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미숙은 E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부모를 따라 미국에 이민 가서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간호사 전문학사 학위를 받고 간호사 생활을 10년간 하고 그만뒀다. 미숙이 간호사로 일할 때 한국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이민 온 동갑내기 태식을 만나 만 28 생일이 지나자마자 결혼했다. 태식은 큰누나의 초청으로 미국에 왔었다. 태식의 큰 누나는 시카고 한인 타운에서 내과를 개업하고 있던 의사와 결혼해 미국에 산지 10년이 넘었다. 누나는 막내 동생 태식이 어릴 때부터 의대에 진학해서 미국에 오라고 권유했었다. 태식은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미국행을 택했다. 시어머니는 40이 넘어 난 막내아들이어서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태식은 미국에 가서 당시 한국보다 앞선 미국의 의학기술을 공부하고 싶었다. 물론 나이 든 부모님을 한국에 두고 간다는 게 마음에 걸리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사람이 크게 되려면 큰 나라에 가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자신이 한 말을 후회하며 시아버지는 태식의 미국행을 허락했다.
미숙의 부모는 둘 다 선생님이었다. 아버지는 서울소재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고 어머니는 바로 옆 중학교 수학 선생님이었다. 미숙의 부모가 미국으로 이민 가게 된 이유는 큰아버지와 미숙과 10살이나 차이나는 남동생 때문이었다. 미숙의 큰아버지는 S대를 졸업하자마자 미국으로 건너가 오랜 고생 끝에 시카고에 있는 대학병원 심장외과 교수로 명성을 얻었다. 미숙보다 10살 7살 위였던 사촌들은 비록 한국말을 하지 못했지만 아이비리그 대학교를 졸업하고 각각 의사와 변호사로 자리 잡아 한인 사회에서는 미숙의 큰아버지 가족은 미국에서 성공한 한국인을 대표하고 있었다. 미숙의 조부모도 큰아버지가 미국으로 모셔 가려했으나, 큰아버지와 미숙 아버지 사이에 있던 둘째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뇌사 상태로 2년간 병원에 누워 있어서 가지 못했다. 그 후 미숙 아버지가 결혼하고 미숙이 태어나 조부모는 미숙도 키워주고 미숙의 남동생도 키워줬다. 그러다 1년 사이를 두고 조부모가 돌아가셨다.
장례식에 참석한 큰아버지는 미숙이 초등학교 때 봤던 큰아버지가 아니었다. 어릴 때 봤던 큰아버지는 아버지보다 키도 크고 연속극에 나오는 잘 생긴 의사 선생님 같았는데 할머니 장례식장에 나타난 큰아버지는 살이 많이 쪄서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다. 부모가 둘 다 돌아가셨으니 당연한 거겠지만 미숙이 인사를 하자 축 처진 어깨 사이에 푹 수그리고 있던 고개를 들어 젖은 눈으로 미숙을 바라보며 쉰 목소리고 말했다. “미숙이 많이 컸네… 너 미국에 가서 살고 싶지 않니? 거기 가면 공기도 좋고, 풀장이 딸린 넓은 2층집에서 살 수 있어.” 큰 아버지는 동생과 가까이 살고 싶다며 이민을 권유했다. 미숙의 부모도 아이들을 미국에서 공부시키고 싶어서 형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형제 초청으로 입국허가가 나는데 7년이나 걸렸다. 미숙은 이미 대학교 3학년이어서 졸업할 때까지 약 1년간 이모 집에서 살았다. 미숙의 부모는 대학교 선후배로 만나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결혼하고 1년 만에 미숙을 낳아서 미숙이 대학교를 졸업했을 때도 아직 40대였다. 한국에서 교사 생활을 했어도 의사나 간호사 같은 전문직이 아니라면 미국에서는 다른 이민자와 마찬가지로 가지고 온 돈으로 전에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해야 했다. 마침 미숙의 큰아버지가 다니던 교회의 교인이 운영하던 세탁소를 인수받아 밤낮으로 열심히 일했다. 덕분에 미국에 이민 온 지 3년 만에 큰아버지가 마련해 줬던 타운하우스에서 큰 아버지 옆 동네의 2층집으로 이사 갈 수 있었다.
태식은 누나의 초청으로 이민 오기 전 서울 Y대 공대를 마치고 지방에서 알아주는 의대로 편입하여 미국으로 건너오기 전에 ECFMG 시험을 보고 USMLE를 통과하여 미숙이 일하고 있던 병원에 레지던트 매칭이 되어 수술실에서 미숙을 만났다. 불어를 전공한 미숙이 부모가 힘들게 일하는 걸 보며 빨리 직업을 갖기 위해 간호사가 되기로 했다. 등록금이 저렴한 커뮤니티 칼리지를 나와 2년 일하다 다시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병원에서 지원해 주는 장학금을 받고 간호학 학사와 석사까지 마쳤다. 미숙이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일한 지 2년 되었을 때 만 27살의 동갑내기 수련의 태식을 만났다. 이듬해 미숙은 태식이 성실한고 똑똑하고 따뜻한 성품을 지녀서 결혼했다. 태식은 미숙이 예쁘고 밝고 다정해서 결혼했다. 태식과 미숙은 둘 다 부모에게 손 벌릴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고 보면 둘이 결혼하기로 결심한 이유 중엔 이런 경제적인 가치관이 일치한 것도 한몫했다. 태식은 미국에 온 지 10년 만에 신경외과의사 면허를 받았고, 미숙은 5살과 3살 두 아들의 엄마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