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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치 Oct 27. 2024

패치워크

겨울은 바느질에 서투른, 그 서툰 바느질이 더 빛을 발하는 패치워크 작품이다.

크고 작은 옷감 조각을 이어 맞춘 기법으로 선과 색상, 그리고 규칙과 불규칙이 어우러져 독특한 조형미를 자랑하는 패치워크 작품.

창밖을 내다본다. 얼어붙은 거리 위에서 사람들은 걸음마를 새로 배우는 것처럼 엉거주춤 걸어가고, 꽤나 쌓인 눈 위에서 차들은 건전지가 다 된 장난감처럼 맥없이 움직인다. 이 장면을 사각형으로 오려내어 삐뚤삐뚤한 바느질로 내 방 창문에 매어놓으면 한 조각의 귀여운 작품이 된다. 


실은 패치워크란 그 정겹고 푸근해보이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많은 사연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 그들의 탄생에는 죽 이어진 플로랄 패턴이라든가 페이즐리, 스트라이프 무늬가 끊임없이 이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 패턴들은 인생의 시기마다의 상처라든가 환경의 변화라든가 하는 거대한 가위에 의해 날카롭게 잘려버렸고, 그 조각난 고아같은 천 조각들은 애써 자신들의 자리를 찾고 헤메었으나 절대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왜냐면 애초에 그들의 자리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색과 패턴 그리고 소재들이 엮여 반복되는 조각보처럼, 우리의 기억도 사실은 체계와 연관이 없다. 선호와 취향도 어느 순간 낯설게 변해 있듯이 내 인생의 이야기도 낯선 선택들로 스티치되어 연결된 것만 같다. 실용적인 공예품을 만들기에는 도저히 사이즈가 나오지 않는 애매한 크기의 조각들은 누군가의 손으로 꿰메어져 처음 포목점에서 선보였던 것과 동일한 크기로, 그러나 사실은 전혀 다른 이미지로 채워진 패치워크 천으로 탄생하였다.


우리 뇌 속에 담긴 기억을 2d프린터로 출력한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우리의 모든 기억들이 조각나서 웜톤의 밝은 베이지 색의 화사한 추억 옆에 네이비색의 차갑고 아찔한 기억 한 조각이 따라붙고, 그 옆은 아무런 맥락도 없는 체크무늬가 이어지는. 막상 펼쳐보면 누구의 상상과도 다르고, 예상하지 못했던 그런 이미지. 저런 색이, 저런 무늬가, 저런 기억이 내 안에 저만큼 있었구나 하고 모르는 것이 당연한 그런 한마의 천. 막상 돋보기를 들고 그 조각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모든 기억이, 상황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여 다시 한번 놀라게 될 그런 풍경들.     


하루의 끝은 역시 베개에 머리를 대고 편히 눕는 것으로 시작된다. 얄미운 추위를 멀리 몰아내고 내 머리 속에서는 바느질을 시작한다. 진열대에 선다. 기억에 남는 장면들을 고른다. 그림 속에서 원하는 부분만 자른다. 오려낸 조각들을 어제 만들던 조각보에 덧댄다. 세심하게 덧대면서 불필요한 실밥과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 패턴들을 제거한다. 그러나 나는 어느새 작업 중임을 잊어 버리고 잠에 깊이 빠져든다. 

겨울 하루의 마무리는 자투리 천들로 어여쁘게 장식한 이불, 그 보돌보돌한 이불 안에서 잠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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