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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간녀의 아파트를 급습했다

엄마의 표정은 의외로 세차게 일렁이지 않았다. 다만 낭떠러지에서 추락하는 듯한 철렁함이 그녀의  눈을 잽싸게 스치고 지나갔다.


"신경 쓰지 마" 


엄마는 아무렇지 않은 척 밥을 차렸다. 엄마는 평생 그랬다. 집이 망하건 남편이 바람이 건 새끼들 배곯지 않는 게 우선이었다.


동생과 나는 숨을 죽이고 식탁에 앉아있었다. 요주의 인물은 아침 일찍 나가 자리에 없었다. 나와 동생이 밥을 먹을 때까지 엄마는 마디도 않고 소파에 앉아있었다.


엄마는 남편의 두 번째 외도를 꿈에도 몰랐다. 이미 예전에 바람피운 전적이 있는 인간이 사업까지 말아먹고 이딴 짓을 할 것이라 상상도 못 했다.


집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 전화를 걸 사람은 애비 밖에 없다. 애비는 일을 하면서 틈만 날 때마다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는 스타일이었다. 보통 전화를 안 받으면 그냥 끊고 말 텐데 이 날은 전화통이 불나게 벨을 울려댔다.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으니 내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볼 것도 없이 통화거절 버튼을 눌렀다.


그때였다.

엄마는 갑자기 냉장고로 달려가 오래전 누군가 사뒀던 설중매 한 병을 식도에 들이부었다. 엄마는 평생 술 한 잔 입에 대본적이 없는 사람이다. 설중매 한 병을 깡그리 해치운 엄마는 소파에 누워 미친 듯 오열하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불구덩이에서 타고 있는 아이가 엄마를 찾아 통곡하듯, 엄마는 엄마의 엄마를 그렇게 울부짖었다.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었다는 것을 잊고 살았다. 엄마도 누군가의 딸이었다는 사실도 잊고 살았다. 쉰이 넘은 늙은 딸은 생애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서 그토록 처절하게 엄마를 찾았다.


그때 현관문이 열리고 우리의 남자 주인공이 등장했다. 본능적으로 이 사태가 파악된 것인지 현관으로 들어오는 인간의 눈깔이 뒤집혀 있었다. 엄마는 미친 여자처럼 울부짖고 나와 동생은 방에서 숨죽였다. 애비가 무슨 일이냐며 세 사람에게 물어보아도 모두 묵묵부답. 애비는 계속 내게 캐물었고 나는 입을 열었다.


"바람난 거 다 알아"


시한폭탄을 터트린 것은 결국 나였다. 집안에 변고가 생기면 늘 앞장서서 뒤처리를 해야 했던 나의 20대가 그러했다.


"야 그걸 나한테 먼저 말했어야지 그걸 엄마한테 말하면 어쩌냐!"


저 다운 대답이다 싶었다. 예고 없이 폭탄을 터트린 나에 대한 원망이 방안 가득 찼다.


애비는 외도 사실만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엄마가 죽일 기세로 몰아붙이고, 상간녀와의 문자를 대문짝만 하게 출력해 얼굴에 뿌려대도 애비는 끝끝내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 정도 뚝심이면 사업도 안 말아먹었을 텐데. 사람 미치고 팔짝 뛰게 하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어느 날 나는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더니 온몸이 굳기 시작했다. 공황발작이었다. 동생이 놀라서 뛰어오고 엄마는 119를 불렀다. 정신을 잃고 응급실에 실려갔다. 공황발작이 오면 당장은 죽을 것 같아도 절대 죽지 않는다.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았을 텐데.


결국 지 새끼 숨이 깔딱대고 나서야 애비는 본인의 외도를 시인했다. 일주일 만에 자백을 받아내니 해방감 마저 느껴졌다. 그 순간, 온 가족은 지옥행 열차에 탑승을 완료하고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고통의 불구덩이 한가운데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바람난 두 연놈은 여느 드라마에서도 그러하듯 헤어지겠다고 했다. 나는 절대 믿지 않았다. 애비의 두 번째 외도 사건을 통해 나는 사람에 대해 얼마 남아있지 않았던 인류애를 모조리 잃어버렸다.

 

애비가 샤워하러 간 틈을 타고 나는 애비의 폰에 커플각서라는 앱을 몰래 깔았다. 위치 추적 앱이었다. 이 인간은 본인이 상간녀에게 보낸 문자가 자동 저장된지도 모르고 들킨 위인이다 보니 몰래 앱을 깔아 둔 것을 알리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인간의 귀가가 늦어졌다. 엄마가 전화를 해보니 집에 오는 중이라고 했다. 느낌이 쎄했다. 커플각서를 열었다. 상간녀의 아파트 단지를 향해서 이동하고 있는 것이 잡혔다.


"엄마, 가자"


엄마와 택시를 타고 상간녀가 사는 동네에 내렸다. 상간녀의 아파트 단지는 알아도 어느 동, 호수에 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스팔트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뜨거운 여름밤, 가로등 불에 의지하며 상간녀의 아파트 단지 출입구를 가로질러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는 갑자기 뭔가에 홀린 것처럼 엄마를 두고 앞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진다. 처음 와본 아파트 단지인데 마치 이미 와본 곳인 양 나의 발이 어딘가를 향해 무섭게 걸음을 재촉한다. 걷다 보니 구석진 코너 가로등 아래 아이보리색 벤치가 보인다.


어라, 연 놈이었다.


모자(母子)의 긴급 방문에 마중이라도 나온 듯 연놈은 기가 막힌 타이밍에 벤치에 앉아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주머니에 숨겨온 카메라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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