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나의 수고는 의미 있었다.

by 프로스트


2000년 9월 어느 토요일 오후로 기억한다. 강남 가구 전문점 거리를 구석구석 다니며 싸고 질 좋은 사무실 의자를 찾아 헤매던 가을날. 미국에 본사를 다국적 홍보 대행사의 초대 한국 지사장으로 준비해 오던 중 드디어 한국 지사 오픈하는 역사적인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강남에 작은 사무실은 구했고 직원도 뽑았으니 사무실 가구를 쇼핑해야 했다. 당시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해야 할 때라서 화장실 청소만 빼고 다 한 것 같다. 그날 오후 그렇게 3시간을 다리 아프게 돌아다니다가 드디어 실버 프레임의 가죽 자제의 세련된 의자를 발견했다. 난 거기서 30분을 서서 의자를 바라보았고 오만가지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쳤다.

이거 좀 비싼데 이걸 구입할 수 있을까? 조금 싼 걸 찾아봐야 하나?
그럼 몇 개를 사야 되지? 지금 회의실에 들어갈 수 있는 의자 개수가 얼마나 되지? 앞으로 2년 동안 난 몇 명의 직원을 채용할 수 있을까? 2년 안에 적어도 3명은 뽑을 수 있을 것이고 3개의 클라이언트도 개발할 수 있겠지? 그래. 난 의자 6개를 구입하자.

이 의자는 중요한 미팅이나 기자 인터뷰 때 회사 이미지를 잘 대변할 수 있을까? 일단 편한지 앉아보자.

나의 이러한 작고 큰 고민과 결정은 지사를 운영하고 직원을 뽑고 클라이언트 관리 중 계속되었다.


2년 동안의 지사장 임기 동안 한밤중에 가위눌리듯 일어나 나의 임무를 성공으로 이끌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잠을 못 이루는 날이 많았다. 지사장이라는 막중한 책임감과 막중한 업무와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숱이 절반으로 줄었을 때가 그때였다. 무조건 성공적으로 내 미션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어깨를 짓누르는 책임감에 나는 주말과 밤낮없이 일했다. 나의 2년 임기는 성공적으로 끝내었고 지사장 역할도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고 난 한국을 떠났다.


미국으로 돌아가 미국 본사에서 몇 년을 더 일하고 반도체 회사로 이직을 해서 몇 년을 바쁘게 지나다가 한국에 출장을 갈 기회가 생겼다. 내가 세웠던 홍보 대행하 한국 지사에 초대받아서 강북으로 옮긴 사무실을 2015년에 방문하게 되었다. 15년 만에 지사 방문이 된 것이다. 당연히 아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고 사무실도 모두 낯설었다. 그런데 한 가지가 내 눈을 사로잡았고 난 그것을 보면서 울고 말았다. 나를 처음 본 당시 지사장은 무척 당황해했다.

“의자다. 내가 2000년도에 산 의자가 그대로 있다. 그것도 아주 좋은 상태로 새 의자처럼 예쁘게 회의실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니. ”


15년 동안 한국 지사는 많은 직원들과 지사장이 바뀌고 몇 군데 사무실을 계속 옮기면서 그 의자의 근원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6개의 의자는 번창하는 지사와 세월을 같이하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 그 의자는 의자 이상의 의미였다. 나의 피땀 눈물이었고 실패하지 않으려고 두려움에 떨며 잠들던 외로운 밤이었고 수고의 상징인 것이다. 내가 그렇게 고민하고 고민하며 구매했던 의자들이 이렇게 멀쩡하게 15년 후에도 회의실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걸 보고 그동안의 고생한 시간을 보상받는 것 같이 감동했다.


우리가 살면서 일하면서 얼마나 많은 선택을 하는가? 그리고 당시의 선택이 맞았는지는 바로 알 수 없을 때가 대부분이다. 나의 수고가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한참을 지나고 알게 되었을 때 그 감동은 더 크다. 수없이 작고 큰 결정을 내리면고 싸우고 버티면서 미국에서의 직장 세월은 계속되었고 한국 방문중 발견한 작은 가죽 의자는 나의 서로 움과 감격의 눈물이 된 것이다.


한국 지사는 직원도 더 늘었고 좋은 클라이언트를 두고 잘 성장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20주년 기념에 날 초대했고 온라인으로 축하 인사를 전했다. 많은 젊은 후배들을 줌 영상으로 만났고 반짝이는 눈으로 질문을 받고 성의껏 대답을 해 주었다. 그들에게 나의 존재는 legacy로 남아있다고 한다. 나의 고생이 헛되지 않았고 내가 한 일이 의미 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정말 감사하다..

오늘도 언제 결과가 날지 모를 누가 알아줄지 모를 회사 생활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그 수고는 분명 의미 있게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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