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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지

바나나는 안 좋아하지만, 바나나 우유는 좋아하는 원숭이들에게

바나나는 안 좋아하지만 바나나 우유는 좋아하는 원숭이, 그게 나 같아서 제주 해안을 드라이브하면서 이 노를 따라 불렀다


<나는 바나나 알러지 원숭이> 라는 노래가 있다

나의 제주도 해안 드라이브 송이다. 원숭이인데, 자기는 바나나에 알러지가 있다는 것이다. 좀 길고 지루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로선 주제 송이라 꼭 가사를 선보이고 싶으니 글을 보게 된 분들도 같이 즐겨주시면 좋겠다.

@우리집 다람쥐 님 내가 사온 바나나를 이렇게 진열했다. 발견하자마자 편집증 싸이코라 했지만 그림그리기에 딱 좋아여 잽싸게 그렸는데 역시나 막간의 색칠공부에 적합했다. 림의 나나는 이틀 정도 지난고로 숙성된 상태다. (비난해놓고 미안합니다. 요새 그림그릴 소재가 마땅치 않았습니다 ;;;)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나요 바나나 한입 먹지 못하는
원숭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정말 한심하죠
그런 눈으로 보지는 마요 값싼 동정은 필요 없으니
나 몰래 입을 가리고 웃는 거 다 아니까
나는 바나나 알러지 원숭이 그래도 나는 바나나 좋아해
나는 바나나 알러지 원숭이 그래도 나는 바나나 사랑해
오예 오예 오 오 오 오예 오예 오예 오예 오예 앙
믿을 수 없는 일이 생겼죠 엄마가 손에 꼭 쥐여주신
바나나 맛이 나는 바나나 향이 가득한 우유
깜짝 놀라서 눈이 커져요 너무 달콤한 향기에 취해
빨대를 타고 올라오는 노란 빛깔 바나나
나는 바나나 알러지 원숭이 바나나 우유 있어서 행복해 나는 바나나 알러지 원숭이 바나나 우유 있어서 난 좋아
오예 오예 오 오 오 오예 오예 오예 오예 오예 아우 어떡해

나 바나나가 없으면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바나나 바나나 바나나 나나나나 나는 바나나 알러지 원숭이 그래도 나는 바나나 좋아해
나는 바나나 알러지 원숭이 그래도 나는 바나나 사랑해
나는 바나나 알러지 원숭이 바나나 우유 있어서 행복해
나는 바나나 알러지 원숭이 바나나 우유 있어서 난 좋아
오예 오예 오 오 오 오예 오예 오예 오예 오예 아우
나는 바나나 알러지 원숭이


할까 말까, 갈까 말까, 갖고 싶지만 방향을 틀 용기가 없는 원숭이들에게


당장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우리는 모두 여러가지 크고 작은 선택들에 놓인다.

어느 대학, 무슨 과를 가야 할지부터, 이때부터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자유라기보다는 능력 껏 점수 껏, 제한된 틀에서 " 별거 아닌 것 중에 그나마 나은 것"을 선택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 것이다


나 역시 생각해보면 법학과에 진학해 박사학위를 얻기까지 까마득한 첩첩산중을 걸어온 느낌도 든다. 사실 나의 경우는 직선 코스를 구비구비 돌아온 느낌도 있다. 마치 등굣길에 오른 1학년 짜리 아이가 커다란 가방을 어깨에 메고 이 길에 뭐가 있나 저곳엔 뭐가 있나 두리번거리다가 한참 있다 자기가 있어야 할 교실 안으로 들어온 느낌이 크다.


예를 들어 나는 고등학교 시절 이과생이었다. 나 때만 해도 이과계열은 물리/화학/지구과학/생물을 모두 세부과목을 관통해야 했다. 나는 그중에 화학 II를 좋아하지 않았다. 원소 번호를 외워야 했기 때문에, 그런데 그게 없이는 어떤 문제도 풀 수가 없는 상황이었고 그것을 다 외우느니 포기하고 싶은 맘이 굴뚝 같았다. 한 번은 내신에 반영되는 시험에서 다 일렬로 찍어버리고야 말았다. 당시 점수는 47점이었다.


수능에서는 다행히 자기가 선택한 과학 II 과목만 하면 됐었기에 나는 수능으로 대학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잘하는 것을 최대로 해서 하기 싫은 것에 점수를 포기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당시에 그게 좋은 방법이었을까? 나는 언어영역은 입학 때부터 한 문제 정도를 틀렸었다. 그런데 수리영역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수학 점수는 오를 가망성이 없었다. 수 II도 암기할 수식이 너무나 많았다. 즉 잘하는 과목에서 추가로 할당할 만한 점수가 없었고, 나머지 과목에서 싫은 과목의 제한을 둔 이상 운이 좋지 않은 이상 총점이 늘어나기는 어려운 구조였다. 그런 내가 막상 대학 진학 때는 화학공학과도 지원했고, 과학교육과에도 지원했다. 그런데 마음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몸에 맞지 않는 것을 지속하는 것은 옳지 않아. 법대를 가자. 결국, 선택한 것은 결국 재수를 해서 법학과를 진학하는 것이었다. 사실 국문과나 문예창작과, 실용음악과 같은 곳에 가고 싶었지만, 역시나 가난한 예술가의 길은 갈만한 용기는 없었다.


졸업 후 대학원에 가는 일은 상상도 안 했는데


노력도 요령도 부족했지만 나는 마음만큼은 차선택을 택하지 않는 정면돌파 형이었다. 그 당시는 학업에 무지하여 대학원은 앞으로 전진할 용기 없는 사람들이 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많은 친구들이 일단 걸쳐 두자는 식으로 대학원에 갔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그 길을 간 사람 중에 누구도 졸업을 하지는 못했다. 나로서는 꼭 대기업의 법무팀에 들아가야만 사법시험에 도전하지 못한 억울함을 그나마 겨우 상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졸업후 10년이 돼서야 진짜 공부를 원하게 된 나는 대학원에 진학하였다.


돌아온 만큼 집중했다


총 4년 반, 휴학 같은 것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석박사 코스와 적지 않은 학술지 논문 발간, 두 번의 학위 논문을 마친 시간이라고 하기에는 가열찬 시간이었다. 회사에서 주는 리프레시 휴가를 통째로 털어 종합시험에서 최고 점수를 받기도 하였다. PhD를 받는데 4년 반은 일반적으로 소요되는 시간은 아니다. 나처럼 일과 병행하는 경우는 더욱 그럴 것이다. 인생을 살아오며 처음으로 최선을 다해본 것일까?여행지를 빼고는 좌뒹굴 우뒹굴한 적도 천천히 걸어본 적도 없이 바삐 움직였다. 석사 때는 힘들어서 마치고 눈물이라도 낫지, 박사 때는 그런 것도 없었다. 당연히 가는 길었다. 딱히 힘드네 어쩌네 하는 감정도 없었다. 도교수님이 그러시길 종심후 논문이 통과되면, 심사위원 교수님 동료로서 악수를 청하거나 박수를 보낼때 울컥한다더니, 나는 큰 감정이 일지 않은게 놀라웠다. 지난 시간 의 과업에는 목표에 필요한 일과 방해되는 일 만이 있었다. 나는 항상 내가 주변을 공감하고 배려하고 돌봐줘야 한다는 생각이 컸었기 때문에 그 안에 스스로의 유치한 감정 따위를 생성할 여력은 전혀 없었다.


설득되는 것으로 시작하기


나는 다소 이성적이지만 감성적인 사람이다. 나는 천재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사람이다. 그래선지 목표를 향한 여정에서는 감정을 꽁꽁 묶어버렸다. 나에게서 감정은 대화나 글에나 써야지, 내 일상의 결정에 적용해서는 안 되는 사치와도 같은 것이었다. 대신 돈은 비교적 마음대로 썼다.

마음이 있는데 그것과 다른 결정을 이성적으로 내리기까지는 쉬운 일은 아니다. 자신을 설득해야 하니까. 나도 처음에는 무엇이 나한테 어울리는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알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결정하는 과정이 더 길었다고 말해야 맞을 것 같다. 특히 경제적인 것에 매이고 싶지 않아서 대학 때부터 과외 같은 알바를 그만두지 못했고, 직장생활도 계속하게 됐던 것 같다.


그런데, 그나마도 결과적으로 선택한 후에 놀랍게 집중해서 해낼 수 있었던 것은, 그 동안 시도해 본 것 중에 공부가 내가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해피엔드였고, 그래서 지치지 않을 수 있었다.


가보지 않은 길은 가보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다


20대 중후반은 너무 어리거나 젊다.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나이다. 기회도 없고 경제적 여건도 쉽지가 않다. 그래도 우리는 종종 남들이 가지 않는 길, 혹은 남들이 많이 가는 길에 끌린다. 끌리는 마음의 동기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점은 내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에는 조금 용기를 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조금은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물론 그때도 여의도 거리를 굽 있는 구두를 신고 드레스 업 하고 회사를 다니는 것이 남들에게 그럴싸해 보일 수도 있었고, 나 역시 사회의 옷을 한 동안은 입어야 정체성에 대한 불안을 상쇄 할 수 있다 생각했다. 그래서 4년을 꽉 채워서 보냈고 이후에는 적을 안 두고 회사를 그만두는 용단을 보이기도 했다.


발을 내딛지 않고는 그게 어떤 길인지, 내가 그 길을 걸었을 때 얼마나 기쁠지를 알 수가 없다. 꼭 성과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자체로도 너무 좋은 시간이었고, 아니다 싶으면 길을 돌아 나오면 된다. 나는 그 지점에서 돌아오지 않고 다른 길로 갔다. 물론 발을 내딛는 시기 게 내 인생에 너무 결정타를 날리는 시기면 한 번 즘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20대 중후반과 같은 나이는 한참 취업 적정 기라, 그 시기를 놓치면 인생의 시드(seed)가 되는 커리어를 쌓을 기회가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대학 동기 중에는 그때 포기하고 계약직을 전전하다 아직도 그렇게 지내는 친구들도 더러 있다. 좋지 않은 시기에도 견뎌내고 진짜 기회에 발을 내딛는 지혜가 필요한 일이다.


손에 쥔 것을 놓아야 다른 기회가 들어온다. 양 손에 가득 쥐고서는 그 어떤 것도 주어지지 않는다. 안정과 편안함만을 추구해서는 다른 길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보자.


나 역시 지금부터는 내 손에 쥔 것을 슬슬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가 그만큼 인내하고 견뎌내 왔던 시간들로부터 서서히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고, 이제는 다른 길을 가보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가고싶다고해서 무작정 길을 나서서는 안 된다. 어떤 길이든 그 길이 나를 향해 열릴 때, 나를 허락할 때 나서야 하는 것이다. 나 역시도 늘 4~5년은 준비하고 가늠했다. 하지만 준비하기 위한 길 만큼은 주저말고 당장 떠나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때야말로 중도에 틀어도 그만이다. 혹은 그렇지않고 인내의 시간이 지나, 두려움이 없어질 때가 온다면, 그 무렵의 비움의 법칙은 언제나 옳았던 것 같다.


진짜 공감은 같은 길을 먼저 걸은 이들로부터의 한 마디였다

열매를 수확하려면 익어가는 시간도 필요하지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없다. 종종 그런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하루아침에 돈을 벌거나 모양새로 학위를 받거나 좋은 직장을 통해 한 참위의 스텝으로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말이다. 그런데 고수들은 다 알아챈다. 무엇이 진짜인지 가까인지, 마치 산타할아버지가 누가 착한 애인지 나쁜 애인지 아는 것처럼, 진짜 과정을 거쳐 인내해 그 분야에서 과업을 이루신 분들은 한 번에 사람들을 알아본다. 관상을 알아봐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눈빛과 말로, 글로 그가 같은 과정을 겪고 홀로 노력해왔구나, 견뎌왔구나 하고 알아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교수님들은 학생들이 어떤 경로로 수업 발표문을 가져왔는지 그냥 슥 보아도 아신다. 다른 수업의 것을 슬쩍 바꿨는지, 어디서 짜집기를 했는지, 혹은 정말 안 되는 실력에도 끙끙 앓고 쓴 글도 금세 알아차리신다. 스스로 고군분투하고 나서는, 그 노고를 아는 선배들로부터의 과정을 알아주는 격려가, 험한 길을 소풍길로 여기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다시 훌훌 턱고, 시작점에 놓여있다. 이제는 쉼과 집중을 조금은 알 것 같기에, 시행착오를 여전히 거치겠지만 그래도 가보도록 하자, 가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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