쫄딱 망한 집 첫째 아들의 인생이 이렇게 순탄하고 아름답게 끝날 리가 없지.


어느 날 저녁 퇴근길에 여자와 통화를 하는데 그녀가 아무 생각 없이 이런 말을 한다.


"엄마가 나 선보면 100만 원 준대"


자신의 딸이 이미 만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백만 원을 주면서 까지 선을 보게 하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딸에게 헤어지라고 하는 것보다 일금 100만 원 지급이라는 금융치료가 딸내미에게 더 잘 먹힐 것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금융치료: 돈으로 스트레스나 우울함을 치료하거나, 위자료나 벌금으로 잘못에 대해 책임을 묻는다는 의미의 신조어


집이 망하고 나서 이모한테 손절당한 것 빼고는 누군가에게 대놓고 무시를 당하거나 차별받아본 적은 없는데 어쩌다가 내가 누군가에게 이토록 떨궈버리고 싶은 존재가 된 것일까. 내가 이 여자의 부모와 통화를 해보기를 했나, 직접 만나보기를 했나. 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느닷없이 손절당한 느낌은 또 생전 처음이었다.


결국 그날 여자와 대판 싸운 후 헤어졌다. 여자의 엄마는 얼마나 통쾌하고 안심되었을까. 딸의 결별 소식에 "할렐루야!"를 외친 후 맞선남의 생시를 들고 부랴부랴 서래마을로 달려갔을까.


그래, 막상 나도 내 여동생이 나처럼 망한 집 장남에게 시집가겠다고 하면 일단 뜯어말리고 싶은 마음부터 들것이다. 그래서 딸 가진 부모 마음이 이해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나 또한 경제적으로 윤택하지 않은 상황에서 혹여 누구를 만나 고생시키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어떤 부모라도 이왕이면 내 딸이 화목하고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남자와 만나길 바랄 것이다. 연애건 결혼이건 '화목'과 '유복'이라는 키워드가 만드는 시너지는 남녀관계에서 많은 리스크를 줄여줄 테니까.


그런데 배경을 빼고 한 사람의 본질과 가치를 먼저 알아봐 주길 바라는 것은 이젠 무리인 세상인 걸까. 누군가 나의 진면목을 알아보려 하지도 않고 경제적인 조건 하나로 지레 기피하는 현실이 참 씁쓸하다.


그래도 주눅 들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 집은 아빠가 사업도 말아먹고 바람도 피워서 경제난과 가정 불화에 전쟁통 같았지만, 온 가족이 이 과정을 노력하고 견디면서 용서와 회복을 경험할 수 있었으니까. 


대한민국 사회에서 쫄딱 망한 집 첫째 아들이 딸 가진 부모들과 결혼적령기 여성들에게 기피 대상으로 남더라도 어쩔 수 없다. 인생 흐르는 대로 살아야지 연애고 결혼이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너무 안다. 가수 김연자 선생의 노래 가사처럼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남은 생을 아모르파티 (Amor Fati: 내 운명을 사랑하라 運命愛) 모드로 살아가는 수밖에. 이참에 오랜만에 아모르파티나 들으러 갈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