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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메제니 Sep 27. 2022

나는 오늘도 고통에게 배운다

고통이 주는 선물


강박처럼 행복을 쫓아다닌 시절이 있었다. SNS를 보면 모두가 그렇다고 치부해도 무방하리 만치 행복이 차고 넘친다. 행복과 즐거움은 인생에 있어 참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에는 '행복하고 싶어서'라는 바람이 늘 변함없이 존재하지 않는가. 반면 '고통받고 싶어서'라는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지는 않지만, 고통은 우리 삶에 이곳저곳에서 불현듯 탐지된다. 나는 행복만큼이나 고통도 삶에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고통은 몸이나 마음의 괴로움과 아픔을 뜻한다. 몸에 난 상처의 고통은 연고를 바르거나 진통제를 먹어 다스릴 수 있다. 그러나 마음에서 오는 고통은 오로지 스스로 감내해야 한다. 그 누구의 몫도 아닌 내 몫이다.


세상에 고통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각자 고통을 해석하고 다스리는 방법은 모두 다르다.  2008년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 오프라 윈프리의 연설문 What is this here to teach me?(이것이 나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러 왔는가?)를 접했다. 그녀는 삶에 고통이 찾아올 때마다 이 고통이 나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러 온 것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한다고 전했다. 고통이 주는 메시지에 귀 기울여 수정할 수 있다면, 적어도 똑같은 고통을 반복적으로 받지는 않는다고. 나는 이 연설문을 통해 나는 고통이 삶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깨닫는 인식의 전환이 일어났다.


고통은 기회이다.  내 삶에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통렬하게 고민할 수 있는 기회. 고통은 어떤 상황 앞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키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알게 한다. 비교를 당해서는 안 되는 위치에 서 있는 가치들 말이다. 나 자신, 건강, 가족, 시간, 일, 사람. 이와 같이 내 삶을 지탱하는 소중한 가치들은 통합적으로 우선순위에 두어 병렬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이 너무 중요한 나머지 건강을 잃고, 나 자신이 중요한 나머지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면 고통이 찾아오는 것은 순리가 아닐까 싶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성공해서 효도할게요' '내가 잘되면 행복하게 해 줄게'라는 말로 행복한 미래를 저당 잡아 현재의 무례를 서슴없이 범하는 것이다. 그 언젠가에 잘해야겠다고 생각한 시점에 그 사람이 내 곁에 없을 수 있다. 건강,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시간, 좋은 사람들과의 인간관계 등은 하나를 해치운 다음 것을 해치우는 순차적인 방식으로는 얻을 수 없는 가치다. 소중한 것들은 나중에 몰아서 한꺼번에 시간을 낸다고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나에게 무엇이 행복이고, 무엇이 성공이고, 무엇이 소중한지 고통이 주는 메시지를 통해 알 수 있다. 할 일을 하며 꿈을 향해 뛰는 것. 가족과 따뜻한 대화를 나누는 맛있는 식사시간을 가지는 것. 땀 흘리며 운동하고 소중한 사람들의 안부를 챙기는 것. 좋은 책을 읽고, 내 생각을 글을 쓰는 것. 깊은 잠을 자는 것. 이런 행복들은 쫓아다니지 않아도 된다. 있는 그대로 만족하고, 내가 그러기로 마음먹는다면 가능한 지금 바로 여기에 있는 행복이다. 그것을 나는 오늘도 고통에게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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