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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희 Oct 26. 2024

해피엔딩

 어린 시절, 나는 '편안한 존재'가 되고 싶었습니다. 마치 한적한 숲 속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살랑이는 나뭇잎처럼요. 사람들에게 쉼과 여유를 주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그 마음을 잊고 지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지인들과의 대화 속에서 어릴 적 꿈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문득 그 시절 꿈꾸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올랐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마치 자연처럼 늘 곁에 있을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게 '초연'이라는 호를 지어주기도 했습니다. 풀 초(草)와 그럴 연(然), 풀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의 상징이었습니다.

   

 제 꿈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던 걸까요? 고민이 있거나 감정적으로 힘든 사람들이 자주 저를 찾아와 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기쁜 마음도 잠시, 어느 순간부터는 그들의 감정이 제 안에 쌓여 상처가 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들의 슬픔과 아픔을 받아들이는 게 어린 제겐 쉽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들은 후련히 떠났지만, 남기고 간 무거운 감정들은 오히려 저를 조금씩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쉽게 상처받을까?”라는 질문이 떠오르곤 했습니다. 결국 그 답을 찾기보다는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생각보다 복잡했고, 때로는 차가웠습니다.


 누군가를 위로하면서도 제 마음 한 켠에 상처가 쌓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마 그 감정들은 어린 날의 제가 소화해 내기엔 버거운 것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후련히 떠났지만 남기고 간 부정적인 감정들은 결국 제게 상처로 남았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쉽게 상처받는 걸까?"라는 질문이 떠오르곤 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 답을 찾으려는 노력조차 포기한 채, 마음의 문을 조금씩 닫아버렸습니다. 세상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복잡하고, 때로는 냉정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편안한 존재’가 되기보다 나의 사람들만 챙기고, 그 외에는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지인들과의 대화를 곱씹으며 무심코 창문 밖을 보니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 단단한 나무도 흔들리는데, 나는 왜 이렇게 나 자신을 꽉 붙들고 있었을까?” 그러면서 초연이라는 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 호가 남에게만 편안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평화를 찾으며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인정이나 사랑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서 오는 평온함이었습니다. 외부에서 사랑을 구하려 하지 않고 나 자신에게 사랑을 주기로 결심했습니다. 마치 오랫동안 기다렸지만 끝내 내 손에 닿지 않았던 그 사랑을 이제는 내 안에서 찾기로 한 것이지요. 일상 속의 작은 순간들, 매일 아침 눈을 뜨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는 시간 속에서도 나를 사랑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세상의 좌절 속에서도 내면의 평화를 지키며 살아가려 합니다. 물론, 그 과정이 언제나 쉬운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불안하고, 내가 잘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이 던지는 다양한 좌절 속에서도, 내면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폭풍 속에서도 호수 깊은 곳은 여전히 잔잔한 것처럼요. 아마도 제 해피엔딩은 살랑이는 나뭇잎처럼 유연하고 자연스럽게 나를 사랑하며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제가 꿈꾸는 진정한 행복의 완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이 꿈꾸는 해피엔딩은 어떤 모습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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