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어둠을 뚫고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축축한 날에는 집에서 뒹굴거리고만 싶다. 따뜻한 방바닥에 배 깔고 누워 좋아하는 과자를 아작아작 씹어 먹으며 이미 몇 번이나 읽었지만 또 읽고 싶어지는 책을 읽다가 졸다가를 반복하는 것이다. 도톰한 이불을 온몸에 돌돌 말고 있다면 금상첨화일 테지. 아, 상상만으로도 행복해!
하지만 그날만은 그럴 수가 없었다. 아니, 한시라도 빨리 바깥으로 나가야만 했다. 홀몸으로 우산을 들고나가기에도 버거운 날씨에 굳이 유모차에 방수커버를 씌우는 요란까지 떨어가며 아이를 대동하고 거리로 나선 이유는, 그날이 바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을 만나러 가기로 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비가 내리고 바람이 몰아치는 더블린(Dublin)의 거리로 나섰다.
더블린은 아일랜드의 수도로 이 섬나라의 동부에 자리 잡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수도 자리를 꿰차온 이 도시는 바로 옆 나라인 잉글랜드의 지배와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투쟁과 내전 등을 거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전쟁의 배경이 된 아픔을 지닌 곳이기도 하다. 도시를 남과 북으로 나누는 리피강(Liffey River)을 기준으로 남쪽 지역에는 긴 역사를 지닌 구시가지가 자리하고 있는데 지금 우리가 향하는 곳도 바로 여기에 있다.
바람에게서 측은지심을 기대한 내가 어리석었다. 낯선 곳에서 길을 찾느라 여유가 없는 남편 곁에서 한 손으로는 유모차를 밀고 다른 한 손으로는 우산을 쥐고 겨우겨우 앞으로 나아가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비바람은 어찌나 세게 불어대던지. 집을 나설 때부터 불안 불안하던 우산이 결국 자연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뒤집히고 말았다. 그것을 다시 제 모양으로 되돌려보겠다고 엄마는 고군분투를 하고 있었지만 다행히 아이는 유모차 안에서 평온하다. 제 얼굴을 향해 떨어지는가 싶더니 방수커버의 호위에 막혀 또르르 굴러 떨어지고 마는 빗방울을 신기한 듯 구경하다가 다음 순간, 그것을 잡아보겠다고 그 짧고 통통한 손가락을 앞으로 쭉 내밀고 있다. 제 모습을 되찾았다가 자꾸만 다시 뒤집히려는 우산을 살살 달래 가며 얼마나 더 걸었을까. 사람과 자동차로 북적이는 거리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상당히 큰 데다 육중해 보였는데 가만 보니 거기에는 조금 더 작은 문이 붙어 있었고 그것은 종종 쩍 하고 입을 벌리며 사람들을 집어삼키거나 토해내고 있었다. 우리 가족도 다른 이들처럼 그 앞으로 다가가 힘을 다해 문을 열어보았다.
비 오는 날의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 풍경
아일랜드에서 가장 긴 역사를 지닌 대학,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 Dublin)는 이 섬나라에서 가장 긴 역사를 지닌 대학교다. 1592년, 잉글랜드와 아일랜드를 통치하던 엘리자베스 1세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와 옥스퍼드 대학교를 모델로 하여 교육기관을 설립한다. 이후 더블린에 기증된 학교가 바로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로 방금 전 우리가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이다. 설립 초기에는 아일랜드의 국교가 성공회였던 까닭에 성공회 교도들만이 이곳에서 수학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1793년부터는 가톨릭 신자들의 입학도 허용되었고 1873년에 이르러서는 성공회와 가톨릭 이외의 종교를 가진 이들도 트리니티 칼리지의 학생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 때는 유럽의 변방처럼 느껴지던 곳이지만 알고 보면 더블린은 세계적인 문학가들을 많이 배출한 도시다. 영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인 제임스 조이스, 우리에게는 『걸리버 여행기』로 유명한 조너선 스위프트, 어린이들에게는 「행복한 왕자」 동화로 성인들에게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등으로 널리 알려진 오스카 와일드를 비롯하여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쓴 사무엘 베케트와 공포소설, 『드라큘라』로 유명세를 얻은 브람 스토커가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이외에도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작가들이 많지만 글이 더 길어질까 봐 그동안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책의 저자 위주로 적어보았다. 왜 내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냐며 무덤에서 펄쩍 뛰실 분들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 여하튼 요점은 더블린은 세계적인 문학가들과 인연이 깊다는 것, 그리고 그들 중 몇몇은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젊은 날을 보내기도 했다.
내리는 비를 뚫고 켈스의 서를 보러 간 이들은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
조너선 스위프트와 사무엘 베케트, 그리고 윌리엄 예이츠 등,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한때는 푸른 청춘이었을 이들이 밟았을 오래된 돌길을 걸으며 나는 그 길만큼의 역사를 품고 있는 캠퍼스의 건물들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다니는 학교도 아니고 아일랜드 더블린에까지 날아가 남의 학교엘 굳이 방문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 안에 우리의 목적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곳을 찾은 대부분의 여행자들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그칠 줄 모르는 빗줄기 속에서도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Old Library at Trinity College Dublin)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켈스의 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은 아일랜드에서 가장 규모가 큰 도서관이자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를 포함한 500만 점에 이르는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곳이다. 가장 유명한 소장품인 동시에 우리를 여기로까지 이끈 것은 다름 아닌 켈스의 서(Codex Cenannensis, The Book of Kells)로 이 나라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보물로 간주되는 책이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존재다. 서기 800년 경에 만들어진 켈스의 서는 라틴어로 작성된 복음서, 그 안에는 예수의 전기와 네 개의 복음이 담겨 있다. 천 년도 전에 제작된 책이라는 점에서도 가치가 높지만 켈스의 서를 특별하게 만든 가장 큰 요소는 뭐니 뭐니 해도 페이지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화려한 장식이다. 기독교의 문양과 켈트 전통 문양 등이 어우러져 글자가 그림인 듯 그림이 글자인 듯 매 페이지 황홀경이 펼쳐지는데 총 680페이지에 달하는 볼륨을 생각했을 때 이 복음서를 만든 이들은 자신의 일생을 걸고 맡은 일에 임했을 것이 분명하다. 모태 신앙에 가깝지만 아직도 신앙심을 키우지 못한 나는 종교와 관련된 유물을 볼 때면 그것을 탄생시킨 이들이 지니고 있었을 강한 믿음이라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켈스의 서를 보기 위해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을 찾는 방문객 수는 매년 5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작지만 강한, 책이라는 매체의 힘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아닐까?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의 롱 룸
올드 라이브러리의 롱 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책을 직접 보고 싶어 찾아간 그곳에서 방문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켈스의 서뿐만이 아니었다. 도서관 중앙에 자리한 기다린 회랑인 롱 룸(The Long Room), 그 공간이 선사하는 감동 또한 못지않았다. 18세기 초반에 지어졌다는 65미터 길이의 긴 회랑 양쪽으로는 거인처럼 큰 키를 자랑하는 우아한 디자인의 서가가 줄지어 서 있었는데 거기에 빼곡하게 꽂힌 책들은 무려 20만 권이 넘는단다. 아름다움을 넘어서 경이로운 그 광경이란! 내가 있는 곳은 분명 도서관인데 책으로 만들어진 숲 안에 들어서 있는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인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목재에 조각을 해 만들었다는 반원형태의 천장도 롱 룸의 경이로움에 힘을 보탠다. 최초에는 반듯한 모양이었던 것을 1860년에 이르러 오늘날의 형태로 바꾼 것이라고 한다. 서가 앞부분마다 설치되어 있는 대리석으로 만든 흉상들도 시선을 사로잡았다. 서구의 대표적인 철학자와 문학가를 비롯하여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와 관련된 주요 인물들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고.
아일랜드의 자존심과도 같은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을 뒤로하고 나오는 길, 새벽 나절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오늘의 계획을 취소할까라고 고민했던 짧은 시간을 후회했다. 만약 그때, 잠시의 불편함과 귀찮음에 굴복했더라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풍경 하나를 잃고 말았겠지. 그러니 그 아침, 용기 있게 집 문을 박차고 나온 우리를 우쭈쭈쭈 많이 많이 칭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