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 한 짝을 보았다.
눈 덮힌 산책로 위에서, 지하철 출구 앞에서, 일방통행의 골목길에서, 떨어져 있는 장갑 한 짝을 보았다.
손가락이 걸어가다 고꾸라지는 모양의 포즈부터 손가락욕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장갑까지...때가 꼬질한 거부터 방금 떨어뜨린 것 같은 관리가 잘 된 애완동물 비슷한 것까지.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 속에서 외롭고 쓸쓸해 보인다기 보다는 장갑의 다양한 포즈가 너무나 장난스러워 의문이 생기는 장면들. 혹시 저기에 떨어진 것이 장갑의 의지인 것이 아닐까 하는.
주인의 실수로 툭 떨어진 것이 아닌 마치 그것들의 의지로 주인의 가방이나 패딩 주머니에서 탈출한 것처럼 보인다. 일상적인 풍경 속에 모자라지만 유쾌한 친구 같은 장갑 한 짝이 나뒹굴기 시작하면 그 공간은 순간 다큐멘터리에서 판타지로 장르가 바뀌어 버린다.
판타지 장르 속에서 주인공은 범인으로 우연히 어떤 사고에 휘말리거나 비밀을 알게되고, 의사 결정없이 강제로 소환당하고 온갖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며 정신적으로 성숙해진다. 그리고 나서 주인공은 그 어떠한 장애물도 너끈히 뛰어넘을 수 있게 된다. 생각해 보면 클리셰의 법칙은 우리 삶과 다르지 않은 듯 싶다. 강제로 소환당한 현생에서 원해서든 아니든 온갖 시험과 테스트, 받아들임과 거절을 당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저마다의 스킬을 획득하는 중이고 저마다의 색으로 성숙해지는 중이다. 어떠한 장애물이 와도 아무렇지 않게 뛰어넘을 재주는 아직 획득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용을 써서 얻은 얄팍한 방법과 재주들로 상처받지 않으려 바둥거리는 일상의 판타지를 살아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정신이 헐렁해진 틈을 타 버스에 놓고 내린 핸드폰, 챙기지 않은 지갑, 들리지 않는 알람 소리의 친구격인 장갑 한 짝 흘리기가 있다.
외로이 떨어진 장갑 한짝은 그러므로 열심히 생존의 스킬을 얻기 위해 뛰어다니다 흘리고 만 표식같은 것이겠지. 누군가의 부주의함을 너무 아름답게 포장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여전히 장갑 홀로 떨어져 있는 길은 말할 수 없이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아마 그 느낌은 눈을 처음 본 느낌과 비슷하지 않을까? 웃음도 준다. 아마 그 웃음은 친구가 처음 내게 장난을 쳤을 때 의미심장하게 웃었던 그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리고 나를 공상의 세계로 이끈다. 아마 내가 공책에 그리던 그런 만화 속 세계와 비슷하지 않을까? 그 세계에서는 오로지 장갑과 나 단 둘이 대화를 한다. 주위를 걷던 사람들은 다 사라진다. 경적을 울리던 버스도 사라졌다. 너의 비밀을 알아낼 단 한 명인 나와 비밀을 감춘 단 한 명인 너만이 남아 있다. 너는 숨기고 싶었겠지만 감출 수 없는 너의 자세가 나를 이리로 이끌었단다. 끝까지 움직이지 않던 장갑은 결국에는 굴복하고 나의 정확한 추리와 기다림에 경의를 표하고 사라진다.
그동안 본 한 짝짜리 장갑을 한 데 모아 쌓으면 얼마나 높은 탑이 쌓일까? 그 색은 어떠할까? 아름다울까? 기묘할까?
누군가의 가방 속에 있을 한 짝의 짝궁인 나머지 한짝은 어떻게 될까? 그것을 본 주인의 표정은 어떠할까?
문득 이런 생각을 이어가다가 나는 왜 여기까지 이르렀나 생각하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내 장르 속에서 내가 삶을 살아가는 재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나도 내 장르의 주인공에 걸맞게 성숙해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