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보내고 겨울을 보내고 겨울을 보내면서 나는 늙어 있었다. 너무 당연한 사실이라 놀라운가. 내가 말하는 늙음은 못생기게 늙어 있다는 것이다. 못생기게 늙었다는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러운 노화의 흔적이라기보다는 인위적인 공격이 느껴졌다는 의미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공격의 주체가 결국은 나 자신이었다는 것이다.
최근 2-3년간의 내 얼굴과 몸에 나타난 노화의 흔적은 자연스럽지 않다. 그것은 스트레스와 나쁜 생각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그대로 흡수, 수용하면서 나타난 인공적인 변화이다. 소설이나 영화의 끝자락에 나타나는 숨겨진 반전처럼 나를 가장 아끼고 예뻐해야 할 내 자신이 사실은 장막 뒤에서 몰래 나를 훔쳐보며 험담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범임을 찾아냈고, 범인을 단죄하였고, 이제 내 노화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 나는 되돌릴 것이다. 회춘할 것이다. 자세를 곧추 세우고, 이마에 주름을 펴고, 까맣게 변한 피부를 미백하고 눈동자에 원기를 채우고, 건조한 피부에 윤기를 더해서 토실토실 반지르르하게 젊어질 것이다. 그러면 다시 무대 뒤에서 그 아이는 외치겠지? 무슨 수로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는 거야. 이미 늙어 버렸는걸,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걸, 헛된 고생하지 말라고, 그러나 이제 달라진 주인공은 가만히 듣고 있지 않는다. 주인공은 그 악당의 손발을 묶어 엎드리게 한 후 미소 지으며 말한다.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악당이 대꾸한다. 그럼 무슨 의미냐고. 새로운 방식으로 늙어가는 것이라고.
내 몸에 탄력이 예전같지 않다거나 이성을 향한 설레임이 전처럼 크지 않다고 해서 봄이 아닌 것은 아니다. 육체나 감정을 전처럼 되돌릴 수 없다며 회춘은 불가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다. 시간이 흐르는 길목에서 알을 깨며 나올 때도, 고개를 숙이며 성숙해질 때도, 나만의 방식으로 나를 아끼며 걸어간다면, 먹구름 같은 세상의 모든 걱정과 숙제가 사라지고 내 마음은 봄날처럼 따스해져서 나는 도로 젊어지는 것이다.
겨울 다음에 겨울 겨울 겨울이 아니라
겨울 다음에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러나 겨울 다음에 겨울 겨울 겨울이 온다해도
나는 온 세상을 인조 잔디로 뒤덮고 온풍기를 24시간 틀고
부드러운 한 조각의 면티만 입은 채 그 모든 겨울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
나는 그렇게 늙어가며 회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