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런 일이 있었다.
“거 알어? 쩌어- 집에 젊은 여자가 혼자 산다더만?”
“그려? 왠지 본 것도 같어. 혼자 뭐한대?”
“몰러…. 혼자 무섭지도 않나벼.”
할머니들이 가리키는 쩌어- 쪽을 따라가 보니 버스 유리창 너머에 내가 사는 집이 있는 거다. 지금 할머니들이 얘기하는 그 젊은 여자는 바로 나였다. 나는 다행히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것 같다. 대놓고 뒷담을 들으니 황당하면서도 무슨 얘길 하실까 궁금했는데, 할머니들은 무릎이 갈수록 시리다는 얘기로 금방 넘어갔다. 욕은 듣지 않아서 다행인가. 나는 읍내에 도착할 때까지 버스 안에서 더욱 숨죽이고 있었다. _ 2016. 09. 28'
햇빛에 달구어진 몸의 열기와 땀이 바람을 타고 날아가면 선선한 기운에 둥실, 미소가 떠오르고, 그 틈에 힘 빠진 탄성이 새어나옵니다. 좋다….ㅎ. 쥐고 있던 낫을 내려놓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구름 그림자 한 톨 없는 새파란 가을 하늘. 아무것도 않고 그대로 있는 이런 순간도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순간만큼이나 사랑하는 농사의 면모입니다. 오히려 낫을 쥐고 풀매기(잡초를 뽑아 없애는 일)에 다시 정진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순간에만 차곡차곡 쌓이는 환한 기분 때문이죠. 흘러넘치는 햇살이 눈을 찌를 때, 눈을 감게 되는 것마저 기분 좋을 만큼 눈두덩이 뜨뜻해집니다. 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오스스 소름이 돋고 바람 닿는 곳이 서늘해지는 데서 가을인 걸 새삼 실감합니다.
다시 낫을 쥐었습니다. 오늘은 풀매기가 주요 작업. 배추의 키보다 높게 자라 해를 가리는 잡초들을 모조리 뽑을 예정입니다. 가을에 접어들면서 모든 식물은 자라는 속도가 눈에 띠게 느려집니다. 잡초도 마찬가지고요. 여름엔 풀매고 돌아서면 또 자라고 자라는 매일이 풀과의 씨름이었다면, 이 주에 한번, 삼 주에 한번 풀매기 빈도는 자연스레 줄어듭니다. 오늘 배추밭의 풀매기가 올해 마지막이길 바라며 고랑에 쏙, 쪼그려 앉습니다. 머리채를 휘어잡듯 잡초 밑동을 최대한 바짝 잡고 뽑거나 낫으로 베고, 뽑은 풀은 한 곳에 모아둡니다. 이 동작들을 반복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손제초(풀매기)입니다. 그야말로 단순 반복 노동인 풀매기를 할 때 저는 주로 한눈팔고 시간을 종횡무진합니다. 제초는 손에 맡겨두고 머릿속에선 온갖 생각(이라 부르기 민망할 만큼 건설적이지 않은 것들), 상상을 하며 한 고랑의 끝을 향해 가죠.
짜잔, 그게 바로 저랍니다, 할머니 여러분!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인사했다면 어땠을까. 이제 와서 저는 이런 가정을 합니다. 오늘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버스 좌석에 앉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이후에도 비슷한 일은 종종 있었어요. 동네에서 오가며 마주치는 할머니들이 ‘혼자 사는 여자’에 대해 제게 물으면, 시종일관 모르쇠로 답했습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는데, 차츰 그 상황이 재밌어지더라고요. “혼자 살면, 내가 중매나 설까~?” 하시면, “아마 관심 없을 걸요~ 홍홍.” 제가 저를 능숙하게 대변할 정도가 됐죠. 내가 이 바닥에서 그렇게까지 화제성 있는 인물인가 묻게 되지만, 시골에선 누구나 화제성을 띠게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떠오릅니다. 사람 밀도가 낮고 사이(실제 거리)가 멀찍이 떨어져 있으니 누구나 눈에 잘 들어옵니다. 별달리 수상쩍지 않아도 시골에 새로 나타난 이에겐 관심이 쏠리기 마련인데, 그가 혼자인데다 여자기까지 하다면 눈과 귀가 쫑긋 향할 수밖에 없나 봐요.
제가 경험한 시골은 선(線)조직의 공간입니다. 도시가 무수히 많은 점들이 개별로 자리잡는 점조직의 공간이라면, 시골은 드물게 찍힌 점 사이에 촘촘한 선들이 얽혀있는 곳입니다. 처음엔 그 연결선이 잘 느껴지지 않지만 문득 이 좁은 곳에서 관계가 실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것을 뚜렷이 마주하게 됩니다. 좀처럼 구해지지 않던 땅을 작목반 형님 전화 한 통에 쉽게 구할 때, 마침 필요하던 퇴비를 이웃이 갑자기 나타나 나눠줄 때, 촘촘한 연결감은 든든한 울타리로 느껴집니다. 이 선을 놓치지 않는다면 여기서 잘 살아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붙죠. 한편, 누구의 형편과 소식이 예상치 못한 곳까지 선과 선을 타고 순식간에 퍼져나가는 걸 볼 때에도 이곳이 그런 공간이었다는 걸 명심합니다.
그래서 제가 선택한 전략은 더욱 숨죽여 지내기. 어떻게든 마을 행사에서 빠질 핑계를 만들어내고, 자나 깨나 입조심은 물론, 애초에 최소한의 사람들과 선을 잇고 살았습니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나한테 관심이 없어 안도할 즈음이면, “너, 어제 밤늦게까지 불 켜져 있더라?” 생각보다 사람들은 남 신경을 많이 쓰는 데에 도로 기겁했더라죠. 나의 사정이 도마 위에 올라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이르면, 일단 깊이 숨었습니다. 더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그러나 그 전략이 성공했는지는 모르겠어요. 더 깊이 숨을수록 더 궁금해 하는 걸 보면요. 시골에서 혼자 살 때에 어떤 것이 좋으며 어떤 것을 감수해야 할까요. 익명성. 저는 그걸 내던질 수가 없어서 기어이 필사적이었고, 또 피로했습니다. 앞으로는 전략을 바꿔볼까 궁리중입니다.
4년 전 버스에서 출발한 생각은 고랑의 끝에 부딪혀서야 멈췄습니다. 이제 겨우 고랑 하나 풀매기를 끝냈어요. 잠깐 스트레칭할까요. 내내 오므라져 있던 다리를 펴고 등을 젖히면서 하늘을 올려다봅시다. 아이고, 내 무릎, 내 허리. 필사적이었던 지난날 태도가 고스란히 옮았는지 너무 열심히 풀을 뽑았습니다. 돌아보면 제가 지나온 고랑엔 숨죽은 풀들만 남았네요. 고양이는 해를 피하기 위해 그늘을 찾아 다가오고 있습니다. 제가 몸을 옆으로 비키면, 고양이도 살금 제 그림자를 따라 옵니다. 잠깐 물 마시고 싶은데. 야, 빨리 네가 갔다 와. 괜히 고양이 엉덩이를 떠밀어봅니다. 혼자여서 곤란한 점 또 한 가지는 필요한 무언가를 가져다 줄 사람도, 내가 신호를 보내면 저 멀리 밭 입구에 있는 수도꼭지를 잠가줄 사람도 없다는 겁니다. 이때 전략은 따로 없습니다. 이 밭의 끝과 끝을 부지런히 뛰어다닐 수밖에요. 귀찮지만 물을 마시러 잠깐 자리에서 일어나야겠습니다. 밭을 빠져나가는 동안 문득 궁금합니다. 그런데… 왜 할머니들은 당신이 궁금해 하는 그 젊은 여자가 눈 앞에 있던 저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을까요. 혹시 이미 다 알고 물어보신 건가. 그렇다면 소름 돋는데….
*잡초 뽑기(제초, 풀매기)
잡초 뽑는 일에 적기란 없습니다. 보이면 보이는 대로 뽑아주기도 하고, 오래 놔두었다가 작물의 키를 앞지를 때에만 뽑아주기도 합니다. 다만 저는 잡초가 꽃을 피우기 전에 뽑는 편을 선호합니다. 꽃씨가 사방에 날리면, 다음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잡초가 무성히 자라거든요(하지만 잡초의 꽃도 감상하는 재미가 있어서 아쉬워하다 곧잘 때를 놓칩니다).
뽑은 풀은 고랑이나 작물 주변에 비닐 대신으로 멀칭(땅을 짚이나 비닐로 덮는 일)합니다. 다른 잡초가 자라는 것을 막아주고, 땅 속의 수분을 유지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하지만, 여름철엔 멀칭용으로 덮어둔 풀이 뿌리를 내려 성큼 자라니, 멀칭용 풀은 바짝 말려 사용하는 것이 좋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