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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님 소리 듣고 살다, 식당 서빙 이모가 되었습니다


집안이 경제적으로 풍비박산 나면 부모들은 두 가지 갈림길에 서게 된다.


이 상황을 회피하느냐 또는 직면하느냐.


회피를 선택한 자들은 현실을 부정하며 술, 도박, 불륜 등으로 비상구를 찾기도 하고 과거의 사회적 위치와 소비 습관을 현재의 경제 수준에 적응하지 못해 남은 재산마저 탕진하고 신용불량자가 되기도 한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가족을 버리고 도망쳐 잠적하는 사람도 있고, 무기력하게 삶을 놓고 낭인처럼 살거나 죽음으로 괴로운 현실을 스스로 종결짓기도 한다.


직면을 선택한 자들은 왕년에 화려했던 시절과 작별하고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쓰며 노동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쓰라린 과정이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나은 미래를 가져다주리라는 보장은 없다.      


아빠의 경우는 회피와 직면을 복합적으로 보여준 케이스였다. 사업이 망한 직후에는 수차례 목을 매달고 번개탄을 피우다 살아났고 이내 정신을 차리고 경제활동을 시작했으나 동시에 바람을 피우는 여유를 보여 온 가족을 환멸에 빠트렸다. 나와 동생은 거의 10년간 아빠와 인연을 끊고 살았고 엄마는 그래도 이 인간이 벌어야 자식들 대학 공부 마칠 수 있다며 이를 악물고 결혼 생활을 유지했다. 그제야 아빠는 지난 삶을 속죄하며 미친 사람처럼 돈을 벌었다. 과일 가게 행상, 생선 가게 행상, 보험설계사, 함바집 종업원, 꽃 도매시장 판매원, 분양상담사까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전부 돈 버는데 할애했다. 비록 죄지은 놈이지만 어떻게든 처자식 먹여 살리고 새끼들 가르치려 울컥 치미는 자존심을 삼키고, 남몰래 눈물을 훔치며 그 시간을 견뎌냈다.      


그러나 아빠 혼자 버는 것으로 파탄 난 가정 경제를 복구하기란 역부족이었고 결국 거의 평생을 주부로 살던 엄마가 가장으로 투입될 수밖에 없었다. 최종학력 대학 중퇴에 경력 단절녀인 엄마가 쉰이 넘어 가족을 먹여 살리기란 사실 맨땅에 헤딩하는 일과 다름없었다. 한때는 그녀도 레스토랑과 카페를 운영하던 사장님이었지만 이제는 보쌈집 서빙 이모가 되지 않고는 온 가족의 생계가 위태로웠다. 어떤 사람들은 엄마가 얼굴이 예쁘니 고급 일식집에서 서빙하면 팁으로 받는 돈이 짭짤할 것이라며 추천했지만, 엄마는 그렇게 돈을 버느니 24시간 영업하는 보쌈집 야간조에 들어가서 시급 2,000원을 더 받는 쪽을 택했다. 사람들이 흔히 껌값이라고 할 수 있는 2,000원이라는 액수는 쉰 살이 넘은 한 여자에게 밤잠을 참고 뼈가 뒤틀리게 일해서라도 더 벌어야 하는 절실한 돈이었다.         


평생 사장님 소리를 듣고 살던 아빠는 노상에서 과일 파는 아저씨로, 사모님 소리를 듣고 살던 엄마는 보쌈집 서빙 이모가 되는 것은 실로 순식간이었다. 


고용주에서 노동자로 사회 계층이 추락하는 것은 찰나이지만, 나락의 가운데에서 한 발짝 위로 올라가는 것은 사지를 찢는 노력으로도 어려운 것이었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도 복구 불가할 확률이 더 높은 게임이었다. 현실은 판타지 영화가 아니기에 간절히 기도하고 노력한다 해서 인생을 역전시킬 동아줄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거나 어디선가 귀인이 나타나 이 불쌍한 가족을 구원해줄 리도 만무했다. 그때의 우리 가족에게 희망을 품는 것은 사치고 미래를 계획하는 것은 호사였다. 그저 오늘 하루도 가족 누구도 병 안 나고 돈 벌 수 있었으면 그걸로 족해야 했던, 참으로 지난한 세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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