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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 늘보 Nov 22. 2024

고통의 연금술

자기 치유의 확장

아메리카 원주민 나바호족은 직물을 짤 때 일부러 흠을 남기는 전통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이 흠집 "영혼의 길"을 열어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창조물은 언제나 불완전함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삶에서 완벽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겸손과 수용의 마음을 갖도록 하려는 의도라고 합니다. 


일부러 만들어 낸 흠집은 창조 과정에서 얻은 지혜와 자유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인간이라는 누구나 갖게 되는 결점과 부족함을 진솔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진정 자유로워질 수 있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불완전성을 있는 그대로 포용하여 사랑할 때 더 깊은 영적 세계와 연결된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의 불완전함과 취약성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에도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테드톡 강연으로 잘 알려진 미 텍사스 대학의 교수 브레네 브라운은 '온 마음을 다하는 삶 (Wholehearted Living)'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온 마음을 다해 사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불완전함과 고통을 수용하며 삶에 감사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은 특히 자기 자신과 타인의 고통과 취약점을 받아들일 줄 알기에 자신을 고립시키는 수치심을 떨쳐내고 타인과 공감하고 진정성 있게 연결하여 더 풍성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고 했습니다. 


고통을 통해서 우리는 나의 취약성을 발견하고 타인에 고통에 대한 공감을 키우게 됩니다. 나의 고통이 전체와의 연결을 통해 보편적인 이해와 치유로 이어지는 것입니. 


자기 치유의 확장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하는 길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세상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기도 하고 나의 치유가 세상의 치유에 연결되기도 함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고통도 치유도 모두 함께 공유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제가 내면 아이들을 만나고 치유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내 안의 상처들이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상처가 치유되는 중에 떠오른,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언뜻 보기에는 전혀 관계없어 보이던 기억들이 알려 주었습니다. 내 상처의 뿌리는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넘어서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어떤 상처는 과거에는 알지 못했던 어머니나 아버지의 상처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도 했고, 어떤 상처는 내 주변에서 만난 이들이나 그 지역의 상처와 닮아 있었습니다


제 안의 상처가 저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제 의식 안에 제 조상과 모든 인류의 삶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지금 나에게 들어오고 나가고 있는 이 숨이 이 세상 모든 이들의 숨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자 내가 평생 단 한 번도 혼자인 적이 없었음을 비로소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내 안의 고통을 품어 안고 내 안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세상을 치유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진정한 자기 사랑은 나 혼자만을 생각한다거나 세상으로부터 고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거대한 삶의 그물 속에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하게 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마찬가지로 타인의 어려움을 헤아리고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기여하는 것 역시 나의 상처를 치유하는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을 넘어선 더 큰 목적과 헌신에서 내 삶의 이유를 찾게 될 수도 있기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 국무부에 다닐 때 알고 지냈던 한 동료는 단 하나밖에 없는 중학생 아들이 난데없이 발병한 희귀 소아암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한 후 깊은 상심과 슬픔에 잠겨 지냈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그 동료가 그녀처럼 상실을 겪은 사람들을 위한 아트 워크숍을 열어 그림 그리기를 통해 마음을 치유하는 것을 돕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떠나기 전 한 식사 자리에서 그녀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때 그녀가 제게 했던 또 다른 말도 기억났습니다. 


"상처는 없어지는 게 아니래. 아마 평생 갖고 살아가겠지. 그치만 마음이 상처보다 조금 더 커져서 그 상처를 품고 살아갈 수는 있게 된다네. 나도 언젠간 그렇게 되길 바래."  


짐작도 못 할 고통의 시간을 지나온 그녀의 마음이 커지고 또 커지는 것을 상상했습니다. 커다란 마음이 그녀의 상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상처까지 품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고통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함께 나누고 있음을 떠올릴 때 우리는 "나의 문제"라는 관점에서 "우리의 여정"이라는 관점으로 생각이 확장됩니다. 나의 문제에서 벗어나 나 자신보다 훨씬 더 큰 무언가와 연결됩니다. 세상을 향한 나의 사랑과 헌신이 나를 위하는 길이기도 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고통의 연금술 


고통스러운 경험을 피하고 싶은 것은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알게 되기도 합니다. 고통의 경험이 삶을 변화시키는 재료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고통은 당연시하던 일상의 작은 기적들을 발견하게 해 줍니다. 한때 죽도록 미웠던 남편이 죽을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했을 때 남편의 코 고는 소리마저 기적처럼 느껴지는 밤을 겪게 됩니다. 말썽꾸리기 아들이 병원에 입원하면 아무리 애써도 지워지지 않아 화가 났던 낙서 자국에 위안을 받고 벅찬 눈물을 흘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고통 때문에 힘들 때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더 큰 고통을 자아냅니다. 때문에 고통은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생각을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합니다. 고통을 피하려고 이리저리 궁리하는 것을 멈추고 그저 현존하며 고통을 온전히 겪는 것이 가장 자연스런 일임을 결국은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고통받고 있는 나를 조건 없는 사랑으로, 가슴으로 품어줄 때 고통의 연금술이 시작됩니다. 13세기 페르시아 시인 루미의 말처럼 열린 상처를 통해 빛이 들어오고, 그 지혜와 사랑의 빛이 상처를 녹여내며 나의 본래 모습이 늘 그저 빛이었음이 드러나게 됩니다. 


고통에서 얻은 통찰을 돌이켜보는 명상을 소개하겠습니다. 과거의 고통스러웠던 경험에서 얻은 내 삶의 선물을 찾는 명상입니다. 


처음에는 고통에서 선물을 찾는 것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거부감이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고통이 아직도 생생할 때는 고통과 선물을 연결 짓는 시도 자체가 내가 겪은 고통을 폄훼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명상의 목적은 고통의 경험 그 자체를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고통의 의미를 찾는 연습입니다. 그 고통이 어떤 것이던, 그것이 어떤 경험이던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작은 의미의 빛줄기를 찾아 내 삶의 재료로 삼기 위함입니다.  


다만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아직 큰 상처로 남아 있어서 기억을 떠올리는 것조차 힘들다면 이 명상보다는 예전에 소개드린 상처를 치유하고 마음을 통합하는 명상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고통의 선물 명상 


편안한 자세로 앉아 천천히 호흡하며 몸과 마음을 차분하게 이완합니다. 지금 이 순간 내 몸에서 느껴지는 것들은 온전히 느끼고 관찰하며 있는 그대로 잠시 존재합니다. 


내 삶에서 힘들었던 한 순간을 떠올려 봅니다. 마치 하늘의 자리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구경하듯이 그 당시의 경험을 떠올려 봅니다. 고통을 겪고 있는 나의 모습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며 그 당시에 힘들었던 나를 온화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고통스러운 기억에 지나치게 빠지지 않도록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그 힘들었던 순간 나를 지탱해 주었던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었는지 떠올려 봅니다. 도움을 준 사람이나 상황일 수도 있고 내가 가졌던 생각이나 믿음, 중요하게 여겼던 가치도 괜찮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 떠올려 봅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떠오른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보냅니다. 그 시간을 보내온 나에게 따듯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보냅니다.   


잠시 후 그 고통이 나에게 남긴 가장 중요한 배움이 무엇인지 떠올려 봅니다.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일 수도 있고 고통의 시간을 겪으며 얻게 된 태도나 성품일 수도 있고 그저 그것을 경험했다는 기억이나 겪어본 느낌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 경험을 통해 얻게 된 것들을 돌아보고 그것들이 지금의 나의 삶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는지 돌이켜 봅니다. 그렇게 배운 것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눈다면 그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 지도 생각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지금껏 떠오른 내용들을 마음속으로 다음과 같이 한 문장으로 요약해 봅니다. 


"내 고통에서 얻은 선물은 __________이구나." 


마음속으로 그 문장을 차분하게 몇 번 반복하여 되뇝니다. 그리고 이 선물이 나의 삶에서, 그리고 남의 삶과 세상 전체에도 지혜와 사랑을 퍼뜨리는 작은 빛이 되는 것을 상상합니다. 가슴으로 받아들인 삶의 선물에 감사한 마음을 보내며 명상을 마무리합니다. 


명상 중에 하고 싶은 일이 떠오른 것이 있다면 종이에 잘 기록해 두었다가 실천하도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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