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층 앞 - 새로운 인생을 위한 출발.

#경찰 #애기 동자 #관운 #호남 고시학원

by 별하

애기 동자의 말 한마디가 도전정신에 불 붙이고.

인생 파도 위에서 멋지게 서핑과 함께 날아올라.

토목기술인이 경찰관이 되었다.





퇴사 후, 프리랜서로 측량이나 공사 관련 일을 했다. 가족을 굶길 수 없었으니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토목기술뿐이었다. 이때 국내 톱 여배우‘고소영’을 모델로 내세웠던 H 합성 의류업체도 부도가 나서 광주에 있던 본점 직영 매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도 정리해고 됐고, 이때 내 지인들도 모두 실업자가 되었다.


모두 실업자가 된 며칠 후 지인이 내게 부탁했다. 내 차로 실업자가 된 사람끼리 무등산 가자고, 산 중턱에 동자신을 받은 지 한 달밖에 안된 신통한 점집이 있다면서 함께 가자고, 신을 받은 점집은 새벽 일찍 가는 게 좋다고, 그래서 아침 6시에 점집으로 향했다. 점집에 도착해보니, 이미 점을 보았는지 남성 한분이 나오는 모습이 보이고, 집 밖에 있는 수돗가에서 색동저고리를 입은 채로 쭈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던 아저씨가 우릴 보며,


“담배 피우고 들어가서 봐줄 테니 먼저 들어가요”

“네”

“저 색동저고리 아저씨가 점쟁이인가 보다, 잘 보나”


집안으로 들어온 흡연가 색동저고리 아저씨는 우리 일행을 보고 한 명씩 들어오라고 손짓했고, 첫 타자로는 지인 중에 샵 마스터 왕언니가 먼저 들어갔다. 그리고 나와 내 미래의 와이프가 그 다음 들어갔다.


짤랑, 짤랑............ 촤악..............

딸랑이를 여러 번 흔들다가 부채를 갑자기 쫙 피더니,


“삼촌은, 관운 있어, 땅 일도 맞는데, 관운이 크게 들어왔어”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갑자기 여자 아이 목소리로 말해서, 나도 모르게 풋하고 웃음이 나올뻔한 것을 이를 악물고 참고 들었다.


“외할머니가 관운 없다고 공무원은 생각하지 말라고 했는데요”

“몰라, 관운이 있으니까 있다고 하지, 삼촌이 알아서 해” (내게 관운 있다고, 어려서부터 관운 없다고 들었는데, 이것 사이비 아냐)


손해 보는 셈 치고, 명리학 사주를 보는 철학관 두 곳을 며칠 간격으로 갔고, 애기 동자의 말처럼 관운이 들어왔다고 했다. 관운이 없는 사람도 시기에 따라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고 하면서 공부를 추천해주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점을 왜 봐,라고 이상한 사람 보듯이 하는데, 점을 보는 이유가 있다면, 조그마한 희망이라도 있으면 살아보려고, 죽지 않고 살려고, 그래서 보는 이유도 있거든요, 내 경우는)


관운 있다는데 도전해볼까라고 고민하고 있을 때, 정리해고 된 L 건설회사 토목부 가족들이 모두 모였다. 술 마시며 근황도 듣고, 좋은 회사에 취직했는지, 뭘 준비하는지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어느 정도 술잔이 돌고 난 후, 선배들이 일어나서 한 마디씩 하셨다. 이때 나름 회사에서 중책의 자리에서 일했던 40대 중반의 선배,


“어려운 시기에 좋은 회사에 취직하신 선배님과 후배님, 축하드립니다. 저는 취직이 잘 안되네요, 좋은 회사에 먼저 들어가신 분들은 자리가 생기면 연락 좀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너무 힘드네요”


내 눈에 비친 선배, 40대 중반이 된 내 모습으로 오버랩되었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심장이 요동쳤다. 어떻게 해야 되지, 무슨 일을 해야 저렇게 안되지, 많은 생각이 순식간에 스쳤다. 관운이 있다니까 한번 가보자, 광주 동구에 있는 학원가로 그냥 갔다. 어떤 공무원이 될지도 무엇을 준비할지도 전혀 몰랐기 때문에 무작정 갔다. 그런데 우연과 우연이 모이면 필연이라고 했던가. 버스에서 내려 학원가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함석으로 대강 만든 대형 간판이 내가 가는 길에 마치 천하대장군처럼 서있었다.

‘경찰 전문 고시학원, 호남 고시학원’


경찰, 갑자기 필이 꼽힌 것처럼 나도 모르게, 간판에 쓰여있는 학원으로 갔다. 이곳에서 상담하면서 처음으로 경찰공무원이 되기 위한 시험 과목을 알게 되었고, 뭐에 홀린 것처럼 그냥 접수했다. 그리고 험난한 경찰공무원이 되기 위한 도전의 첫발을 내디뎠다.

1년간 피똥 쌀 정도로 공부했고, 학교 다닐 때 이랬으면 판검사나 의사가 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필기시험 합격하고 난 후 경기지방경찰청(현 경기남부 경찰청)에서 최종 면접을 마치고 최종 발표를 기다릴 때, 전국에서 측량기술로 손꼽히는 친구 K 로부터,


“뭐해, 시간 되면 바람도 쐴 겸 완도 가서 측량이나 하게, 일당은 알아서 챙겨줄게”


바람도 쐴 겸, 측량 알바로 간 곳이, 완도 소안도였다. 섬에 들어가서 측량하며 합격자 발표에 내 이름이 있기를 기다렸다. 합격자 발표하는 날 아침 태풍주의보 발령으로 소안도로 가기 위해 완도항으로 갈까 말까, 배는 출항하려나 여러 고민하던 그때, 따르릉따르릉,


“여보세요”

“학원이에요, 합격했어요 정말 축하해요”


학원에서의 전화, 합격이라고, 나도 모르게, 완도 주민이 놀랄 정도로 기쁨의 함성을 질렀고, 옆에서 나를 보며 같이 축하한다면서 함께 소리를 지르던 친구와 얼싸안은 채로 하늘 높이 올라갈 듯이 점프 점프하며 기쁘게 춤을 췄다. 정말 태어나서 제일 기쁜 날 중에 하루다.

IMF라는 잔인한 인생의 파도에서 내가 선택한 길은, 예전부터 해왔고 앞으로도 해야 하는 토목 기술자의 삶에서 갑자기 180도 드리프트로 경찰공무원이라는 새로운 인생의 삶을 살게 해 준, 그렇게도 잔인하게 아픔의 파도로 나를 덮쳤는데, 한순간에 고마운 프런트엔드가 되어주었음에 너무나도 나 스스로 대견함을 알게 해 줬다.


정말 인생의 쓰디쓴 큰 파도를 그때는 속으로 울면서 살기 위해 억지로라도 서핑하며 눈물과 섞인 바닷물을 얼굴에 맞으며 행복하게 날아올랐다.




*사진은 인터넷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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