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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각 Nov 24. 2020

알리바바와 불한당들과 샌드위치맨

인천발 뉴욕행 비행기에서 막 내린 우리는 콜택시를 찾아 공항 출구 앞을 이리저리 헤매고 있었다. 나를 포함 미술학원 동기인 네 명의 새내기 미대생들, 그리고 나를 따라온 나의 아내까지, 우리 다섯 일행은 각자 살 집을 구할 때까지 이 주 동안 뉴욕의 한 민박집에서 같이 지내기로 한 상태였다. 


“아니 이건 이야기가 다르잖아요!”


공항 픽업을 위해 한국에서 뉴욕의 한인 콜택시를 예약한 세준이의 고함소리가 건너편에서 들려왔다.


“형, 내가 한국에서 콜택시 두 대를 예약했는데 차를 한 대만 보내줬어. 여기에 짐이랑 우리 다섯 명을 다 태우겠대. 택시비는 두 대 값을 받아놓고 이런 법이 어디 있어!”


열 네 시간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두 시간 동안 입국 심사를 기다리며 녹초가 된 상태라 싸움은커녕 세준이에게 대답할 힘조차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터질 듯한 짐가방과 정원보다 한 명 많은 어리버리한 손님들을 태운 중형 SUV는 시내로 내닫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여행 가방이 내 오른쪽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온전히 허리를 펼 수 없었다.


출근길 내부순환로처럼 막히는 뉴욕의 외곽 도로를 한 시간 정도 느릿느릿 달려 택시가 멈춘 곳은 더러운 냄새가 코를 찌르는 맨해튼의 어느 뒷골목이었다. 한인 민박집 주소가 쓰인 쪽지를 들고 두리번거리던 세준이가 어느 건물 앞에 멈춰 서더니 들어가자는 손짓을 했다.


어두컴컴한 계단으로 낑낑대며 짐을 들고 올라가자 길고 어두운 복도에 여러 개의 문이 나타났다. 불빛이라고는 ‘비상구’라고 쓰여있는 작은 형광등 하나가 전부였다. 잠시 두리번거리고 있자니 복도 끝 두 번째 철문에서 누군가 나오는 것이 보였다. 체구가 작고 세월에 찌든 표정을 한 60대 초반의 아주머니였다.

 

“학생들, 여기야!”


민박집 주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복도에 울려 퍼졌다. 그녀를 따라 들어간 집은 열 평도 안 되는 좁고 어두운 원룸이었다. 거실에 줄지어 놓여있는 여덟 개의 더러운 매트리스는 흡사 아홉 시 뉴스에서 본 사이비 종교 신도들의 합숙소를 연상시켰다. 삼십 년은 된 것 같은 때가 낀 냉장고와 군데군데 이가 나간 작은 식탁이 방 안에 캐릭터를 더해주고 있었다. 그녀는 맨해튼 한가운데에서 이렇게 저렴한 민박을 구한 우리가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들인지 쉴 새 없이 강조했다.


민박집 주인은 여덟 개의 매트리스 가운데 다섯 개만 우리 것이며 나머지 세 개는 다른 사람들이 들어올 경우를 대비해 깨끗하게 남겨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거실 끝에 있는 방은 아직은 비어있지만 ‘특실’이므로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제야 우리는 거실 끝에 너덜너덜한 나무문이 달린 작은 골방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세준이는 택시를 왜 한 대만 보냈느냐며 그녀에게 따지고 들었다. 택시도 민박집 주인을 통해 예약한 듯했다. 그녀는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하더니, 그래도 차가 넓어서 괜찮았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오히려 그녀는 택시 기사에게 팁을 주었느냐고 되물었다. 팁은 무슨 팁이냐며 보내지 않은 택시 한 대 값을 토해 놓으라고 따지는 세준이를 뒤에 두고 아주머니는 엉거주춤 민박집을 나섰다. “택시 기사님들이 학생들 실어 나르느라 얼마나 고생을 하시는데 팁을 드렸어야지”라며 혀를 차던 민박집 주인은 ‘특실’에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더니 어물쩡 문을 빠져나갔다. 긴장이 풀린 나는 이내 퀴퀴한 침대 시트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았다.




잠이 든 채로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배가 고팠다. 비행기에서 마지막으로 식사를 한 후로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탓이었다. 눈을 떠보니 어두운 집 안이 더 어두워져 있었다. 잠결에 집 안에 쥐가 있다며 소리를 지르는 아내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는데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내가 잠든 사이에 모두들 잠이 들어 집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바깥은 완전히 어둠이 내려앉은 밤이었는데, 간간히 멀리서 무자비한 경찰차 사이렌 소리와 취객들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옆에서 자던 아내가 몸을 뒤척이더니 몇 시냐고 물었다. 시계는 열 시 반을 지나고 있었다. 적막한 가운데 아내의 뱃속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신발을 구겨 신고 밖으로 나왔다.


관광객들이 사라진 깊은 밤의 맨해튼은 비교적 한산했다. 음침한 민박집 골목을 빠져나온 우리는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깊은 밤이라 대부분의 식당은 문을 닫은 상태였지만 그나마 술과 음식을 함께 파는 몇몇 가게들은 여전히 영업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중에서도 가장 음식점처럼 생긴 곳으로 걸어갔다.


입구에 세워진 메뉴판을 들여다보던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메뉴판에 쓰여있는 음식을 이해할 수 없었다. 허리사 harissa, 폰티나 fontina, 타지키 tzatziki 같은 알 수 없는 재료와 소스들로 쓰인 설명에 우리는 조금 우울한 기분으로 발길을 돌렸다.


정처 없이 걷던 우리는 길 건너편의 맥도날드를 발견하고 발길을 옮겼다. 언젠가 뉴욕에 놀러 왔을 때 맥도날드를 먹었던 기억이 났다. 관광객이 아닌 유학생으로 미국에 왔지만 우리는 여전히 잠시 들렀다 가는 관광객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밤 열한 시가 넘은 시각, 미드타운의 어느 맥도날드 입구 주변에는 정체 모를 노숙자 네댓 명이 아무렇게나 누워 있었다. 그중 가장 부지런한 한 명은 서서 맥도날드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주며 동전을 구걸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흔하디 흔한 맨해튼의 풍경이지만 당시에는 꽤나 겁나는 장면이었다. 우리에게는 노숙자와 동네 불량배를 구분할 여유가 아직 없었다.


“헬로, 혹시 남는 동전 없어요?”라고 묻는 노숙자의 말을 애써 무시하며 들어온 가게 안은 더욱 어수선했다. 서너 명의 노숙자들이 가게 한 구석에 웅크린 채 잠을 청하고 있었다. 프로 레슬러 같은 덩치의 한 남자는 위협적인 표정으로 앉아 우리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한국의 깔끔한 맥도날드 매장을 기대하며 들어갔던 나는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쓰며 카운터로 걸어갔다.


“헤~이, 얘들아~ 뭐 줄까?”


눈꺼풀이 반쯤 풀린 것 같은 직원이 웃는 듯 웃지 않는 듯 묘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말을 건넸다. 마취가 덜 풀려 혀가 반쯤 마비된 것 같은 그의 억양은 인간의 탈을 썼지만 사실은 바퀴벌레 행성에서 온 외계인을 연상시켰다. 우리는 서둘러 빅맥 세트와 치즈버거를 주문했다.


돈을 내고 카운터 옆에 서 있는데 방금 우리 주문을 받은 직원이 돌아서더니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헤~이, 얘들아~ 뭐 필요해? 너네 거기 왜 서있니?”


순간 어리둥절해진 나는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찌푸린 얼굴로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그는 밀린 주문이 없다며 더 이상 나올 음식이 없다고 했다. 방금 전 네가 직접 우리 주문을 받지 않았냐고 되묻는 내게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자신은 주문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헛소리에 기가 막혀 “네가 분명히 주문을 받았다”라고 말하자 그는 우리에게 영수증이 있냐고 물었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불과 일분 전에 가게 안의 유일한 손님에게 주문받은 사실을 어떻게 망각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듬거리는 영어로 “네가 영수증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에게는 영수증이 없다”라고 말하자 그는 한참 동안 허공을 응시한 채 기억을 되살리려 애썼다. 잠시 후 쓸데없는 노력을 포기한 그는 우리에게 무엇을 주문했었는지 묻더니 느릿느릿 주방에 다시 주문을 넣었다.


“저 친구, 약을 한 것 같아. 제정신이 아니야.”


나는 잠긴 목소리로 아내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기상천외한 뉴욕의 거친 밤 풍경에 우리는 점차 말수가 줄고 있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마자 우리는 포장 봉투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가게를 빠져나왔다. 주문한 음식이 맞게 나왔는지 의심스러웠지만 그 공간에 더 머물고 싶지 않았다.


바깥에 서 있던 노숙자가 우리가 나오는 것을 보고 문을 열고 잡아주었다. 고맙다는 말 조차 꺼내지 못한 우리는 잔돈이 있냐는 그의 질문을 못 들은 척 빠르게 숙소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원래 뉴욕이 이렇게 무서운 곳이었나, 앞으로 이 곳에서 어떻게 살지 막막했다. 불안해진 마음을 안고 민박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햄버거를 급히 먹어치우고 쇼크 상태에 빠지듯 곯아떨어졌다. 쥐가 마룻바닥을 뛰어다니는 소리가 잠결에 들려왔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다음 날 아침 열한 시를 넘긴 시각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진작에 외출을 하고 민박집에는 나와 아내만이 남아 있었다. 아내는 멍한 얼굴로 더러운 매트리스 위에 앉아 내가 일어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일어났어? 배고픈데 뭐라도 간단히 먹자.”


아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거리는 어젯밤의 적막함을 부정하듯 활기찬 인파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는 어젯밤 걸었던 길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얼마쯤 걸었을까, 어디선가 군침이 도는 냄새가 퍼져 나와 길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홀린 듯 냄새를 따라 걸어간 곳에서 우리는 작은 파라솔과 아담한 카트를 발견했다. 카트 뒤에서는 중동에서 온 듯한 젊은 남자가 땀을 뻘뻘 흘리며 무언가를 굽는 중이었다.


우리는 홀린 듯 냄새를 따라 그곳에 도착했다. Photo by Glane23 on Flickr via Wikipedia. Licensed under CC BY 2.0


카트 바깥쪽에 붙어있는 메뉴판에는 어느 나라 음식인지 알 수 없는 음식들이 잔뜩 적혀 있었다. 문득 어젯밤 이해할 수 없는 메뉴판 사이를 헤매던 우리 모습이 떠올랐다. 무엇을 파는지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아 멀찌감치 서서 침만 꼴깍거리던 차에 한 남자가 나타나 카트 앞에 멈춰 섰다.


“자이러 아너 피~라.”


노점 주인은 호기롭게 “오케이!”를 외치더니 분주히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그 손님은 잠시 후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나는 종이봉투를 손에 쥔 채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알리바바가 몰래 숨어서 동굴을 여는 주문을 알아냈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카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헬로 마이 프렌드, 무엇을 드릴까요?”


알리바바의 이야기처럼 노점 주인이 내게 물었다.


“자이러 아너 피~라.”


주인은 웃으며 엄지와 검지를 마주쳐 동그라미를 만들더니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느새 내 곁으로 다가온 아내가 한 마디 덧붙였다.


“자이러 아너 피~라, 한 개 더!”


두 개를 달라는 말에 주인은 싱글벙글 웃으며 고기를 철판 위에 추가로 얹고 있었다. 잠시 뒤 그는 뉴욕에서 우리의 첫걸음마를 응원이라도 하듯, 터질 듯이 커다란 샌드위치 두 개를 우리에게 건네주었다.


“자 여기 주문하신 두 개의 ‘자이로 온 더 피타 gyro on the pita’입니다.”


길거리에 선 채 이상한 이름을 가진 정체불명의 샌드위치를 씹으며 우리는 처음 치고는 나쁘지 않은 출발이라고 생각했다. 나와 눈이 마주친 노점 주인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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