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충분히 살아내기 위해서

그 순간 충실하라

흉내만 사는 삶에서 충만한 삶으로


대학교 졸업 무렵 다니던 교회는 큰 역사 근처 아파트 상가 지하상가에 위치했다.

단체 생활을 하면 금세 에너지가 고갈되는 성향이라 지하에서 오랜 시간,

꼭 지하가 아니더라도 2시간 이상 많은 사람이 집합적으로 모여있는 공간이 나는 좀 힘들었다.

성경공부와 예배에 각각 2시간씩 4시간 이상을 그곳에서 보내고 나면

아무리 주일이라도 월요일 출근에 내 얼굴은 퀭해있었다.

그래서 중간중간 성경공부만 한다던지, 예배만 드린다던지 해서

한텀의 주일날 단체 예배를 선택하는 시기도 있었다.


교회의 여름 수양회는 보통 3박 4일이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2박 3일로 줄어들었지만, 그 무렵 서울을 한참 떠나서

3박 4일의 수양회 동안 많은 사람들과 불편한 장소에서 일정표대로 있다 오면

믿음의 열망보다는 피곤함이 더 컸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종종 2/3 분량만 해내고 오기를 선택했다.

하지만 다들 알 것이다. 어떤 모임에서 일부를 하고 그만하기보다

아예 처음부터 발을 안 딛는 것이 오히려 심리적으로도 관계적으로도 편할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참여한 그 모임과 활동의 의미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중간에 다시 커뮤니케이션해야 하는 심리적 불편함을 감수하는 쪽을 택했다.

@ 봄, 어린이 대공원


다행히 체력적으로 버거운 모임들은 그 후로 대폭 형태가 변했다.

이것이 바로 코로나 팬데믹 덕분이라서

나로서는 코로나 시기가 너무 감사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그럴까. 혹은 그들은 왜 꼭 그래야만 할까 하는

엎치락 뒤치락하면서의 고민들은 나중에 정리가 됐다.

나는 체력이 좋은 사람도 아니고

순간적인 집중력과 단시간 열정은 높은 반면,

장시간 그것을 유지하는 일이 힘든 사람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왜 꼭 그래야만 해? 다른 방법도 있잖아" 하는

합리성을 따지는 성향이 있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중요한 일이라면 나의 경우 합리적으로 다가오는 일을 하는 게 맞다.

그래야 그 시간에 대한 보상이 있는 거니까.


중요한 일일수록 내게 맞는 방식으로 하자.

그래야 충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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