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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네덜란드로 탈조선했다

집이 망했고, 미국에서 다니던 대학을 결국 중퇴했다. 한국에서 대학을 가보려 인서울 대학에 신입학 지원을 했지만 전부 불합격했다. 경쟁률이 좀 더 낮은 지방국립대 영문과로 편입 지원했지만 또 다 떨어졌다. 군대까지 다녀오니 어느덧 내 나이 스물여덟이었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4년제 졸업장 없이는 웬만한 기업에 지원조차 불가한 게 현실인데 도통 대학 졸업장을 딸 방법이 없었다.


사방이 막힌 형국이었지만 대가리가 깨져도 대학교는 나와야 했다. 학위를 따지 못하면 취업을 못하고, 취업을 못하면 밥벌이를 못하고, 밥벌이를 못하면 나는 결국 생존하지 못하니까.


대한민국도 미국도 나를 원하는 곳이 없으니, 결국 탈조선을 택했다. 어차피 우리나라 안에서도 지지리 궁상으로 살고 있었으니 차라리 늦지 않은 나이에 다른 나라로 이주해서 대학도 졸업하고 정착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내가 떠날 나라는 영어가 통용되는 국가로 한정해야 했다. 나는 해외 이주와 동시에 현지에서 대학을 다니고 학사 학위부터 따야 했기에 생판 모르는 외국어를 처음부터 배우고 현지에 정착할 시간도 돈도 없었다.


의외로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녔던 미국은 내 선택지에서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일단 학비부터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고, 어찌어찌 졸업을 한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현지에서 취업과 정착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캐나다나 호주 같은 영어권 국가도 알아보았지만 생각보다 학비도 비싸고 졸업 후에 현지에서 정착하기도 녹록지 않아 보였다.


그러다 문득 복지 선진국이라는 유럽에서 남은 생을 사는 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이민자에게도 우호적이고 복지도 잘 갖추어진 유럽 국가들이 꽤 있었지만 해당 국가의 언어를 내가 하지 못하기 때문에 당장 현지에서 대학에 들어갈 수도, 자리를 잡고 살기에도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였다.


해당 국가의 언어를 배우지 않고 영어 구사력 하나만으로도 현지 생활, 대학 졸업, 취업 및 정착이 가능하고

일정 조건을 갖추면 이민자를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복지 시스템이 잘 갖춰진 그런 국가를 찾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신기하게도 이 모든 조건에 전부 부합하는 나라가 바로 네덜란드였다. 나에게 있어 네덜란드는 막연히 '풍차의 나라, 튤립의 나라' 정도 밖에는 아는 것이 없는 미지의 국가였다. 어린 시절 '먼 나라 이웃나라'라는 책을 통해서 대충 배운 것이 전부였고 살면서 여행은커녕 경유지로도 스친 적도 없는 나라였다.


- 국민의 90% 이상이 영어에 능통하여 네덜란드어를 하지 못해도 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음

- 대학 과정이 3년이기 때문에 돈이 없고 나이 많은 내가 1년의 시간과 비용을 단축하고도 학사 학위를 받을 수 있음

- 세계 대학 순위에서도 상위권에 드는 알아주는 명문 대학이 많아서 교육의 질이 우수하고 이 대학들 중에는 학사 과정 전체를 영어로만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었음

- 유학생은 현지에서 경제활동을 아예 금지하는 미국과 달리, 네덜란드에서는 외국인도 일을 할 수 있어서 일하며 공부하는 시스템이 가능

- 졸업 후 현지에서 취업 가능

- 일정 요건을 갖추고 나면 네덜란드에서 시민권을 획득하고 정착할 수 있음


이때부터 탈조선 자금을 모으며 네덜란드 대학교에 지원을 시작했다.


미국, 한국, 네덜란드 포함 대학 원서만 족히 30군데는 썼을 것이다. 대학 졸업장 하나를 따기 위해서 이미 8년의 세월을 낭비하고도 또 원서질을 해야 하는 현실이 진정 지긋지긋했다. 그러나 절대 포기할 수는 없었다.


네덜란드 내에서 영어로만 학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학교들만 지원할 수 있었는데 마침 이 학교들은 네덜란드 내에서는 기본이고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명문들이었다.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잘 다니던 미국 대학을 중퇴했고, 이후에 지원한 한국의 대학교들을 전부 불합격한 상태라 자신감은 바닥이었다. 그런데 의도치 않게 네덜란드 안에서도 명문 대학들만 지원하게 되어 불안은 날로 커져갔다. 네덜란드의 대학들도 나를 다 떨어트리면 진짜 이건 운명이 나보고 대학 따위는 때려치우고 형편에 맞게 돈이나 벌라는 시그널로 알아들어야겠다 생각하며 정신승리를 하고 있었다.


사람 앞날은 진짜 아무도 모른다고 나는 지원했던 네덜란드의 모든 대학에 전부 합격했다. 불합격의 아이콘인 내가 세계에서도 손꼽는 네덜란드의 명문 대학에 전부 합격을 하다니. 내 길이 아니었기에 한국의 모든 대학에서 떨어지고 네덜란드로 가게 된 것인가 혼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안타까웠던 부분은 네덜란드 대학은 편입을 받지 않아서 다시 1학년부터 신입학을 해야 했던 점이었다. 비록 중퇴를 했지만 그동안 대학을 다니며 돈과 시간을 들여 쌓아 온 학점들이 모두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니 허탈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대안이 없으니 애써 만들어놓은 학적과 학점을 모두 버려야 했다.


내 나이 스물아홉, 나는 그렇게 네덜란드라는 낯선 나라에서 다시 대학교 신입생이 되었다. 있는 없는 돈을 털어서 네덜란드로 떠났고 부족한 돈은 네덜란드에서 살면서 돈을 벌어 채우자는 생각으로 떠났다. 풍차와 튤립의 나라로 떠난다는 막연한 기대와 설렘은 아예 없었다. 나는 정말 살아남으려고 부모 형제 다 버리고 이역만리로 떠났으니까.


네덜란드말로 인사하는 것조차 모른 채 무작정 떠났는데 막상 네덜란드에 도착해 보니 진짜 이 나라는 네덜란드어를 하나도 못해도 생활하고 공부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네덜란드어가 영어랑 약간 비슷한 부분이 있어 배우는데 도움이 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어릴 때부터 공교육에서 영어를 잘 가르쳐서 전 국민의 영어 수준이 높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이것도 일부 네덜란드인의 생각이나 예시일 수도 있으니 일반화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도 있겠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하는데 네덜란드 본국 포함 주변 유럽 국가의 유학생들이 다수였고 나처럼 외딴 나라에서 온 학생들도 많았다. 나는 동양인이다 보니 아무래도 외국인들보다 나이에 비해 동안으로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스물아홉에 1학년으로 다시 입학한 나를 신기해했다. 많게는 나와 11살 차이가 나는 동기도 있었으니 나이 많은 삼촌이 MZ들 노는 데에 어쭙잖게 끼어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네덜란드 학생 한 명과 스웨덴에서 온 학생 한 명과 가장 친하게 지냈다. 같이 밥도 해 먹고 가끔 맥주를 마시러 다니긴 했지만 뭐랄까 마음으로 통하는 느낌은 없었고 그냥 나는 늘 이방인이라는 느낌에 홀로 소외된 느낌이었다. 미국에서도 그랬고 네덜란드에서도 그랬고 나는 참 체질적으로 외국 생활이 맞지 않는 사람이긴 했다. 타고나기를 워낙 내성적이라 새로운 사람과 친해지는 것에 어려움이 있는데 가뜩이나 문화도 말도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관계를 맺으려니 보통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느낀 네덜란드는 참 특이한 나라였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모임이나 파티에서 서로 통성명을 하고 재미있게 놀고 난 다음날 학교에서 우연히 마주쳐도 모르는 척을 하는 학생들이 꽤나 있었다. 이것이 나라의 문화인지, 그냥 나의 사적인 경험인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그냥 내가 느낀 네덜란드 사람들은 남에게 관심도 없고, 피해도 주지 않고, 차별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뭔가 차별이라는 것도 다른 사람을 인식을 하고 모종의 관심이라도 가져야 차별이라는 게 가능할 텐데 그냥 타인에게 관심자체가 없으니 차별이 성립되기도 어려운 느낌이었다.

 

어차피 나는 친구 사귀러 온 것도 아니고 공부하고 일하러 온 것이니 큰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미국에서 그랬듯 네덜란드에 가서도 내 나름 열심히 공부했다. 그래도 공부를 해본 가락이 있어서 미국에서 공부할 때는 이 정도 공부하면 대충 어느 정도 성적이 나오겠다는 감이 있었다. 네덜란드에 와서도 첫 번째 중간고사를 앞두고 밤을 새우며 열심히 공부했으니 최상은 아니더라도 기본은 나오겠지 하고 있었다.


어느 날, 학교 카운슬러가 내게 상담을 요청하였다. 카운슬러는 나를 만나자마자 대뜸 이 말을 꺼냈다.


"학사 경고야"


학사... 경고? 살면서 아무리 대충 공부해도 학사 경고는 맞아본 역사가 없는데 열심히 공부를 하고도 학사경고라고?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가 잘못된 건가? 나는 머리가 새하얘져서 잠시 말을 잃고 멍해졌다.


다음화에서 이어집니다.


쫄딱 망한 집 첫째 아들

다음 주 수요일 05월 01일 공개.

매주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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