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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희 Oct 16. 2024

상처

 나는 종종 사람들에게 나를 '역치가 높은 사람'이라고 소개하곤 했습니다. 역치란 생물체가 자극에 반응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 세기를 뜻하는 단어죠. 쉽게 상처받지 않는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역치가 높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이름 붙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말은 오히려 나를 더 많은 상처 속에 남겨두고야 말았습니다. 상처받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이 오히려 나를 무너뜨렸던 것이지요


 어린 시절, 저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가족과 떨어져 10년 동안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들과 가족처럼 지냈고, 가족의 지인에게 납치당할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은 모르는 사람이 지하철에서 이유 모를 세레나데를 불러주기도 했습니다. 그런 일들 속에서, 저는 의연해 보이려 노력했지만, 사소한 일에 쉽게 무너지는 제 자신이 낯설게 느껴지곤 했습니다. 예를 들어, 지하철에서 누군가 제 옆에서 자리를 옮길 때면, 나 때문에 불편함을 느낀 건 아닌지 걱정하게 됩니다. 혹은 사람 많은 곳에서 타인과 눈이 잠깐 마주쳐도 마음이 불편해지고 불안해지는 저 자신을 발견할 때도 그렇습니다. 이제 돌이켜보면, 이런 반응들은 어쩌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세운 경계였던 것 같습니다.


 그 시절, 나를 버티게 만든 건 친구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였습니다. 내가 나를 힘들게 여기던 어느 날, 친구 해윤이가 제게 말했습니다. “태희야, 너는 구김 없는 사람이야. 누가 너를 구겨도, 넌 다시 그걸 부단히 펴는 사람이야.” 그 말을 들은 순간, 문득 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마음속으론 늘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고 구김 없이 웃는 사람들을 동경했지만, 어느새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은 잔뜩 구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해윤이의 그 말은 제게 큰 위로가 되었고, 그 이후로 제 마음을 지탱해 주는 힘이 되었습니다. 구겨져도 다시 펴 나아가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으로, 그 말을 곱씹으며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감추고 싶은, 소위 찌질한 모습이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사람이란 그 모습을 부정하는 대신 인정하고 잘 다루는 사람이지 않을까요? 저는 이제 못난 내 모습을 스스로 직시하고, “그래,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때 비로소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진정한 성장이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이제 소홀히 했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글을 쓰고 싶은 이유는 다정한 문장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입니다. 또한, 나 자신에게도 다정한 위로를 건네기 위해서이겠지요. 불안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내 생각을 하나씩 풀어내면서 점점 선명해지는 내 모습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손등에 남은 작은 흉터를 보며, 할아버지께서 “태희는 이 흉터 덕분에 잃어버려도 금방 찾겠구나”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 말 이후, 저는 해리포터처럼 나만의 멋진 흉터가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곤 했습니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그리고 그 다름 속에서 특별함을 찾는 것은 그 시절부터 제게 소중한 자산이었나 봅니다. 지금도 여전히, 상처가 저를 단단하고 특별하게 만든다는 사실에 감사합니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자신의 상처가 결국에는 자신을 강하게 만들고 있다는 걸 깨닫고, 오늘을 조금 더 의연하게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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