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는 언제 어떻게 오셨어요?

by 프로스트

미국에서 처음 만난 한국 사람들끼리는 암묵적으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처음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미국에는 언제 어떻게 오셨어요”?이다.

“ 서른 살에 일로 미국에 왔습니다”.라고 대답 하면 당연하다는 듯이 “남편 일 때문에 같이 이민 오셨군요” 하고 단정해 버리는 한국 사람들의 대부분 이였다.

“아니요. 제 일 때문에 왔어요” 하면 눈이 동글해졌다. 여자 혼자서 유학도 아니고 취직해서 온 사람을 태어나서 처음 본다는 표정들은 한두 번 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중에는 그냥 웃고 말았다.

지난 15년 정도는 늘 같은 교회와 커뮤니티 사람들과 지내면서 미국에 어떻게 오게 되었냐는 질문은 한동안 받지 않았다.


작년부터 의미와 재미를 찾으면서 자기 성장을 하는 한국인 커뮤니티에 소속하게 되면서 세계에 뻗어있는 멋진 한국인들을 알게 되었다. 실리콘 벨리에는 엔지니어와 창업을 하려고 모여든 한국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그룹에는 실리콘 벨리에 사는 사람이 나 혼자이다. 외로움과 이상함을 느끼고 있던 중 센프란 시스코에 거주하는 신입생이 드디어 생겨서 너무 반가웠다. 열정과 배려로 똘똘 뭉친 이상할 정도로 친절한 이 땡땡 대표 멘토님이 마침 센프란 시스코에 출장을 오셨다. 흔치 않은 기회라는 생각에 어금니를 빼고 아파서 집에 누워있다가 그냥 센프란 시스코에 대표님과 신입 회원을 만나러 버선발로 (?) 나갔다. 분위기 좋은 다운타운 빌딩의 라운지에서 만나 같이 웃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질문들로 짧은 만남의 시간들은 번개처럼 빨리 지나갔다. 바쁘신 대표님은 다음 일정을 위해 박땡땡 기사님의 차를 타고 아쉽게 먼저 자리를 비우셨다. 그 바쁘신 일정에 한 시간을 내주신건 엄청난 시간을 내주신 것을 한국 대기업에 다니는 나는 충분히 알고 있기에 90도로 인사하면서 감사 인사를 드렸고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나와 신입 회원만 남게 되었을 때 한동안 안 들었던 질문을 들었다. “ 미국에는 언제 어떻게 오셨어요? 수연님의 인생 스토리가 궁금해요” 그날 내 생일임을 알고 예쁜 꽃다발을 선물한 그녀는 꽃보다 아름다운 눈을 갖고 있다. 그녀의 호기심 가득한 눈은 산호세를 돌아가기 위해서 6시 bullet train 타야겠다는 나의 계획을 변경시키고 눌러앉기로 결심하게 했다. 난 미국 회사에 어떻게 취업이 되었고 나이 서른에 혼자서 미국 산호세에 오게 되었던 간증 같은 나의 이야기를 그녀에게 들려주었다. 7시 기차는 타야 해서 풀 스토리는 나누지 못했고 다음을 기약하고 해어졌다. 퇴근 시간이 지나서인지 비가 쏟아져 재택근무를 많이 해서 인지 기차는 거의 텅텅 비어 있었다. 한 시간 동안 기차에 몸을 싫고 오면서 난 잠시 잊고 있던 치통을 다시 느끼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녀와 나누지 못한 나머지 이야기들과 지금의 나를 바라볼 수 있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미국 땅에 도착했던 그날의 나를 다시 돌아가게 하는 “ 미국은 언제 어떻게 왔는가”라는 질문은 나를 초심으로 돌아가게 했다. 아는 사람 한 명도 없이 너무 낯선 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군분투가 영화처럼 스쳐 지나간다.

아는 교회가 없어서 전화 번호부를 찾아서 찍어서 갔던 한인 교회

방 한 칸을 빌려서 홈스테이 할 때 외로운 백인 주인집 할머니와 수다를 떨면서 자연스럽게 영어 공부를 했던 날들

한국에서 운전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나는 운전을 배우기 위해 회사에서 나오는 “ professional development fee”를 운전학교에 써버렸다. 익숙하지 않은 운전에 옆집 차를 박아 버렸던 날 할머니 집주인 이 나를 위해 그 집에 찾아가 사과까지 해주었다. 난 어쩔 줄을 모르고 어린아이처럼 울고 있었던 그날.

취업 비자를 연장하고 영주권을 신청하고 기다렸던 긴 긴 여정들.

미국에 온 처음 2년은 실수투성이의 내가 5살짜리 꼬마가 된 것 같고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자다가 일어나 소리를 지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미국에서의 커리어 스토리는 매일 매일이 전쟁이라고 생각될 만큼 도전이였고 그 도전은 지금도 이어진다.


해외에 사는 한국인들의 이민 스토리는 밤을 셀 정도로 할 예기가 많다. 나의 이민 스토리를 떠 올릴 때마다 올챙이 시절을 기억하게 하고 더욱 겸손하게 한다. 그리고 감사하게 한다. 내가 지금까지 20년 넘게 미국에 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으며 하나님이 지켜주셨는지를 상기시켜 주기 때문이다.


신입 후배에게 그날 받은 꽃은 아직도 싱싱하고 아름답다. 다음에 만나면 그녀의 스토리를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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