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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간녀가 나에게 메롱~이라고 했다

그날 , 상간녀는 선글라스를 낀 채 도도하게 아파트 벤치에 앉아있었다. 애비는 그 옆에 나란히 앉아 세상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바로 그때, 엄마와 내가 불륜남녀의 앞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상간녀의 거주지를 절대로 알 수 없는 우리가 돌연 나타나니 두 연놈은 마치 잠결에 저승사자라도 본 표정이었다. 흘러가는 시간에 누군가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두 인간은 미동도 하지 않고 그대로 멈춰있었다. 


엄마가 애비를 잡아 족치는 동안 나는 주머니에서 디지털카메라를 꺼내 플래시를 터트렸다. 그때만 해도 간통죄가 존재하던 때였으니 증거 수집도  연놈이 하고 있는 세기의 사랑을 축복하며  아파트 단지에 플래시 세례를 내렸다.


우리의 상간녀는 일부러 유명 여배우와 같은 이름으로 개명했고 밤중에 선글라스를 뒤집어쓰고 있을 만큼 관종이었는데, 그 밤에 톱스타들처럼 플래시 세례도 받게 되니 더할 나위 없이 수지맞은 날이었다. 


악에 받친 엄마는 불륜남녀에게 상간녀의 카페로 가서 결판을 내자고 다그쳤지만 뒤이어 들려오는 애비의 발언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니들 그러다가 소란죄로 잡혀가"


상간녀의 가게에서 깽판이라도 쳐서 영업 방해가 될까 봐 애비는 그토록 당당하게 상간녀를 보호했다.


나는 엄마와 당장 택시를 잡아타고 상간녀의 카페로 향했다. 그러나 아무리 카페에서 죽치고 앉아있어도 연놈은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엄마와 나는 결국 집에 돌아왔고 불륜남녀의 노쇼에 제대로 골탕 먹은 엄마는 밤새 죽어라 상간남을 족쳐댔다. 그런데 그날밤, 상간녀의 카카오톡 상태메시지가 바뀌었다.


'메롱~~~~~^.^'


이건 도발이었다. 지금까지 벌어진 상황과 시간의 타이밍으로 봤을 때 이것은 엄마와 나를 저격한 것이 틀림없었다. 상간녀는 엄마와 내가 카페에서 등신처럼 기다리다가 집으로 돌아가버린 게 그저 깨소금 맛이었던 것이다. 천지 분간을 못하고 날뛰는 이 화상을 가만  내가 아니었다.


이튿날 저녁, 나는 엄마를 데리고 상간녀의 카페에 갔다. 그때가 저녁 7시쯤이었을 텐데 이상하게도 상간녀는 자리에 없었다. 하루 중 손님이 가장 많을 시간이 딱 그 시간대인데 상간녀는 어디에 갔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아르바이트생도 단 한 명 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상간녀가 아예 자리를 비우거나 퇴근했을 리도 없었다.


"사장님 어디 가셨어요?"


아르바이트생에게 상간녀의 행방을 물었지만 모르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런데 절대 모를 수가 없었다. 내가 바로 얼마 전까지 그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했던 사람이거든. 분명 거짓말이었다. 상간녀는 우연히 나와 엄마를 보고 줄행랑쳤거나, 아르바이트생에게 엄마와 내가 등장했다는 보고를 듣고 도주한 게 틀림없었다.  


"엄마, 잠깐 여기 가만있어봐"


엄마에게는 상간녀의 카페에 남아 대기하라고 하고 나는 상간녀를 잡으러 밖으로 나왔다. 처음 가본 상간녀의 아파트 단지에서 불륜남녀를 본능적으로 찾아냈듯 나는 또 무언가에 홀린 듯 상간녀 가게 바로 앞에 있는 공원을 쑤시고 다니기 시작했다.


인적도 없고 가로등도 몇 개 없는 공원을 빠른 걸음으로 뒤지고 있을 때 어디선가 아주 익숙한 말씨가 들렸다.


"자기,  어떡해? 언니가 아까지 델꼬 와버렸다. 내 무서워 죽겠다"


마산 출신 다운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에 잔뜩 겁에 질린 목소리. 우리의 상간녀가 공원 화장실 옆 구석에 숨어 애인에게 1:1 코칭을 받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상간녀가 전화를 끊을 때까지 일부러 가만히 숨을 죽이고 있었다.  


"자기...? 자기!?"


두 마디를 내뱉으며 어둠 속에서 내가 스르륵 등장하니 상간녀의 소시지만 한 쌍꺼풀이 뒤집어지고 눈알은 금세 땅바닥으로 쏟아질 듯 희번덕해졌다. 나는 꼭지가 돌아버린 친놈처럼 공원이 떠나가라 포효하다 상간녀의 카페로 돌아갔다.


상간녀의 카페에 앉아 있는데 이때 상간녀의 친한 언니라는 작자가 등장했다. 상간녀는 본인의 애인 하나로는 나와 엄마를 맞설 용기가 없었기에 대리인을 하나 긴급 투입한 것이다. 상간녀의 아는 언니는 그 동네에서 식당을 하는 여자였는데 나에 대해 주워들은 게 많았는지 내게 존댓말을 써가며 "유학생이시죠? 공부를 아주 잘하신다고 들었어요" 하며 어디서 자애로운 척을 했다. 제 아무리 나긋나긋한 말씨를 써도 어차피 상간녀가 엄마한테 싸대기라도 맞으면 당장 쫓아갈 셈으로 왔으면서. 당사자끼리 얘기하게 빠지라고 얘기해도 여자는 죽어도 안 가고 버티고 앉아있었다. 결국 이 여자와 나는 상간녀 카페 흡연실에 앉아서 투명 유리를 통해 불륜남녀와 엄마의 삼자대면을 관망하고 있었다. 돌발상황이 생기면 언제든 각자의 아군을 위해 뛰어갈 작정으로. 


그런데 상간녀의 아는 언니가 아무리 버티기 작전으로 앉아있어도 나한텐 별 수 없었다. 이 여자가 잠시 화장실 간 사이 나는 상간녀 카페 앞문과 흡연실 뒷문을 전부 잠가버렸으니까. 시원하게 일을 보고 돌아온 상간녀의 아는 언니가 아무리 카페 앞 통유리를 두드리며 문을 열어달라 사정해도 이미 내 알바가 아니었다. 원래 그래서 남의 집안일에 함부로 끼는 거 아니거든.


아군이 쫓겨난 상황에서 상간녀는 갑자기 비련의 여주인공 행세를 했다. 카카오톡 상태메시지로 메롱을 날리던 기세는 어디 가고, 그날밤 메롱질은 자기가 봐도 경솔했다며 사죄를 했다. 그러더니 억지로 안구에서 즙을 짜내려 하질 않나 무릎 꿇는 척을 하려 하질 않나. 가증스럽기 그지없는 생쇼가 따로 없었다.


애비의 얼굴은 사골국이 팔팔 끓어 넘치는 냄비처럼 달아오르면서도 차마 성질대로 하지 못해 어쩔 줄 모르는 악마의 얼굴이었다. 엄마가 상간녀 얼굴에 물을 끼얹으려 하면 애비가 자동으로 그걸 막아서는 작태까지 보게 되니 엄마와 나는 분노에 휩싸여 머리에 꽃을 달고 길바닥에 나설 판이었다.


그날 밤 상간녀의 눈물쇼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러나 가족의 고통은 이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자신을 깨부숴버리고 온 세상을 불살라 버릴 것 같은 화염 같은 분노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나와 엄마는 끓어 넘치는 울화에 어찌할 바를 몰라 미친 듯 날뛰고, 여동생은 려 숨을 죽이며 제 안에서 조용히 스스로를 태워갔다. 힘든 일은 차라리 돈으로 때우는 게 낫다는 말처럼, 망하고 나서 돈 때문에 고생했던 것이 가정의 불화로 겪는 고통보다 덜 끔찍했다.  


이로부터 약 반년이 지났다. 집안은 여전히 전쟁통이지만 애비의 공식적인 두 번째 불륜 사건은 유야무야 끝이 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별생각 없이 인터넷을 하고 있던 나는 갑자기 상간녀의 휴대폰 번호를 구글에 검색하고 싶어졌다. 아무 생각 없이 상간녀의 전화번호를 검색창에 타이핑한 후 검색 버튼을 눌렀다. 어떤 맥주집이 뜬다. 그사이 상간녀는 업종을 바꿔 맥주집을 차렸나 보다.


그런데 잠깐만, 이 맥줏집 주소 어디서 많이 보던 주소다. 바로 애비가 알바를 하러 다닌다고 했던 바로 그 맥주집이었다.  


나의 미친 촉이 또 예고 없이 발동한 것이다. 왜 나는 늘 내가 모르고 지나갈 수 있는 불행을 가장 먼저 포착하고 마지막까지 수습하는 사람이 돼야 하는 걸까. 


결국 이 인간은 '' 바람이 났다. 공식적으로 세 번째 발각이었고 그중 두 번은 같은 여자였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도 힘든 주제 저렇게 사랑에 미칠 수 있는 열정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마침 그때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입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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