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그림자 _ 12
인간관계의 피로는 대부분 직접적인 소통 부족에서 비롯된다. 상대와 감정을 직접 나누지 못하면, 결국 그 답답함이 험담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이런 뒷담화에는 불변의 성질이 있다. 아무리 비밀로 하려 해도, 결국 돌고 돌아 당사자에게 전해지는 성질이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당사자에게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전달된다. 전달하지 않으려 조심해도 대화 중에 나오는 미묘한 단서나 말투로 간접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 순간 상대방의 눈빛이나 어색한 미소 등 미묘한 태도의 변화를 통해 우리는 직감적으로 알아챈다.
"이 사람이 내 이야기를 했구나."
특히 소규모 집단에서는 더 복잡하다.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이 소수일수록 뒷담화의 출처를 유추하기 더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딜레마에 빠진다. 내가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걸 드러내야 할까? 아니면 모른 척해야 할까? 쉽지 않은 결정이다. 관계를 지키고 싶지만, 어딘가 찝찝한 기분을 무시하기도 어렵다.
만약 뒷담화 한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험담을 한 사람과 그 내용을 아는 사람 중 누구에게 먼저 이 사실을 털어놓아야 할지도 헷갈린다. 마치 바둑처럼, 어느 한 수가 다음 상황을 크게 바꾸게 된다. 무슨 선택을 하든 그 결과는 관계의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를 키우고 싶지 않아 모르는 척하며 넘어가곤 한다. 하지만 이는 장기적으로 더 큰 문제를 가져오기도 한다. 넘어간다고 해서 마음속에서 불편한 감정이 사라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꾹 참아두면 내면에 더 큰 피로감으로 쌓인다. 그리고 이미 관계의 신뢰에 금이 갔기 때문에 직접적인 소통을 하지 않는 이상 회복이 어렵다. 누구나 오해가 생기면 그때그때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게 마음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또 상황에 따라서 솔직한 대화가 더 관계를 꼬이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기에 대화를 나누더라도 적절한 시기와 대화에 접근하는 방식이 중요하다. 너무 감정적일 때 보다는 조금 시간이 지나 상대방의 성격, 그 시기에 감정, 그리고 내 상태까지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나를 뒷담화 했다는 사실도 씁쓸한데, 이런 노력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참 힘들 수 있다. 그러나 그 관계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신뢰를 회복하려면 서로 마음을 열고 대화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지 않을까.
소통의 부재가 없는 완벽한 관계가 있을까? 달갑지 않아도 뒷담화는 인간관계에서 때때로 겪게 되는 소나기 같다.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와 불편하게 만들지만, 지나가고 나면 대수롭지 않은 비일 뿐. 관계의 날씨는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렵다. 소나기에 흠뻑 젖어 짜증과 허탈함이 밀려왔던 그 시기를 서로 대화로 풀어냈다면 다음 만남은 훨씬 더 괜찮을 것이다. 이런 경험을 서로 '그때 참 찝찝했지, 하지만 지금은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완벽한 소통은 아닐지라도, 상황에 맞는 대처와 서로의 실수를 덮어줄 수 있는 여유를 가져보면 어떨까.
뒷담화. 모르는 척하는 게 가장 편한 방법일지 모른다. 그러나 진정한 관계란 불편함을 마주하고,열린 마음으로서로에게 다가갈 때 깊어진다.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용기를 내보자. 더 성숙하고 의미 있는 관계가 열리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