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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도서관 기행]삼청공원 숲 속 도서관

대한민국 서울 <삼청공원 숲 속 도서관>

by 여행하는가족

특별한 도서관을 찾아다니는 것은 큰돈과 긴 시간을 들이지 않고서도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음식점이며 옷, 기념품 등속을 파는 크고 작은 가게들과 갤러리와 같은 문화공간들이 사이좋게 어깨를 맞댄 삼청동길. 그곳으로부터 걸어서 십 분이 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온 가족이 함께 다녀오기 좋은 특별한 도서관이 있다. 이제부터 나는 그곳으로 다녀왔던 어느 해의 작은 소풍 이야기를 꺼내보려 한다.


여름, 삼청공원

사람과 자동차로 북적이는 거리와 삼청공원을 가르는 문은 마치 동화 속 마법의 세계로 안내하는 문과도 같다. 그것을 경계로 거짓말처럼 자연이 인공적인 것을 압도하는 세상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서울 한복판에 자리 잡은 아파트에 살다 보니 푸르름이 그리운 날들이 많았다.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가 있던 아파트에도 키 큰 나무부터 시작해서 온갖 빛깔의 꽃과 열매를 틔워 내는 식물들까지를 고루 품은 화단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들은 관상용에 가까웠기에 늘 아쉬웠다. 같은 나무에 매달린 같은 잎이라 해도 계절에 따라 빛도 향도 다르다. 봄에 만나는, 싱그러운 연둣빛에 가까운 그것은 쌉싸름하다고 해야 할까 조심스럽다고 해야 할까, 조금은 설익은 향내를 풍긴다. 그랬던 것이 시간이 흘러 여름으로 다가갈수록 점차 초록 빛깔 짙어지며 자신만의 향기를 거침없이 내뿜기 시작한다. 가을이 되어, 이제는 제가 살아온 삶을 반영하듯 어떤 것은 붉은색으로 또 어떤 것은 노란색으로 마무리되는 잎새의 한생을 바라보노라면, 어쩌면 그것은 우리 인간의 삶과도 닮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 가족이 삼청공원에 방문했던 날은 하루가 다르게 짙어가는 초록이 가득했던 여름의 초입이었다. 입구를 지나 조금 더 걸으니 저 멀리 나무 사이로 얌전한 단층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삼청공원 숲 속 도서관

오늘의 목적지, 삼청공원 숲 속 도서관이다. 하얀 빛깔의 벽과 나무의 은은한 색감, 우리 조상들이 살던 옛집의 서까래를 떠올리게 만드는 천장은 이제 갓 정성스레 세수를 끝마친 말간 얼굴을 닮았다. 단아한 한옥을 연상시키는 도서관의 내부가 넓진 않지만 아기자기하게 분할되어 있어 자리를 옮겨 다니는 재미를 선사한다. 사방으로는 큼지막한 창이 나 있는데 그곳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바깥 풍경 덕분인지 도서관은 실제보다 훨씬 더 넓어 보인다. 삼청공원 숲 속 도서관은 종로구의 구립 도서관이다. 지난 2013년, 공원 안에 자리하고 있던 매점을 리모델링해서 도서관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삼청공원 안에서도 외진 위치에 있었던 까닭에 결국엔 문을 닫고 폐가처럼 변해버렸던 곳이 이제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국적에 관계없이 서울시민과 서울 소재 직장인 또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과거의 도서관은 책장 넘기는 소리마저 조심스러운 경직된 공간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도서관은 달라졌다. 도서관이라는 명패를 단 곳들이 어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확연하다. 삼청공원 숲 속 도서관도 마찬가지여서 이곳에도 아이들을 위한 자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1층과 지하층을 연결하는 계단 옆에는 신발을 벗고 이용해야 하는 좌식 공간이 있고 그곳에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키 작은 책장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몸집이 작은 아이라 해도 원하는 책을 스스로 뽑아 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숲 속에 있는 도서관이라서 그랬나? 유독 아이는 사람이 아니라 차라리 한 마리 날다람쥐라는 표현에 더 걸맞은 속도와 몸짓으로 도서관을 누비고 다녔다. 이리 가서 이 책 뽑아 휘리릭 넘겨보고 곧이어 저기 가서 저 책 뽑아 읽고. 문 닫을 시간이 가까워오자 마음이 급해진 아이의 몸놀림은 처절할 정도로 민첩해졌다. 급기야 신발을 신고 벗을 시간조차 아까웠던지 맨발로 스텝까지 꼬여가며 돌아다니는 모습이 그쯤 되니 웃긴 것을 넘어 안쓰럽기까지 하다. 커다란 창으로 쏟아지는 햇살과 푸르른 기운을 온몸으로 받으며 나도 책 한 권 제대로 읽어보고 싶긴 했다. 그러나 너무나도 부지런히 책장을 옮겨 다니는 아이를 혼자 내버려 두고 양심상 느긋하게 내 책에 집중할 수는 없었기에 나도 한 마리 엄마 다람쥐가 되어 아이를 졸졸 쫓아다니며 우리 집 꼬마가 빼낸 책을 도로 제 자리에 꽂아 넣다 보니 어느덧 정말로 도서관이 문을 닫을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아쉬운 마음을 도서관에 남겨둔 채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생태 도서관

건물을 나서기는 했지만 아직 도서관을 완전히 떠날 수는 없었다. 바로 옆에 놀이터, 그것도 귀하디 귀한 모래 놀이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종로구가 운영하는 유아숲체험원 중 하나다. 인공 시설물 대신 자연에서 온 소재를 활용하여 만들어진 놀이 공간과 그 주변의 삼청공원이 품고 있는 자연 속에서 아이들은 유아숲지도사의 인솔 하에 직접 자연을 체험하고 즐길 수 있다고 했다.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시간은 아니었지만 놀이터는 누구에게나 무료로 개방되어 있어 우리 부부도 근처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랜만에 모래를 본 아이가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려가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버렸기 때문이다. 도서관의 불은 꺼진 지 오래이지만 우리 셋은 수많은 다른 가족들을 맞이하고 또 떠나보내며 같은 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신나게 노는 내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행복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점점 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배가 고파진 것도 사실이어서 간절한 눈빛으로 이제 그만 갈까? 엄마, 아빠 배가 너무 고픈걸이라고 말해보았지만 우리 집 꼬마는 그 말을 들었는지 어쨌는지 꿈쩍을 않는다. 그래, 네 의지 잘 알았다. 어느새 그렇게 한참을 더 모래밭에서 뒹굴다 결국 꼬질꼬질 거지꼴이 된 아이를 삽으로 푸듯 간신히 안아 올린 우리 부부는 근처 수돗가에서 아이를 대충 씻긴 후 드디어 삼청공원 숲 속 도서관을 떠나올 수 있었다. 아, 분명 고즈넉한 숲 속 도서관에 다녀왔는데 나는 왜 이렇게 진이 빠지지?


그날의 안녕이 궁금해지는 아침

삼청 공원을 빠져나와 다시 삼청동길로 접어들었다. 유모차를 밀고 가다가 근처의 가게에서 뭣에 홀린 듯 제일 커다란 맥주 한 컵을 산 나와 남편은 그 마법의 에너지 드링크를 홀짝이면서 그날의 해가 멀어져 가는 길을 걸었다. 한바탕 신나게 논 덕분일까? 우유를 손에 든 아이는 유모차의 흔들림에 몸을 맡긴 채 눈이 감길락 말락 하고 있었다.


그날, 길맥에 취했는지 어쨌는지 나는 삼청동의 한 가게에서 나에게는 어울리지도 않는 옷이랑 신발을 사고 말았다. 그런데 일 년에 한 번 몸에 걸칠까 말까 한 그것들을 국제 이삿짐에 바리바리 싸가지고 두바이에까지 가지고 와버렸다. 오늘 아침, 우연히 옷장을 열었다가 그 옷을 발견하고는 문득, 삼청동 나들이가 떠올랐던 것 같다. 그때 그 옷가게는 안녕할까? 우리의 아이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해 준 삼청공원 숲 속 도서관과 모래 놀이터도? 지나고 보면 힘들었던 기억은 깨끗하게 증발되고 싱그러운 느낌만 남은 그 여름날의 숲 속 도서관. 그곳의 안녕이 궁금해지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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