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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희 Oct 25. 2024

팔자 좋은 미숙

3회

“줄리안 바기니는 무신론이 신이 없다는 게 아니라 신성에 대한 언급 없이 삶을 산다는 거라고 말하더군요.”라고 스티브가 말하자, “비기니 철자가 어떻게 되죠?”라고 미숙이 물었다. 스티브가 “B-A-G-G-I-N-I 일거예요.”라고 하자 미숙은 핸드폰으로 바기니를 찾았다. 50대 후반의 철학자였다. 미숙은 그에 대해 잠깐 읽고 고개를 들며 말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신을 믿지 않아서 처형당한 게 아니라 시가 믿었던 신을 숭배하지 않고 새로운 신을 창조하여 젊음 이를 타락시켰다고 처형된 거잖아요.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도 무신론자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요?”라고 앤드류가 묻자 스티브가 대답했다. 


뭐, 엄밀히 말하면 그렇죠. 어떤 학자는 소크라테스가 자신이 직접 신과 대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더군요. 원래 그리스는 유대교나 이슬람교처럼 교리가 있었던 건 아니어서 신학적인 정통성을 강요하지 않고 지역마다 신이 있는 다신교로 자유로웠어요. 그러나 시대적 상황 때문에 처형할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아테네가 스파르타와 27년간 싸우다 아테네가 패하고, 친 스파르타였던 30명이 아테네에서 13개월간 폭정을 했죠. 그때 우두머리에 있던 사람이 왕년에 소크라테스의 제자였죠. 이름이 뭐였더라? 


“크리티아스(Critias) 요. 저는 이 사람 이름이 비평가(critic)와 비슷해서 금방 외워졌어요.”이라고 미숙이 날름 말했다. 


그래요. 크리티아스… 그리고 카르미데스(Charmides)도 있죠. 둘 다 잔인하고 무자비한 폭군으로 유명했는데 소크라테스의 최우수 학생이었죠. 플라톤의 친척이기도 하고요… 


네, 말씀을 끊어서 죄송한데 사실 저는 소크라테스도 그렇고 그 시대 나이 든 귀족 엘리트가 젊은 남성과 그렇고 그런 관계였다는 건 좀 당황스러웠어요. 뭐 제가 크리스천이어서 동성애가 죄라고 하는 게 아니고요. 저는 사람은 누구나 인종이나 성적 취향과 관계없이 동등하게 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크라테스가 그랬다는 게 놀라웠어요. 만약 내 아들이 매우 존경하는 교수가 있는데 그 사람이 내 아들의 몸에 손을 댄다면… 아들이 원하지도 않는데 워낙 유명한 사람이고 현명한 사람이니 그럴 수 있다고 가스라이팅 한다면, 아들을 타락시키는 게 아닌가요? 그렇다면 전 엄마로서 그 교수를 용서할 수 없을 거예요. 그래서 아테네 사람들이 소크라테스를 처형한 걸 이해해요. 


이 말을 마치며 미숙은 너무 흥분해서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남자 셋은 그녀의 의견에 대해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마침 피자가 나왔다. 그러자 미숙은 다시 밝은 표정으로 자기가 피자를 사겠지만 음료수는 각자 지불하라고 하자 모두 고맙다며 박수를 쳤다. 독서 토론 동안 벌써 세 잔의 맥주를 마신 스티브는 피자 집에 와서도 피자가 나오기 전에 맥주 두 잔을 비웠다. 피자가 나오자 모두 피자를 한 조각씩 집어 들며 잠시 대화가 중단됐다. 미숙이 피자 한 조각을 끝내기도 전에 피자 두 조각을 재빨리 삼켜버린 한국 청년이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미숙은 피자 한 판을 더 시켰다. 그러고 나서 한 사람이 다시 책에 나온 내용 중 신의 필요성을 논하자 다시 이야기 꽃이 펼쳐졌다. 미숙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피자 한 조각을 얼른 끝낸 뒤 남편이 집에 기다리고 있어서 가봐야 한다고 먼저 일어나서 피자 값만 지불하고 가게를 나왔다. 


다음날 스티브에게서 문자가 왔다. 당신이 북클럽에 와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지만, 우리가 따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있을 때마다 그것은 내 일주일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함께 해주고 피자도 감사드립니다.

이때까지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미숙이 주말에 집안 행사가 겹쳐 몇 달 독서 모임에 나가지 못하자 스티브에게 연락이 왔다. 처음에는 카카오 주소를 알려 주는 게 사생활 노출이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여행을 갈 때마다 프로필 사진을 바꾸는 허영을 참지 못해 새로운 사진을 올리면 스티브에게서 짧은 안부 인사가 왔다. “하와이 다녀오셨나요? 이번 달에 독서 모임에 나올 건가요?” 미숙은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왠지 무시한다고 생각할까 두려워서 “네”이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러나 미숙이 못 나왔을 때 읽은 책에 관한 질문을 하며 이야기를 끌고 나가려 했다. 미숙은 독서 모임에 나가지 못해도 지정 도서는 다 읽고 독후감까지 쓰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질문에 대답하는 게 피곤하여 읽지 않았다고 거짓말했다. 그러면 또 자신의 생각을 장황하게 써서 보냈다. 미숙은 읽지 않고 그 아래 엄지 척으로 마무리했다. 아니 이 사람은 내가 결혼한 사람이란 걸 모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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