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대신하는 마음
여기 오래 살면 어때요.
가끔 듣는 질문이다.
질문은 짧고 가볍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늘 복잡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한참 생각하다가도, 결국엔 그냥 이렇게 대답한다.
“익숙해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는 말.
익숙하다는 건 감정을 덜어내고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하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입에 붙은 대답이 되었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까지 한국에서 다녔다.
학교 복도, 운동장, 학원 끝나고 친구들이랑 먹던 떡볶이,
국어책에 나왔던 시들, 손으로 적은 받아쓰기 공책.
기억나는 게 많지는 않지만, 그 시절의 냄새 같은 건 아직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시절이 나의 정체성에 단단히 박혀 있다는 걸,
나는 캐나다에 오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민은 어느 날 갑자기 결정된 일이었다.
부모님의 말 한마디로, 내 모든 것은 상자 안에 들어갔다.
친구들과 작별 인사도 길지 않았고,
‘곧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어른들의 위로는 어쩐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비행기 안에서 창밖을 보며 어딘가로 옮겨지는 내 삶을 생각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게 정말 시작이 될 줄은.
캐나다의 첫 계절은 겨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상징적인 시작이다.
익숙한 언어가 들리지 않고, 간판이 전부 낯설고,
교실에서 앉는 자리를 정하는 방법조차 몰랐던 날들.
영어를 못해서 힘들었다기보단,
내가 누구인지 설명할 방법이 없어서 막막했다.
그 시간은 말이 아니라 침묵으로 지나갔다.
하지만 아이들은 빠르게 배운다.
나는 곧 영어의 억양에 익숙해졌고,
슬랭 몇 개쯤 섞어 쓰며 친구들과 웃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여기서의 나와
한국에서의 나 사이에 있는 다리 같은 감각을 느끼게 되었다.
두 삶은 연결되어 있었지만, 완전히 겹치진 않았다.
이름은 Jay다.
누구나 쉽게 부르고, 실수도 거의 없다.
이름을 다시 말해줘야 하거나, 철자를 설명해야 하는 일도 없다.
처음부터 그 이름으로 불렸기에, 지금은 나 자신 같다.
가끔 한국 이름을 물어오는 사람도 있지만,
그때마다 잠깐 망설인다.
그 이름이 지금의 나에게 어떤 느낌인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분명 익숙하고 애틋한 이름인데,
이곳에선 거의 불리지 않기 때문에
조금은 잠든 이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한국어를 잘한다.
읽고 쓰고 말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도,
한국어라는 언어가 나에게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언어의 문제와는 별개로,
감정이나 반응, 대화의 흐름에서는
가끔 조용히 멈춰 서게 되는 순간이 있다.
한국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모두가 웃는 포인트에서 혼자 따라 웃게 되는 순간이 있다.
웃음이 늦게 올라오는 이유는
그 상황을 이해하는 속도가 조금 달라서다.
그럴 때면 나는 조용히 내 자리를 확인한다.
나는 조금 다르구나.
정확히 말하면, 나는 양쪽 모두에 있지만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는 않는 사람이구나.
혼자 있는 건 익숙하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아무도 놀아주지 않아 혼자 있었던 게 아니라,
그냥 혼자가 편했기 때문이다.
생각을 정리하고, 책을 읽고, 거리를 걷고,
음악을 들으며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
그런 시간이 쌓이면서, 나는 혼자 있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건 나를 지켜주는 방식이 되었다.
캐나다는 그런 점에서 나에게 잘 맞는 곳이다.
사람들은 일정한 거리를 지켜주고,
굳이 말을 걸지 않으며,
침묵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누군가 혼자 밥을 먹고 있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혼자라는 사실에 해석을 붙이지 않는 문화.
그게 때로는 무심해 보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오히려 따뜻했다.
20년쯤 지나면, 이곳의 리듬이 몸에 배게 된다.
상대방과 눈을 마주치는 시간,
계산대에서 건네는 인사,
버스에서 앉는 자세까지도,
습관처럼 익숙해진다.
그런 익숙함은 생각보다 깊은 곳에 자리 잡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가 이곳에서 오래 살았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하지만 그 익숙함이 곧 ‘소속’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나는 여전히 나를 설명할 때
한 문장으로 끝내지 못한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 6학년 이후로는 쭉 캐나다에 살았어요.”
이 말 안에는
수많은 생략과 감정과
설명하지 않은 시간들이 포함되어 있다.
가끔 한국에 가면 모든 게 빠르게 느껴진다.
사람들의 말, 표정, 움직임, 리듬.
질문이 빠르고, 대답을 망설이면 이상하게 여긴다.
대화에는 간격이 거의 없고,
서로의 말 위에 말을 덧붙인다.
그 사이에 있으면, 나는 잠깐 멈추게 된다.
내 말이 비어 있는 듯한 느낌.
그리고 나는 다시 ‘외부인’이 된다.
반대로 캐나다에서는 내가 조용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는 오히려 말이 많은 축에 속한다.
이 두 감각 사이에서 나는 나를 조율해야 한다.
그리고 그 조율은 언제나 조용한 피로를 동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삶을 좋아한다.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지만,
어느 곳에서도 배제되지 않는 삶.
조금 비껴서 있지만,
그래서 더 잘 보이는 것들.
그런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그건 내가 이민자로서 살아오며 얻은 능력이기도 하다.
이제는 그 시간들을 글로 써보려 한다.
조용하고, 조금은 늦은 기록.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오래 있었다는 사실을 남기기 위해서.
말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과
언어로 다 담기지 않는 시간들을
한 줄 한 줄 적어보려 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나온 날들 위에
조금씩, 조용히 글을 얹어보려 한다.
그건 나의 방식이다.
그리고 그 방식으로,
나는 지금 여기에서 다시 시작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