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미국으로의 이주가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동시에 호주에서의 나의 일상이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
우리는 작년 말, 남편의 이직으로 인해 결혼 후 10년 간 살았던 시드니를 떠나 멜버른으로 이주해 왔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생활터전을 옮기고 적응을 해오던 와중, 1년도 채 안되어 이번에는 더 멀고 먼 나라 미국으로의 이주를 또다시 결정하게 되었다.
멜버른도, 미국도 단 한 번도 우리의 계획에는 없었던 곳이었기에, 여전히 이 모든 일들이 꿈결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인생은 정말이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맞다.
작년에 시드니에서도 그랬지만,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익숙한 일상의 터전에서 나는 또다시 여행자 신분이 되었고, 지난 나의 여행지는 나의 새로운 일상의 터전이 될 예정이다.
일상을 여행으로 바라보는 일은 단순한 시각의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영감을 받는 일이 분명하다.
2년 전 모든 나의 삶의 모양이 큰 변화 없이 잔잔하기만 했던 시기에 가족과 한국을 방문해 서울 시내에 머물렀던 적이 있다. 그 당시 점심시간이 되자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회사원들의 무리를 바라보며 그 문화(?)를 잘 모르는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그 광경을 흥미롭게 바라본 적이 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 살 때는 점심시간에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복제품과 같은 모습의 회사원들을 보며 숨이 턱 막히곤 했었는데, 그리고 종종 그 모습이 너무나 끔찍하게 느껴지기도 했었는데.
서울을 떠나온 이제는 그들을 흥미롭게 바라보며 웃고 있으니, 나는 정말 여행자가 된 것인가.'
서울의 일상에 묶여있던 지난 나의 마음과 서울을 여행하는 자의 마음은 그렇게나 다른 것이었다.
그때 나는 속으로 작은 다짐 같은 것을 했었다.
‘시드니의 일상으로 돌아가면 바로 지금 이 여행자의 마음으로 살아가보자.
여행자의 마음으로 라면 나의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분명 새로운 의미와 재미를 발견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마치 내가 이 모든 일을 예견했던 것처럼, 그 작은 다짐이 시발점이 되어 곧 우리의 멜버른행이 결정되었고, 그때부터 미국행이 결정된 지금까지 나의 매일의 삶은 일상과 여행의 경계에 놓여 있다.
원치 않아도 나의 매일의 삶은 익숙함과 낯섦이 지속되는 긴 여행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지난 1년 동안 그런 여행자의 마음으로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 약간의 재미와 의미를 곁들이며.
그리고 이제, 미국으로의 이주가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또 다른 떠남을 준비하며, 문득 떠남을 준비했던 지난 나의 과거를 돌아보게 되었고 어릴 적부터 꽤나 많은 떠남의 순간을 경험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에 부모님을 따라 독일로 떠나 초등학교를 다녔고, 태어나 처음으로 쓰디쓴 작별의 순간을 겪으며 한국으로 돌아와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녔다. 철없던 대학생 시절, 겉멋으로 신청한 교환학생 신분으로 미국으로 잠시 떠났었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 취직준비를 하던 중 심신 요양을 핑계 삼아 부모님이 계시는 호주 애들레이드로 도망치듯 훌쩍 떠나왔다. 그리고 남편을 소개로 만나 애들레이드를 떠나 시드니로 시집을 갔고 그렇게 10년을 꽉 채운 시드니를 떠나와 그렇게 지금의 멜버른이다.
지난 시간들을 따져보니 지난 나의 39년 동안 한 곳에 가장 길게 머물렀던 삶은 결혼 후 시드니에서의 11년이었고 나머지의 시간들은 그보다 모두 짧았다. 돌아보니 참 다양한 이유로 여러 번을 떠나왔구나,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참으로 다양한 마음들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과연 이번 나의 떠남은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며 나의 삶에 어떠한 방점을 찍게 될까.
그리고 나는 또다시 새롭게 시작될 여행을 어떠한 마음으로 맞이하면 좋을까.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멈추어 나의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그동안 떠나왔고 동시에 새롭게 맞이했던 나의 모든 과거의 시간들, 곧 일상이 여행이 되고 여행이 일상으로 변해갔던 지난 모든 시간들을 다시 불러오며, 곧 있을 새로운 떠남의 시간을 이전보다 조금은 특별하게 준비해보려고 한다.
부디 나의 흐릿해진 과거의 이야기들과 마음들이 미약한 활자로나마 되살아나 각자의 힘을 발휘해 주길, 글이라는 매개체가 언제나 나에게 그랬듯, 경직된 현재를 돕고 미래를 따뜻하게 응원해 주길, 그렇게 진심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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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10년 이상을 한 나라에 머문 적 없는 사람입니다. 곧 미국으로의 이주를 앞두고 지난 과거에 떠나왔던 시간들을 다시 글로 복기하며 또다시 새로운 떠남을 준비합니다. 일상과 여행의 경계에서 배우고 느꼈던 마음을 담은 브런치 북 <나는 또 떠납니다>의 다음 편도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