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는 자막 쓰기
웃길 것인가, 읽힐 것인가
기억에 남게 할 것인가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예능은 '유퀴즈 온 더 블럭'이다.(편의상 '유퀴즈'라고 줄여서 표현하겠다) 2018년 유퀴즈 첫 방영할 때, '유재석의 첫 tvN 예능'이라는 말에 잔뜩 기대하는 마음으로 첫방을 챙겨봤었는데 그때 느낌은... 솔직히 대실망이었다. 그 당시 내가 본 유퀴즈의 느낌은 한 마디로 '맹숭맹숭'... 내가 제2의 무한도전을 기대했던 건지, 길거리 인터뷰라는 낯선 콘셉트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첫 방의 미숙함 때문이었는지, 하여간 한 번 보고는 그다음에 따로 챙겨보진 않았었다.
그런데 코로나 시국이 되면서 길거리 인터뷰 형식을 취하던 유퀴즈가 실내로 포맷을 바꾸었고, 일반인, 전문가, 셀럽 등 다양한 게스트가 등장하면서 비록 초창기 '날 것'의 매력은 줄었지만 '콘텐츠 내용'이 전보다 더 풍성해졌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막의 역할에도 깊이가 생겨났고 나는 그때부터 유퀴즈가 재미있게 느껴졌다.
유퀴즈의 자막은 여러 가지 기능을 한다. 첫 번째로 게스트의 일(job)과 생각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정보 전달 자막', 두 번째로 재미를 담당하는 전형적인 '예능 자막'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청자로 하여금 생각해보게 만드는 '핵심 메시지(massage)'가 항상 존재한다. 나는 이 마지막 역할이 유퀴즈만의 가장 큰 매력이며 영상에서 자막이 할 수 있는 하이엔드급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유행을 타지도, 뒤떨어지지도 않지만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누구나 편하게 볼 수 있는 자막. 그런데 심지어 메시지까지 섬세하다.
하루에 유튜브 추천 영상만 2억개씩 쏟아지는 가운데, 내 콘텐츠가 누군가에게 기억되기 위해서는 핵심 메시지의 역할이 매우 크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무엇을 기억해주길 바라는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주제가 있어야 한다. 1차적으로 책에서는 표지가, 영상에서는 썸네일과 영상 제목이 그 역할을 한다. 이 단계에서는 일단 사람들의 선택(클릭)을 받는 것이 가장 큰 목표가 되지만 영상의 경우, 클릭한 후가 더 중요하다. 사람들에게 다시 보고 싶은 영상, 추천하고 싶은 영상이 되려면 반드시 핵심 메시지가 적절한 순간에 나와야 한다. 영상 전반에 같은 결의 반복되는 메시지가 존재하고 그것이 시청자들의 머리와 마음을 '쿵'하게 만들 때, 가치 있는 콘텐츠가 완성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그런 영상을 본능적으로 알아본다.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가다 보면 생각보다 영상을 '그냥' 만드는 사람들이 많다. 메시지가 무엇인지 별로 관심 없고, 그냥 별 달고 꽃 달아서 만들어낸 영상이 생각보다 꽤 많다. 물론 메시지의 형태가 언제나 자막의 형태를 띠고 있진 않다는 건 안다. '영상미' 자체가 메시지가 되는 영상도 많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만들지 말자는 것이다. 들린다고 다 적어 넣고, 대본대로 Ctrl 'C' + Ctrl 'V' 하는 식의 작업은 그저 손가락 운동에 불과하다. 그렇게 작업하면 단언컨대, 영상을 만든 사람조차도 그 영상을 기억 못 할 확률이 크다.
재미도 중요하고, 정보도 중요하지만 그래서 이 영상이 하고자 하는 말, 남기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영상을 만드는 사람은 반드시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충분히 전달되고 있는지 스스로 체크하며 편집해야 한다. 다 비슷하게 만드는 것 같아도 한 끗이 쌓여서 큰 가치 차이를 만들어낸다.
그럼 핵심 메시지 작업을 잘하기 위해서 어떻게 노력해야 할까? 아이러니하게도 영상이 아닌 책 보기를 추천한다.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생긴다는 건, 모든 영역에서의 진리이다. 좋은 자막을 쓰려면 좋은 문장을 경험해야 하고, 좋은 문장을 접하기에 책 읽기만 한 것이 없다. 다독이 힘들다면 읽고 싶은 자기 계발서를 선택하여 차분히 읽으면서 스스로 내용을 정리해보는 것도 좋다. 이 책은 무슨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어떤 문장과 단어로 표현하고 있는지 느껴보고 내식대로 한번 써본 다면 더할 나위 없다. 이렇게 반복해서 훈련하다 보면 3시간짜리 원본 영상을 받았을 때 1시간 이내의 알찬 영상으로 컷편집이 가능해지고 그 안에서 같은 결의 메시지를 반복 노출시켜 화자의 의도가 잘 담긴 영상을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