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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도서관 기행]미국 의회도서관

미국 워싱턴 DC <미국 의회도서관>

by 여행하는가족

산책을 갑니다. 도서관으로!

우리 가족은 틈 날 때마다 도서관을 방문한다. 그렇다고 매번 진득하게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아 책을 읽다 오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 여행을 할 때면 건물을 빠르게 둘러보고 눈에 들어오는 책 몇 권을 뽑아 휘리릭 훑어보다 되돌아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도서관으로 향한다. 뽀얀 종이에 인쇄된 고소한 잉크 향부터 오래된 책에 내려앉은 희미한 먼지의 냄새, 사람들의 조심스러운 몸짓과 소곤거리는 목소리까지. 도서관이 품고 있는 모든 것이 좋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지냈던 몇 년 동안에도 우리는 워싱턴 DC와 그 주변 버지니아, 메릴랜드 일대의 많은 도서관을 방문했다. 책을 빌리거나 도서관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 동네에서도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으나 다른 도서관은 어떻게 생겼고 그곳을 찾는 이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했다. 그래서 마치 산책을 나서는 마음으로 옆 동네 도서관까지 기웃거렸던 것이다. 미국의 많은 공공 도서관이 그러하듯 우리가 다녀온 곳들도 대부분 생김새나 시스템이 비슷했다. 이런 까닭에 훗날, 거기가 어디였더라라고 자문하게 만드는 곳이 대다수였지만 유독 한 곳만은 여느 도서관과는 다른 컬러로 오래도록 뇌리에 남아 있다.


미국의회도서관 입구에서 바라본 미국 국회의사당. 이렇게나 가깝다.


국회의사당 옆,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

워싱턴 DC의 국회의사당(United States Capitol)은 미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물로 매년 수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잡아끄는 곳이다. 그런데 그 바로 옆에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는 많지 않다. 숨겨진 보물과도 같은 이 공간이 바로 오늘 우리가 찾아갈 미국 의회도서관(Library of Congress)이다.


미국의회도서관은 각각 미국의 2, 3, 4대 대통령의 이름을 따, 존 애덤스 빌딩(The John Adams Building), 토머스 제퍼슨 빌딩(The Thomas Jefferson Building), 제임스 매디슨 빌딩(The James Madison Memorial Building)이라 명명된 세 개의 건물로 구성된다.

도서관의 역사는 미국이 수도를 필라델피아에서 워싱턴 DC로 옮기던 18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국회의사당 건물 내부에 도서관이 자리하고 있었으나 영국의 공격으로 국회의사당이 불타게 되면서 도서관의 소장품들까지 소실되었다 한다. 이 비극적인 사건 이후, 토머스 제퍼슨 전 대통령은 도서관의 재건을 위해 본인이 평생에 걸쳐 모은 6천 여 권의 도서를 도서관 측에 판매한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1897년, 현재의 위치에 미국 의회도서관이 다시 한번 문을 열게 된다.


세계 최대라는 수식어를 떼고도 방문할 가치가 있는 도서관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이라는 타이틀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커다란 건물 세 동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안에 대중에서 공개된 열람실만 무려 21개나 있다는 사실에 귀가 솔깃해진 것이다. 하지만 미국 의회도서관은 규모만 큰 것이 아니라 소장자료의 규모와 질 또한 세계 최고급이다. 2020년 기준, 약 460개 언어로 출간된 2천5백만 권 이상의 도서와 7천4백만 점을 훌쩍 넘는 분량의 문서 자료를 비롯해 5백6십만 점의 지도 자료와 2천2백만 점에 이르는 오디오/비디오 자료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소장자료는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한다. 금속활자를 사용해 인쇄된 인류 최초의 성경인 구텐베르크 성경도 미국의회도서관의 대표 소장자료 중 하나다. 한 번은 지리와 지도를 전문으로 다루는 열람실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방대한 양의 자료가 비치되어 있던 그곳에서 우연히, 조선시대에 제작된 지도를 만나 반가운 마음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중심 건물이자 가장 널리 알려진 토머스 제퍼슨 빌딩의 아름다움 또한 나로 하여금 미국 의회도서관을 거듭 방문하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지극히 화려한 인테리어 때문에 유럽의 박물관이나 왕궁을 떠올리게 하는 이 건물은 곳곳이 그림이며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언뜻 보면 단순히 유럽의 유명 건축물을 따라 만든 공간인가라는 착각이 들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장식 하나하나가 모두 이 건물을 설명하는 상징으로서 사용된 것이란다. 뿐만 아니라 개관 즈음, 미국이라는 나라가 이룩해 낸 기술적 진보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지 건물 내외부에서 당시의 신기술이 적용된 사례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가령, 토머스 제퍼슨 빌딩의 전구들은 도서관 건립 당시에 설치된 것으로, 미국 의회도서관은 이 나라에서 대중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전기를 사용하는 건축물이라고 한다.


미국 의회도서관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의회'라는 단어 때문에 미국 의회도서관이 특정 계층에게만 공개되는 곳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실은 오히려 그 반대다. 국적을 불문하고 신분을 증빙할 수 있는, 예를 들면 여권과 같은 서류만 있다면 미국인이 아니더라도 도서관 이용증을 발급받아 열람실을 이용할 수 있다. 게다가 볼거리가 넘치는 토머스 제퍼슨 빌딩의 경우, 해설사와 함께 하는 도서관 투어도 무료로 제공된다.


이 도서관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장소는 토머스 제퍼슨 빌딩에 위치한 메인 열람실이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영화, <내셔널 트레져 National Treasure>를 비롯한 몇몇 영화에도 배경으로 등장한 바 있는 곳이다. 평소 이 공간에는 도서관 이용증이 있는 사람만 입장이 가능하고 개인 소지품은 들어가기 전, 클록 룸에 반드시 맡겨야만 한다. 게다가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이 불가한, 한마디로 깐깐하게 관리되는 곳이라 하겠다. 그러나 일 년에 단 두 번, 프레지던츠 데이(Presidents' Day)와 콜럼버스 데이(Columbus Day)에는 메인 열람실로 향하는 문이 활짝 열린다. 그리고 누구라도 그 아름다운 공간에 들어가 마음 편히 실내를 둘러보고 마음껏 셔터를 누를 수도 있다. 굳게 닫혀 있던 메인 열람실의 창고까지도 대중에게 공개된다기에 나도 오픈 하우스 데이에 맞춰 다시금 도서관을 찾았다. 조심스럽게 들어간 창고에는 오래된 종이 냄새가 가득했다. 그곳엔 나무로 만든 작은 서랍이 많았는데 살며시 열어 보니 작은 손글씨가 쓰인 카탈로그들이 서랍마다 가득 들어 있었다. 그 옛날 이 종이에 글자를 한 자 한 자 적어 내렸을 이들을 상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경험과 지혜와 즐거움을 주고받았을까. 미국 의회도서관, 워싱턴 DC를 떠나온 지 7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내 마음속에 오롯이 아로새겨져 있는 잊지 못할 장소다.




[기고처] 월간 국회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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