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

단정하게 살아가자

나는 법대를 나와서

나름 역사라고 할만한 이야깃거리가 있는 금융사의 법무팀에서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했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얼추 비슷한 환경의 사람들이 있었고

각자의 능력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 번뿐인 인생 어디 한 번 잘살아보리라' 하는 친구들은 보지 못했다.


오히려 고등학교 때야

좀 논다는 무리에 끼어보려고 기웃대는 친구들이 있었고

나도 그들과 무리 지어 다닐 때면 호기로운 우쭐한 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청소년기를 지나 20대 이후로는

어떤 부류에 끼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첫 직장에서 본사 아닌 영업본부 소속의 동기가 있었다.

그는 결국 좀처럼 드문 케이스로 모 부서 부장님의 추천으로 본사로 옮겼왔다. 그 때문에 사내에서 평판은 좋지 못했다.


그 동기는 내가 회사를 나오고 나서도,

내가 다니는 회사에 나를 통해서라도 들어오고 싶어 했다.

그는 결국 내 이름을 면접 때 어필했고, 내가 다니는 회사에 입사를 했다.

(물론 그는 그 모든 것을 포함한 자신의 능력으로 입사에 성공했을 것이다)


대학원에서도 그런 사람들을 간혹 보았다.

한 친구는 밥을 사거나 라이딩을 해주거나 하면서

나에게 호의를 베풀기도 하고 가까이 지내고 싶어 했다.

그는 가끔 내 생각에 불편하다 생각하는 것들을 부탁하거나

같이 뭔가를 하기를 바랐다.


어느 날 그에게 말했다. 나와는 업무나 나의 포지션을 통한 무언가를 하기를 원치 말라고.

대신에 고민거리나 들어주고, 저녁식사를 같이 해주겠다고 했다.


내가 그렇게 하게 된 데에는, 그와 나는 관계를 맺는 목적과 가치관이 달라 언젠가는 호의로 그의 부탁을 들어줬다가 도리어 피해를 받을 것 같아서이다.


그는 박사라는 호칭을 간절히 원했다.

판검사 변호사가 아니니 박사라도 얻고 싶다고 했다.

한 번은 내게 논문 첨삭을 좀 해달라고 찾아왔는데, 논문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응당 알아야 할 한글 프로그램에서 추적 기능을 빠릿빠릿하게 열지도 못했다.

나와는 다른 유형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는 박사 호칭을 얻었고, 학교에서 몸담게 되었으니

바라는 목적을 이루었다.


그들을 판단할 필요는 없다. 각자의 살아가는 방식이 있으니

그런데 그런 인생에 빠지기 쉬운 게 있다. 바로 '자유'이다.

남들의 기준과 내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을 얻어야 하는 욕망들은 멀리 나아가려할 때 발목에 족쇄가 되기 쉽다.


'자유'라는 게 무엇일까? 나는 이 단어를 듣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다.

내가 아는 자유는

내가 말하고 선택한 것에 대해서 책임지는 일이다.

내가 감당한 일을 하고, 감당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것이다.

연봉 얼마를 포기하더라도

좋은 글과 연구를 할 수 있는 여유, 야근과 원하지 않는 자리에의 착석을

눈치껏 사양할 수 있는 자유

나는 그것이 오히려 더 좋다.


내가 누리기에 불편한 것들

내 몸에 맞지 않은 옷처럼

왠지 남들이 쳐다보면 적잖게 불편한

호칭과 혜택들은 언제라도 사양할 줄 아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분수에 맞게 살아가는

위대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주는 분들은

먹을 만큼의 음식을 아주 정갈하게.

깨끗이 먹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