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무수한 나
우리는 보통 “나”라고 하면 하나의 독립적인 실체를 상상하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몸으로서의 나를 떠올리기 때문입니다. 당연하게도 나는 분명하게 경계 지어진 하나의 독립된 실체라고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지금 여기 이렇게 늘 있는 존재로서의 나, 의식으로서의 나는 분명하게 경계 지어 있지도, 한 덩어리로 단단하게 뭉쳐져 있지도 않습니다. 육체의 몸으로서의 내가 아니라 이 순간을 알아차리는 의식으로서의 나는 경계가 없습니다.
잠시 눈을 감고 마음을 고요히 한 채 지금 여기 존재하는 나의 의식과 바깥 사이에 분명한 경계가 있는지 느껴 봅시다.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가 있다면 그 소리와 소리를 알아차리는 나 사이에 분명한 경계가 있는지 찾아봅니다. 소리와 나 사이가 구분되는 지점이 있는지 말입니다. 안과 밖을 구분하는 분명한 경계점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경계 없이 넓게 열려 있는 의식의 공간 위에 그저 소리가 나타났다 사라집니다. 내가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소리가 나의 의식에 나타나고 사라지고 있음을 잠시 멈추어 느껴보세요. 그리고 소리와 나 사이에 분명히 지어진 경계가 없음을 느껴보세요. 그동안 너무나도 당연하게 내 안과 바깥을 구분하고 살았지만 지금 이 순간의 경험 속에서 내 의식의 경계를 확인할 수 있는지 직접 점검해 보세요.
의식은 마치 정해진 형체가 없는 물과 같아서 종종 바다와 파도에 비유되기도, 흐르는 물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항상 흐르기 때문에 늘 변하고 움직입니다. 한 순간의 흐르는 물을 붙잡을 수 없듯이 우리의 생각, 감정, 경험도 끊임없이 흐르고 변합니다. 때문에 나의 모습은 하나가 아닙니다.
내가 거대한 바다에서 잠시 솟아올라온 파도라면 그 파도 안에도 수많은 물방울이 끊임없이 흘러가며 다양한 물살과 소용돌이가 생깁니다. 내 안에도 순간순간 상황과 인연 관계에 따라 무수하게 다른 자아가 나타나고 사라집니다. 어느 순간에는 부모로서의 자아가 드러나기도 하고, 다른 순간에는 직장인의 모습이 드러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감이 넘치는 자아가, 때로는 두려움에 떠는 자아가 표면에 드러나기도 합니다.
수많은 내가 끊임없이 변화하며 나타나고 사라지는 가운데 나는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지도 않고, 경계 지어져 변하지 않는 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디즈니 만화 <인사이드 아웃>이나 한국의 드라마 <유미의 세포>에는 한 사람의 마음 안에 각각 다른 성격과 생각과 감정을 지닌 마음들이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유미의 세포> 드라마의 주인공 유미 안에는 매일 열심히 살고 있는 일개미 세포도 있고 기회가 날 때마다 쉬고 싶어 하는 게으름 세포도 존재합니다. 이처럼 전혀 상반되는 마음들이 동시에 내 안에 공존하고 있습니다.
내면의 여러 가지 다른 마음들은 종종 내 안에서 갈등을 자아냅니다. 각자가 원하는 것이 다를 뿐만 아니라 서로가 내 관심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할 것이라는 불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쁜 직장인들은 아마 공감하실 겁니다. 마음 한 켠에서는 좀 쉬고 싶은 마음이 가득합니다. 치열한 직장 생활에다가 자녀가 있으신 분들은 육아에도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있습니다. 직장생활도 잘 해내고 싶고 동시에 아이도 잘 키우고 싶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짬을 내서 자기 계발도 하고 싶은 마음도 가득합니다. 마음 한편에서는 좀 쉬고 싶고 몸을 돌보고 싶고 다른 한편에서는 부지런해야 한다고, 게으른 것은 나쁜 것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 안의 의식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을 때 마음속에 갈등이 생깁니다.
일을 하면서 괴롭습니다. 쉬고 싶은데 쉴 수 없는 내가 힘들고 서럽습니다. 피곤하지만 쉬는 것이 편안하지 않은 스스로가 답답합니다. 일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면서도 괴롭습니다. 벌을 받을까 봐 두렵습니다. 지금껏 이루어 놓은 것이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마치 내 안에서 작은 마음들이 갈라져 나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의 마음이 잠시 의식의 중앙 무대를 차지하면 다른 마음이 관심을 가져 달라고 아우성을 칩니다.
내면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중에는 우리 내면의 에너지가 혼란스럽습니다. 공통된 방향을 향해 일관되게 흐르지 않습니다. 때문에 일을 하면서도 효율적이지가 않고, 쉬면서도 편안하게 이완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쉬고 싶은 마음도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도 똑같이 모두 나의 마음입니다. 드라마에서 한 사람 안에 여러 인격이 존재했던 것처럼 이 모든 마음들은 다 내 의식의 일부입니다. 내가 어떤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상관없이 각각 다른 욕구를 대변하며 나타나고 사라집니다.
어떤 마음은 좋다고 생각하고 어떤 마음은 나쁘다고 생각해서 터부시 하는 것에서 자기부정이 시작됩니다. 저 역시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한 무의식적인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제껏 열심히 노력해서 이만큼 이루었으니 노력을 멈추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마음의 아래에는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 인정을 못 받으면 버림받을 것 같다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강하게 누른 마음은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게 마련입니다. 억누르는 마음이 많을 때 오히려 하는 일에 집중을 하기 힘들어집니다. 마치 공부하려고 책상 앞에 앉았다가 책상 정리만 하는 것처럼 하려는 일도 못하고 쉬지도 못하는 상황들이 반복됩니다. 갈라져 나온 의식이 내 안에 갈등을 만들어 내어 우리의 에너지가 이리저리 분산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억압된 마음을 무의식에 묻어 놓는 데에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해소되지 않은 감정이 일상의 사건을 통해 자극될 때마다 느끼지 않으려고 회피하고 저항하는 데에는 힘이 들어갑니다. 자기를 방어하는 데 에너지를 쓰느라 평소에 에너지가 부족하고 사는 것이 어렵고 힘들게 느껴집니다.
각자의 소우주를 살아가는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부부가 왜 싸우겠습니까? 남편의 우주를 부인이 다 알 수 있는 길은 없기 때문입니다. 남편도 부인의 우주를 직접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삶을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순간도 빠짐없이 그 사람의 입장에서 똑같이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타인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갈등이 생기는 것이 당연합니다.
내 안의 다양한 마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만의 소우주를 살아가는 갈라진 마음들은 서로의 생각과 감정과 필요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마치 하나로 흐르던 강이 두 갈래로 갈라지고 나면 갈라진 시냇물이 서로를 만나지 못하는 것처럼 내 안의 갈라진 마음들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쉬지 않고 일만 하려고 하는 내 안의 일개미 나는 인정을 받지 못하면 버림받을까 두려웠던 경험의 소우주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소우주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면 내 삶의 가치가 없어지는 느낌입니다. 안전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늘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쉬고 싶고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내 안의 배짱이 나는 하기 싫은 일도 억지로 하면서 지쳤던 경험의 소우주 안에 살고 있습니다. 인정받으려 애쓰는 것에 지쳐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한다면 사는 것 자체가 싫어지는 느낌입니다. 열심히 했는데도 인정 못 받으면 상처받을까 두렵습니다. 아예 시도하지 않는 편이 차라리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소우주 속에서 살아가는 내 안의 갈라진 마음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일개미 마음은 배짱이 마음이 어리석고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배짱이 마음은 일개미 마음이 어리석고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두 마음 다 나의 마음입니다. 그 어느 마음도 나쁜 마음이 아닙니다.
부부 싸움을 대화로 해결하듯 내 안의 갈라져 나온 마음들과도 대화가 필요합니다. 각각의 마음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보고 마음을 있는 그대로 허용하여 느끼는 과정을 통해 나의 속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그럴 수 있구나, 모두 다 나름 나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애써온 마음이구나, 왜 이런 마음이 생겼는지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열심히 하려는 마음도 나를 위한 마음이고 쉬고 싶은 마음도 나를 위한 마음입니다. 둘 다 내 인생에서 꼭 필요한 마음입니다.
조건 없는 자기 사랑은 내 안에 갈라져 있는 마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허용하여 통합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내가 억압해 온 마음들을 돌아보고 그것들을 온전히 이해하고 수용하여 나의 일부로 받아들여 그와 평화롭게 지내는 것입니다. 내 안의 소우주를 다 함께 품어 안은 대우주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럼 다음 글에서 내 안의 다양한 마음과 대화하고 마음을 통합하는 법을 소개하겠습니다.
이미지 출처
Miriam Espacio @ www.pexels.com/photo/photo-of-woman-holding-a-mirror-2694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