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다른 사람들과 비교보다는, 그냥 나의 선택일 뿐 야.
내 인생의 선택은 화려한 가로등이 켜져 있는 사거리가 아닌, 불빛 없는 막다른 길목에서 좌·우 두 갈래 어느 방향으로 갈지였다. 그리고 선택은 광주에 있는 전남공업고등학교 토목과에서 기술을 배우기로,
단순히 망치로 나무에 못 박고, 가구 만드는 기술을 배울 줄 알았는데, 망원경 같은 측량기를 갖고 측량 실습부터, 온갖 과목마다 공학 수학은 넘쳐났고 어려웠다. 중학교 때부터 수학을 왕따했던 내가, 응용역학, 철근콘크리트 역학, 토질역학, 측량학 등 수많은 역학을 해야 했고, 역학마다 공식도 서로 달라, 다 외워야 했다.
주간에는 직장을, 야간에는 학교에서 기술을, 이번에는 역학이라는 공학 수학이 나를 왕따 놓지 못하게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 365일씩 한 해가 지나면서 서서히 기술의 열매가 눈에 들어오고 손에 익었다. 어느덧 고3, 그리고 1학기, 이때 또 다른 인생의 선택을 해야 할 길목이다. 진학반과 취업반으로, 어디로 갈지, 인생은 매번 선택이다. 기능사 자격증 취득 미션 수행을 위한 중요한 순간이기도,
“인문계생하고, 실업계생하고 차이가 뭔 줄 아냐”
“........”
“인문계를 졸업하믄 대학 못가도 뭔가는 많이 배웠겄지라고 사람들은 생각하는데, 실업계 졸업하믄 기술은 있겠네라고 생각해, 그런데 자격증 없으믄 그냥 놀았구나라고 사람들이 생각할거야, 그게 차이야”
외할아버지 말씀은 내게 무서운 미션으로 느껴졌다. 귀가 번뜩했다. 자격증의 가치가 무거웠다. 그래서 공부했고 측량 기능사를 땄다. 그리고 학력고사 점수와 기능사 자격증 점수를 가산해서 고등학교 진학반에서 토목과가 있는 조선대학교 병설 공업 전문대학 (현 조선이공대학교)에 입학했다. 공업고등학교에서 3년, 전문대 2년, 그렇게 나는 토목 기술자가 되어갔다. 그리고 기능사에서 토목기사 자격증을 소지한 기술자가 되었다.
내 첫 현장은, 전라남도 곡성과 구례 경계 부근에 있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아스팔트 포장된 도로까지 연결하는 도로공사 현장이었다. 바로 이곳에서 일을 시작했다.
아주 조그마한 하도급 단종 회사였지만, 나름 인간미가 있었던 곳으로, 공사 현장의 조그마한 숙소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이때 만나게 된 기술자 친구, 지금은 전라남도 아니 전국에서 측량기술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친구 K 를, 고향은 고흥이요 특전사 출신에 첫 인상은 조폭 스타일을 물씬 풍겼지만, 생긴 것과 달리 세심하고 순둥순둥 했던 친구였다.
매일같이 둘이서 측량하고, 매일 작업량을 산정하면서 하루하루 보냈다. 도로를 만드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눈에 크게 보이는 변화가 없어서 공사 도중에는 지겹다, 똑같은 모습, 똑같은 일, 그러다 보니 안전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진다. 도로공사의 끝판왕이라고 한다면 마지막 공정인 아스콘 살포하고 포장하는 날이다. 조금씩 변화를 보이다가 아스콘 살포하는 날이 바로 비포장에서 포장도로로 말끔히 바뀌는 그런 멋진 날이다.
인생살이도 비포장에서 포장도로로 바뀌길 바라면서 살아가는 게 아닐까. 도로공사하다 보면, 산도 깎을 때 있고, 아니면 터널을 뚫을 때도 있고, 설계에서 요구하는 기울기로 산의 법면을 만들다가 굴러 떨어지기도 하고, 당시는 20대 초반이었기 잘 몰랐는데, 인생을 살다 보니, 마치 도로공사할 때처럼 수많은 변수가 움직이는 위험이 되어 기다리고 있음을 알았다. 위험을 마주칠 때마다 액션배우 성룡처럼 공중제비나 현란한 발차기로 꼬끄라뜨리지는 못하지만, 다치지 않고 잘 버티기만 해도 인생의 반은 성공인 것 같다.
이렇듯 나는 기술자로서 인생의 첫 선택을 했고, 살아가기 시작했다.
*사진은 인터넷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