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오래전 독서 모임에서 알던 사람이 몇 년 만에 연락을 한 거였다.
미숙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구차한입니다. 이렇게 오랜만에 연락을 드리는 건 이번에 우리 아들이 강남에 피부과를 개업했습니다. 메시지와 함께 병원 인터넷 사이트가 함께 올라왔다.
무슨 뚱딴지같은 메시지인가? 인터넷 사이트를 열어보니 원장의 얼굴이 여러 군데 나왔다. 구차한 씨를 마지막으로 본 게 코로나 전이니까 벌써 5년도 넘어서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으나 왠지 원장의 얼굴과 비슷했던 것 같기도 하다.
괜히 영어 독서 모임에 나가서 카카오 단체 방에 들어가 주소나 노출시키고. 내 기억으로 이 사람은 책과 전혀 무관한 이야기를 한국어 어순으로 영어 단어만 넣어 길게 얘기했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모두 묵묵히 듣고 있었다. 모임을 주관하는 미국인은 50대 초반으로 어차피 한국 사람에게 원어민의 영어를 기대하지 않는지 맥주만 연거푸 마시며 누가 발언하든지 그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경청해 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미국에서 공부하다 온 한 젊은 친구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대놓고 말해서 미숙이 대충 정리해서 알려줬었다. 두세 번 참석하고 자신의 영어 구사력으로는 참석하기 힘든 자리라는 걸 깨달았는지 그 후로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일 년 전쯤 미숙이 독일여행을 하고 찍은 사진을 카카오 프로필에 올려놓자 그 사람에게서 문자가 왔다.
프랑크푸르트에 다녀오셨나 봐요. 저도 30년 전에 그곳에서 공부했었죠.
아~ 네.
아직도 독서 모임에 나가세요?
카톡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아무 대답도 않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는 생각이 들어 짧게 대답했다.
네.
미숙 씨는 영어를 잘하셔서 좋겠어요. 저도 독일어로 말할 수 있는데 영어는 잘 안 돼요.
네.
다행히 그 뒤로 메시지가 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또 메시지를 보낸 거다. 어떻게 할까? 차단을 시킬까? 아들이 피부과 의사여서 자랑하고 홍보하고 싶어서 보낸 메시지일 거다. 그냥 축하한다고 해주자.
축하합니다.
그런데 또 금방 답장이 왔다.
독서 모임에서 나왔던 송 교수님 하고 영어로 토론을 잘하셨는데 혹시 소식 아세요?
송 교수가 누구야? 아, 그 점잖게 꼭 필요했던 말만 차분히 했던 사람… 아 근데 이 사람은 왜 자꾸 말을 거는 거지? 그러나 미숙은 구차한의 메시지를 무시할 수 없었다. 언젠가 미숙이 본 범죄 실화에서 한때 사랑했던 연인을 무참히 살해하거나 황산 테러를 했던 사람들은 여성에게 무시당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었다. 한 대학 교수에 따르면 사람이 무시를 당하면 폭력을 당할 때와 같은 부위의 뇌가 활성화된다고 했다. 다시 말해서 무시는 분노를 낳고 분노가 쌓이면 폭발하여 끔찍한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 한편 또 다른 다른 교수는 무시했다는 이유로 살인을 저지른 사람의 진짜 범행 동기는 따로 있다고 했다. 그들은 돈이나 성과 같은 탐욕이 채워지지 않았을 때 감정을 통제할 능력을 잃어서 사람을 해치고서라도 그 욕구를 충족시키고 만다는 거다. 이런 기사들이 떠오르자 미숙은 구차한에게 간단하고 예의 바르게 한 문장을 적었다.
독서 모임에 안 가서 모릅니다.
그러자 송 교수 사진을 보내 주며 아래 이런 댓글을 달았다.
이래도 모른다고요?
도대체 이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 거지? 미숙은 불안하면서도 확 짜증이 올라왔지만 한숨을 쉬고 답장했다.
송 교수는 알지만 송 교수 소식을 모른다는 말이었습니다.
답장이 왔다.
송교수를 모른다는 말인지 알았습니다.
이 말에 대해 더 이상 답장을 할 필요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더니 더 이상 카톡이 오지 않았다.
미숙은 안도하며 살짝 웃음이 나왔다. 아들이 서울대를 나온 피부과 의사인데 비상식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게 우스웠다. 아니 자기 아들이 피부과를 열었으면 무슨 할인 티켓이라도 보내주고 말을 걸든지 해야지 난데없이 송 교수 얘기는 뭐람? 미숙은 어이가 없어서 다시 화가 났다. 도대체 나를 어떻게 보고 이렇게 함부로 잘 알지도 못하는 남의 부인에게 문자를 보내는 거야?
그러나 독서 모임에 안 가게 된 건 구차한 때문이 아니었다. 적어도 그 사람은 이렇게 문자를 보냈지만 미숙이 답장을 그만 보내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독서 모임을 이끄는 미국인이 문제였다. 미숙은 독서 토론만 하고 뒤풀이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날 남편이 골프를 치고 늦게 온다고 해서 독서 모임 후 식사를 할 수 있다고 하자 모임을 이끄는 미국인이 가장 반겼다. 스티브는 서울에 사는 것도 아닌데 독서 모임을 하기 위해 천안에서 매달 올라온다고 했다. 그런데 그전 달에 독서 모임이 끝나고 아무도 저녁 식사를 함께 하겠다는 사람이 없던 게 안돼 보여서 한 번은 식사를 같이 해 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독서 모임을 이끌어 주는 게 고맙기도 하고 독서 모임 덕분에 혼자서 읽지 않았을 책을 읽게 된 것도 고마웠다.
그날 식사 자리에는 스티브 외에 2명의 남성이 더 있었다. 한 명은 미군에서 근무한다는 피터, 그리고 다른 한 명은 40대 초반의 앤드루라는 미국 이름을 가진 한국인이었다. 미숙과 세 명의 남성은 스티브가 추천한 피자 가게로 갔다. 고향이 그리울 때 가는 곳이라고 했다. 피자가 나오기 전에 독서 토론에서 다하지 못한 책 내용을 미숙, 스티브, 피터가 돌아가며 말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신화는 뭐죠? 판타지 소설인가요? 아니면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소설처럼 쓴 건가요?
위트마쉬(Whitmarsh) 교수의 인터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는 그리스 신화를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판타지 서사시라고 하더군요.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요새는 적어도 가톨릭 교회에서는 아담과 이브, 노아의 방주 등이 신화라고 하더군요. 예수님이 무덤에서 나왔다는 것도 비유적으로 표현했다는 거고요.
그럼 알레고리 같은 문학적 장치를 이용했다는 건가요?
그렇죠. 저는 어릴 때 가톨릭 교회에 다닌 적이 있지만 오랫동안 무신론자여서 실제로 요새 교회에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몰라요. 다만 제 인생에 신이 개입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가 아무리 이성적이라고 해도 대부분 사람은 감성적이고, 미신이라고 해도 일반적인 진리를 따르죠. 왜냐하면 모든 일을 다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인지적 지름길을 택하죠.
그러니까 제가 이해할 수 있는 걸 믿는다는 말인가요? 사실 저는 크리스천이지만 교회는 잘 나가지 않았요. 제가 다녔던 한국 교회에서는 성경은 하느님이 직접 말한 것으로 문자 그대로 믿어야 한다고 주장했죠. 그래서 그 부분이 힘들었어요. 저는 교회에 나가서 설교를 듣고 찬송을 부르면 마음이 편해지고 때로 눈물까지 났어요. 그러나 성경에 담긴 사건을 문자 그대로 믿기가 힘들었어요. 어릴 때는 성모 마리아의 이야기를 크리스마스에 산타클로스가 찾아온다는 것처럼 의심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할 때 누군가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하여 출생했다는 걸 믿는지 물었어요. 그렇다고 대답했어요. 함께 공부하던 사람이 모두 그랬으니까요. 그러나 집에 와서 거짓말한 걸 후회했어요. 어떻게 사람이 남녀의 관계없이 생길 수 있나요? 물론 예수님은 사람이 아니라 신이니까 다르지만… 아무튼 성경 이야기에 대해 무언가 의문을 갖는 것에 대해 사탄의 음모라는 설교를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묻지 못했어요. 그러다 결국 교회를 나가지 않고 집에서 가끔 온라인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죠. 그래도 저는 하느님이 있다고 믿어요.
미숙의 말이 끝나자 스티브는 무언가를 말하려다 하지 않았다. 그러자 독서 모임에서 전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앤드류가 서툰 영어로 자신의 소견을 말했다.
“이 책<<신들과의 싸움: 고대 세계의 무신론(Battling the Gods: Atheism in the Ancient World)>>을 읽으며 무신론이 기독교나 이슬람보다 오래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웠어요. 그러면 무신론은 신을 부정하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