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메제니 Aug 02. 2022

나는 오늘도 버린다







나는 대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대화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도 매번 즐거운 대화를 나누기는 쉽지 않다. 대체적으로 대화가 즐겁지 않은 경우는 대화의 주제가 맞지 않는 경우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바로 대화하는 상대이다.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손에 박힌 나무 가시 같은 말을 많이 뱉는 사람이 있다. 그런 말들은 며칠이고 기분이 나쁘고 신경에 거슬린다. 나는 그런 말들은 병든 낙엽 같은 말이라고 치부한다.


땅 위로 떨어진 낙엽은 흙 속에 미생물과 만나 거름이 된다. 누군가 치우지 않아도 일정 시간이 흐르면 퇴비가 되고 토양이 되는 것이다. 낙엽이 퇴비가 되는 과정은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그 과정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퇴비를 만드는 데는 환경이 아무리 좋아도 수개월은 걸리고, 종종 은행잎 등 일부 나무의 낙엽은 잘 썩지 않아 오래 걸린다. 잘 썩은 퇴비는 악취가 나지 않고, 좋은 흙냄새가 난다고 한다. 그러나 병에 걸린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은 병원균이 이듬해 다시 병을 일으킬 수 있고, 제대로 썩지 않아 거름의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산불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숲을 채운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들은 내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이 뱉어낸 말들과 닮았다. 토양의 거름이 되는 좋은 말들도 있지만, 썩지 않는 낙엽 같은 말들도 있다. 이는 독설이고, 비방이고, 음해이고, 비아냥이며 거짓이다. 썩어서 없어져 버리길 바라는 말일수록 썩지 않고 많은 밤 불쑥 찾아와 잠 못 들게 한다. 그런 말들이 수북이 쌓이게 되면 속이 더부룩하고 배배 꼬여 이내 나를 태워버린다. 썩지 않은 말은 마음의 불을 일으키는 방화범이다썩지 않은 낙엽이 산불의 원인인 것처럼. 


오래도록 썩지 않고 제 역할도 못하는 병든 낙엽 같은 말은 건강한 해석이 더해져 퇴비가 되기도 하지만 비관적인 해석이 더해져 마음의 병을 일으키기도 한다. 보통 숲에 병든 낙엽이 발견되면 그 낙엽을 골라 쓰레기봉투에 담아서 버린다고 한다. 병든 낙엽으로 인해 산불이 날 불상사를 예방하는 것이다. 병든 낙엽을 버리듯 병든 말들은 골라 집어서 쓰레기봉투에 담아서 버려야 한다. 나의 마음 숲을 지키기 위해서. 분명히 병든 낙엽을 분별하여 쓰레기봉투에 버린 사람은 누구보다 숲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일 것이다. 나 스스로 잘 알아야 분별할 수 있다. 그래야 그 말이 퇴비가 되는 말인지, 쓰레기봉투로 가야 마땅한 병든 말인지 분별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나무에서 낙엽이 떨어지듯 대화를 나누다 보면 별다른 의도 없이 내게 떨어진 말들이 있다. 숲에 낙엽은 여전히 수북하고, 우리가 나눌 말들도 여전히 많다. 그중 썩은 낙엽 같은 말들이 있다면 쓰레기봉투로 직행! 그깟 낙엽에 나를 태우지 않고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버린다. 또 바란다. 향긋한 흙냄새가 나는 사람이기를. 거름이 되고 퇴비가 되는 말들이 오가는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이전 03화 나는 오늘도 시간을 생산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