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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각 Dec 31. 2020

절박하고 자유로운 영혼을 위하여

각오는 했었지만 첫 학기 첫 번째 수업의 첫 번째 과제부터 숨이 막혀왔다. 기초 그래픽 디자인 수업의 교수는 첫 번째 시간부터 영어로 두 페이지 가까이 빼곡하게 쓰여있는 과제물 안내 문서를 나누어 주었다. 요약하자면 과제의 주제는 데이브 히키 Dave Hickey의 <에어 기타: 예술과 민주주의에 관한 에세이 Air Guitar: Essays on Art & Democracy>라는 스물세 편의 단편 에세이가 담긴 책을 읽고, 그중 마음에 드는 세 편의 에세이를 골라 각각의 에세이를 주제로 한 세 권의 책 표지 디자인을 만들어 오는 것이었다. 짐작하다시피 데이브는 영어로 에세이를 썼기에 나는 일주일 동안 영어가 빼곡히 박힌 이백 페이지짜리 책을 읽고 세 가지 책 표지 디자인까지 해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 시간에 영어 책 한 페이지를 읽는 독해 능력을 갖추고 있는 나로서는 하루에 열 시간씩 이 책만 읽어도 꼬박 삼주를 읽어야 할 판이었다. 처음 다섯 페이지 정도를 꾸역꾸역 읽던 나는 이런 식으로는 미래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한 문장을 해석하기 위해 사전을 세 번씩 찾고 있으려니 내가 영문과에 온 것인지 디자인 스쿨에 온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삼일 만에 책 읽기를 포기한 나는 에세이 제목과 첫 페이지의 문장 몇 줄만으로 디자인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곧장 포토샵 Photoshop을 열고 동그라미와 네모 세모를 마음 가는 대로 그려 넣기 시작했다. 틈날 때마다 집에서 포토샵을 연마해 왔기에 도형 몇 개 만들어 붙이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음악에 관한 이야기이니 원을 그려서 이리저리 배치해 보는 것이 좋겠어. (낑낑거리며 포토샵으로 동그라미 열두 개를 어수선하게 배치하는 나.) 자, 이제 아래쪽이 좀 허한 것 같으니 길쭉한 네모를 빈 공간에 그려 넣어야지. (길고 검은 사각형을 동그라미 아래 꾸역꾸역 채워 넣는 나.)


다양한 업계의 디자이너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디자인은 주제를 곱씹어보고 기본 구상을 하는데서 시작한다. 관련 자료를 조사하고 원하는 디자인 스타일을 찾아 주제에 맞는 스케치를 이리저리 그려보면서 미래에 완성될 작품에 대한 설계를 해 나간다. 하지만 나는 디자인 스쿨에 운 좋게 들어왔을 뿐, 미련하게도 디자인에 대한 기본 개념 조차 없는 상태였다. 스케치고 구상이고 애당초 머릿속에 개념이 없었기에 곱씹을 것도, 고민할 것도 없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작업은 거침없이 진행되었다. 책도 읽지 않은 데다가 디자인 작업에는 망설임이 없었으니 과제는 순식간에 완성되었다. 일주일짜리 과제를 하룻밤에 완성한 나는 스스로 완성한 첫 작품에 도취해 행복감이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서점에서 돈 내고 산 책 표지들과 비교했을 때 좀 부족한 것 같아 보이기도 했지만 나는 그저 숙제를 끝냈다는 기쁨으로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며칠 뒤 기다리던 수업 시간이 돌아왔다. 교수는 과제 크리틱 critique을 진행할 테니 출력해서 가져온 각자의 과제들을 교실 벽에 테이프로 붙이라고 했다. 스무 명 남짓한 학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새하얀 교실 벽에 줄지어 자신들의 작업물을 붙이기 시작했다.


떠들썩한 몇 분의 시간이 지나고 교실의 한쪽 벽면은 개성 만점의 수많은 작업물로 채워졌다. 서로가 서로의 작업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무척 적나라한 시간이 막 시작되었다. 한쪽으로 줄지어 모여선 학생들은 벽면에 붙은 다른 학생들의 작품을 말없이 살펴보고 있었다. 간간히 작은 목소리로 의견을 나누며 벽에 붙은 작품들을 가리키는 학생들도 있었다.


학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새하얀 교실 벽에 줄지어 자신들의 작업물을 붙이기 시작했다.


나의 문제는 무엇이 잘 된 디자인인지 알아보는 눈이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디자인을 배우기 위해 디자인 스쿨에 들어온 것이기에 디자인을 모른다는 것이 문제가 될 이유는 사실 없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미 시각 디자인에 대한 열정과 관심이 대단한 상태였고 이 강의실 안에 나만큼 디자인에 대해 무지한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조금씩 자신감이 떨어지면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거 누구 작품인가요?”


교수가 첫 번째 작업물 앞으로 다가가 학생들에게 물었다. 스타일리시한 블라우스와 치마를 블랙 앤 화이트로 차려입은 여학생이 구석에 선 채 손을 들었다. 그녀는 도도한 표정에 알듯 모를듯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단추를 두어 개 풀어헤친 블라우스 아래로 도드라져 보이는 가슴의 굴곡이 그녀의 자신감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흥미로운 디자인이네요. 어떤 생각으로 만든 것인지 설명해줄래요?”


그녀는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딱히 새로울 것도 없는 뻔한 이야기를 너무도 당당하고 거침없이 말하는 그녀의 기세에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흥미로운 시작이니 계속 진행해보라는 말과 함께 다음 작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 작품을 만든 학생은 시드 비셔스 Sid Vicious 같은 헤어 스타일을 한 채 귀와 코에 피어싱을 열다섯 개 정도 박은 펑크 키드였다. 그의 왼쪽 팔꿈치 아래는 크고 작은 타투로 가득 차 있었다. 교수는 그의 작품을 썩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지만 그 학생도 교수를 썩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교수가 뭐라고 하던 자기 갈 길을 가겠다는 그의 자세에서 강한 확신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내게는 없는 종류의 확신이었다.


열 명 남짓한 학생들의 작품에 대해 이런저런 크리틱이 이어진 뒤 내 차례가 되었다. 벽에 붙은 내 작품을 바라보던 교수는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가만히 서 있었다. 도발적이고 천재적인 학생의 등장에 충격을 받은 것인지, 아니면 하도 엉망이라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나는 긴장감과 기대감이 교차하는 마음으로 초롱초롱 빛나는 눈을 한 채 교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음... 무얼 표현하고 싶은 것인지는 알 것 같아요. 하지만...”


숨을 돌리고 정신을 차린 교수는 내 작품이 얼마나 엉망인지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교수는 학생들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도 할 말을 다하는 신통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내 작품에서 나오는 강력한 혼돈의 아우라 앞에서는 그의 신묘한 능력도 소용이 없는 듯했다. 그 아우라 때문인지 내 작품에 대해 입을 여는 학생도 없었다. 교수는 얕은 한숨을 몇 차례 섞어가며 내 작품에 대한 비평을 힘겹게 끝마쳤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덕담도 해 주었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실망했다. 못해도 너무 못하나 보다. 그날 밤 나는 먼 동이 틀 때까지 걱정으로 가득 찬 머리를 쥐어뜯으며 과제를 붙잡고 앉아있었다.




영어도 못하고 나이는 다른 학생들보다 열 살이나 많은데 처음 해 간 디자인 과제마저 낙제점을 받자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러다 늦은 유학생활이 실패로 돌아가면 꼼짝없이 인생 낙오자가 될 것만 같았다. 절박한 마음에 하루가 멀다 하고 밤낮없이 작품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이틀에 한 번 꼴로 밤을 새워 작업을 하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디자인을 잘 알고 있었거나 가진 재능이 더 많았다면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부족함을 채울 방법은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몸으로 때우는 것임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실력을 향상시킬 더 좋은 방법을 알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는 나의 가장 중요한 디자인 평론가가 되었다. 몇 시간 동안 끙끙대며 만든 작업물이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 싶으면 나는 그녀를 졸졸 따라다니며 의견을 구걸했다. 내가 만든 작품을 보고 스스로 확신을 가질만한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디자인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지만 더 나은 선택지를 감각적으로 찾아내는 통찰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두 가지 시안을 보여주면 망설임 없이 한 가지를 선택하곤 했다. 아내가 선택해 준 작업물을 가지고 수업에 들어가면 내가 선택한 작업물을 가지고 수업에 들어갈 때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곤 했다. 때론 그녀가 나보다 디자인을 더 잘하는 것 같아 절망감이 들기도 했지만 돌아갈 곳이 없는 나로서는 앞으로 직진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집과 학교를 오가며 작업만 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영어 실력 향상을 위해 의도적으로 반드시 수업에 참여하기로 결심했다. 매 수업시간마다 질문이던 발표던 한 마디씩 꼭 하고야 말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고 매일 집을 나섰다. 처음에는 교수의 말을 잘못 알아듣고 엉뚱한 대답을 하기도 하고 대화의 맥락에서 벗어난 질문을 던지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럴 때마다 부끄럽고 힘들었지만 절박감이 수치심을 무력화시키곤 했다.


한 달 동안 절박한 마음으로 학교 생활을 했지만 결국 첫 번째 과제는 엉망으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처음 시작이 너무도 엉망이었던 데다가 요령도 없었기에 이리저리 헤매기만 한 채 한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말할 수 없이 속이 쓰렸지만 백 퍼센트 내 잘못이었다.




두 번째 과제는 건축가 마르셀 브로이어 Marcel Breuer에 관한 포스터를 만드는 것이었다. 새로운 과제를 받으면 환골탈태한 모습으로 끝내주는 작품을 만들겠다고 벼르고 있던 나는 밤낮없이 새로운 작품 구상을 하기 시작했다. 도서관에 처박혀 인터넷과 책들을 뒤져가며 마르셀 브로이어에 관한 아이디어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열심히 뒤지다 보면 무언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나의 열정적인 리서치에 한몫했다.


양질의 리서치가 양질의 디자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방대한 리서치가 반드시 좋은 디자인 결과물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디자인을 공부한 지 한 달 된 새내기 학생이 요령 없이 밀어붙이는 리서치 강행군에 나는 스스로 지쳐가고 있었다. 도서관에 앉아 자료 조사만 하는 것에 지친 나는 마르셀 브로이어가 디자인했다는 휘트니 뮤지엄 Whitney Museum이나 둘러볼 겸 지하철에 올라 어퍼 이스트 Upper East로 향했다.


75가와 매디슨 애버뉴 Madison Avenue 교차로에 다다르자 독특한 형태의 빌딩이 눈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테트리스 블록처럼 생긴 건물의 옆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순간 머릿속에서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정확히 어떤 형태의 결과물이 탄생할지 알 수는 없었으나 머릿속의 인상을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나는 미술관 구경을 포기한 채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은 나는 디자인 시안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생각나는 대로 마구 그려대기 시작한 지 한 시간 만에 수십 장의 스케치가 완성되었다. 스케치를 바라보면서 직감적으로 이번 작품은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감이 사라지기 전에 작업을 마무리하고 싶었기에 작업은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75가와 매디슨 애버뉴 교차로에 다다르자 독특한 형태의 빌딩이 눈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From Wikipedia CC BY 2.0




“이건 누구 작품이죠?”


벽에 붙은 내 작품을 가리키며 기초 그래픽 디자인 교수가 물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손을 들자 교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을 이었다.


“굉장히 흥미로운 디자인이네요. 지난번 작품과는 비교도 안되게 놀라운 발전이에요.”


교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었는지 나에게 설명을 요청했다. 나는 만면에 미소를 감추지 못한 채 휘트니 뮤지엄을 방문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다가 바람이라도 쐴 겸 뮤지엄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떠오른 어떤 영감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는 짧은 이야기였다. 교수는 제법이라는 듯 흐뭇한 미소를 띠고는 계속 열심히 작업해보라는 말과 함께 다음 학생의 과제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른 학생들의 작품에 관해 이야기하는 교수의 이야기가 더 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교실 한쪽 벽면에 자랑스럽게 붙어있는 나의 포스터만이 내 오감을 사로잡고 있었다. 나르키소스가 강물에 비친 제 얼굴을 바라보듯 나는 나의 작품과 사랑에 빠졌다.


머릿속에 추상적으로 존재하던 어떤 아이디어가 내 손에 의해 현실에서 구현되는 경험을 통해 나는 어떤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어딘가 막혀있는 것 같았던 마음 한 구석이 환하게 밝혀지면서 자유로워지는 느낌이었다. 물론 교수에게서 처음으로 칭찬을 받은 기쁨에 그저 기분이 좋아진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것이 창작이 주는 일종의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창작을 할 때마다 해방감이 보상으로 주어지는 삶이라니, 디자이너가 어느 때보다도 매력적인 직업으로 느껴졌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초조했던 십 년 전의 나는 세월이 지나 그토록 꿈꾸던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디자이너가 되었다. 막상 전업 디자이너가 되고 나니 당시에 꿈꾸던 모습과는 어딘지 조금 다른 것 같다. 반복되는 작업으로 매너리즘에 빠진 나 자신을 발견하는 날이면 창작의 기쁨을 누릴 기회가 없는 현실에 문득 서운함을 느끼기도 한다.


지금까지 디자이너로서 나의 삶은 큰 부족함 없이 비교적 평탄했다. 대단한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지만 존재의 의미를 찾지 못할 만큼 미미한 인생도 아니다. 당장 오늘 밤에라도 자유의 날개를 달고 나만의 창작 활동을 할 수 있을 테지만 현실의 나는 창작보다는 맥주와 마른안주를 곁들인 넷플릭스 드라마에 굴복하고 만다.


십 년 전 디자인 스쿨 새내기 시절의 풋풋한 작품들을 보고 있자니 절박하면서도 자유로웠던 기초 디자인 강좌의 내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그때의 풋풋한 내가 캔맥주를 홀짝이는 지금의 나를 보면서 약간의 경멸과 위로를 건네주길, 그리고 아쉬운 대로 만족을 느껴 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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