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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용할 양식 Oct 31. 2020

7. 나 혼자 산다(밤에도)

인적이 드문 밭에서 일하다 보면 한낮인데도 섬칫한 기분을 느끼곤 합니다. 갑자기 뒤에서 ‘뭐’(인간, 멧돼지, 귀신, 고라니…)가 튀어나오면 어떡하지. 소리 질러도 들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상상할수록 등 뒤가 휑한 이 기분이 못 견디게 싫어집니다. 그럼 저는 급히 등과 어깨를 털어 악한 기운을 몰아내고요. 몸을 돌려 뒷걸음질치면서 또는 옆으로 걸으면서 밭일합니다. 틈틈이 시선을 들어 주변을 살피는데, 사방이 탁 트여있다는 게 영 불안해요. 언제라도 비상시엔 무라도 뽑아 던지겠다 결의를 다져봅니다(시월에는 무가 겨우 손바닥만 해서 큰 타격감이 있을 것 같지 않네요).

“젊은 여자가 … 혼자 무섭지도 않나벼.”

혼자 사는 게 뭐가 무서워요, 까짓 거! 업신여기며 코웃음을 치고 싶지만, 안 무서울 리가 없죠. 혼자 사는 일의 무서움엔 도무지 익숙해지지도 요령이 생기지도 않는 걸요 


어떻게든 오싹한 분위기를 이겨내고자 저는 노래를 듣거나 부릅니다. 템포가 빠른 노래일수록 분위기 전환에 효과가 좋아요. 그런 면에서 샤이니의 <링딩동>은 탁월한 노동요입니다. 링디기딩디기딩딩딩 박자에 맞춰 동작하면 걱정일랑 잊고 다시 밭일에 스며들 수 있습니다. 댄스곡을 즐기다 숨이 차면 발라드를 부릅니다. 가을에는 내안의 깊은 곳에서 아이유의 노래가 새어나와요. 점점 볼륨을 키우다 끝내 목청껏 지르면 속이 시원해집니다. 흥이 솟구쳐서 샤이니의 춤을 따라 한다 한들, 감정이 차올라서 3단 고음을 쌓는다 한들 주변에 보거나 듣는 사람 없으니 상관없습니다. 제가 발견한 몇 안 되는 좋은 점 중 하나예요. 인적 드문 시골에 혼자 살면 흥과 기량을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즐길 수 있습니다. 혼자 귀촌하겠다는 친구가 있나요. 그렇다면 블루투스 마이크는 센스 있는 이주 선물이 될 거라 장담합니다.

애초에 저는 한여름에도 이불 밖으로 발이 하나 삐져나가면 오싹한 기분이 들어 몸서리치는 인간인데요. 음악도 한밤에 느닷없이 찾아오는 긴장을 다 달래주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하필 제가 살던 집은 울타리가 없어서 무엇이 집으로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불안이 언제나 있었어요. 집밖에서 작은 소리만 나도 저는 바로 동작 그만. 숨을 멈추고 얼어붙기 일쑤였습니다. 이럴 때, 영화 속 인물은 정체를 확인한답시고 밖에 나갔다 봉변을 당하던데요. 저는 집안의 모든 문을 더 꽁꽁 걸어 잠그고, 절대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긴장이 가시지 않는 밤에는 낫을 머리맡에 두고 잤어요. 어느 방향으로 두나 낫은 섬뜩한 물건이어서 가위눌릴까 봐 더 찜찜하다는 게 곤란한 점이지만, 때로는 아로마 오일이나 음악보다 진정 효과가 있습니다.


밤에는 웬만하면 집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는 것도 겨울이 되면 얘기가 또 달라집니다. 밤에 혼자 화장실 가는 것도 무서운 인간이라면 부디 연탄 보일러를 사용하는 집을 피하세요. 저는 연탄이 그런 건줄 모르고, 하필 연탄 보일러가 딸린 집으로 이사했지 뭐예요. 집안의 적당한 훈기를 유지하려면 8시간마다 연탄 불씨가 꺼지진 않았는지 확인해야 하고요. 때를 놓치면 연탄불을 다시 살리기 어렵습니다. 전부 밤중에 냉기로 몸을 떨면서 깼을 때 깨달았죠(도시가스가 도시에만 있는 것도 그때 알았습니다). 아무리 술에 취해도, 잠이 쏟아져도 자기 전에 연탄을 갈기 위해 밖에 나가는 일은 고역입니다. 옷을 단단히 챙겨 입어도 겨울밤의 찬바람에 두 뺨이 얼얼해지고, 연탄에 불이 잘 옮겨 붙을 때까지 한참 있으면 무섭단 말이죠. 노래 부르면 귀신이 따라 부를 것 같고, 낫을 들자니 제 그림자가 더 소름끼친다고요.

이런 때, 생명체는 기막힌 위안이었습니다. 춥고 무서워서 발을 동동거릴 때에 발등에 묵직한 게 느껴져서 내려다보면 고양이가 불을 쬐기 위해 발등에 발을 얹고 서있습니다. 곧이어 마당 곳곳에서 고양이, 강아지 모두 몰려나와 연탄 앞에 한자리씩 차지합니다. 찜질방 가마 앞에 모여드는 인간들처럼 우리는 쪼르르 몸을 갖다 대고 연탄이 내뿜는 훈기를 나눕니다. 가만히 눈감은 강아지 등을 쓸어내리고, 고양이 볼을 어루만지며 갸르릉 울음을 들어요. 살을 맞댄 곳이 훈훈해질 때, 이 게으른 생명체가 혼자인 인간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살짝 눈물을 훔치게 됩니다(쓰윽-). ‘모든 생명체는 위로가 되는 법’*이라더니….     

*임순례, <리틀 포레스트>, 2018, 대사 인용



겨울이 가까워올수록 시골의 밤은 어둠으로 빽빽합니다. 주변의 모든 움직임이 뜸하고, 아무것도 지나가지 않는 밤. 나만 멈추면, 이곳엔 고요한 정지가 내려앉습니다. 이웃의 집들은 불이 꺼졌고, 가로등도 없습니다. 어디까지가 땅이고, 어디부터가 하늘인지 가늠이 안될 만큼 앞은 캄캄합니다. 별안간 바스락 거리는 소리 하나에도 예민해지고 파고드는 한기에 몸은 더 움츠러듭니다. 처음 마주한 시골의 밤에 여기엔 아무도 없다는 걸 제일 먼저 감각했습니다. 눈을 감으나 뜨나 보이는 건 어둠뿐이니 악당이 손가락을 튕겨 시간을 멈춰도 저만 모를 것 같았죠. 매일 만나지만 오늘도 시골의 밤은 막막합니다. 이곳이 마치 세상의 끝이고, 나의 친구들과 나의 생활, 그리고 내일 아침까지도 멀어 보입니다.

시골에서 살아야지 마음먹는 누구나 자신만의 경계를 지키기 곤혹스럽다는 점, 한 마디로 도시에서보다 나의 익명성을 보장받기 어렵다는 점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혼자’ 귀촌을 감행해보겠다 결정했다면, 오롯이 홀로 감당해내야 할 무서움과 막막함도 한번 더 고려해봐야 한다 생각합니다. 무서움과 막막함을 느낄 때, 어떻게 달래나요. 혹 그것이 시골에서 구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땐 무엇이 나에게 위로가 될까요. 미래의 어느 밤에 홀로 막막해 할 나를 위해 미리 상상해둔다면, 조금 더 잘 달랠 수 있지 않을까요. 음악, 호신용품, 무엇이든 좋습니다. 앗, 술은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술에 취해 눈에 뵈는 게 없어져 무서움이 가셔도 외로움은 더 또렷이 나를 응시하고요. 먹은 술이 다 깼는데도 여전히 밤일 때도 있습니다. 다시 마주한 밤은 더욱 어둡기만 하죠. 그러니 술은 무서울 때 말고, 기쁠 때 꺼내 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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