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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Tea) 이야기

차, 마음과 집을 개방하는 방법

나의 차(茶) 이야기

제주 이야기를 꺼낸 김에 쉼에서 빠질 수 없는 단골손님 이야기를 해야겠다. 제주의 서귀포에 가면 끝도 없이 펼쳐진 녹차밭을 마주하게 된다. 1년 살이 제주도민으로부터 전해 듣기로 아모레퍼시픽에서 오설록 뮤지엄이 오래전 서귀포 땅이 지금과 같은 시세가 아닐 때 값싸게 사들여 녹차밭으로 재탄생시켰다고 한다.

나에게 차 마시는 습관이 생긴 것은 생각해보면 꽤 오래전이다. 기억 속을 따라가 보면, 내가 꼬꼬마 직장인였을 때이다. 30대 중반이 넘으면 대여섯 살 차이는 다 친구처럼 지내기도 하지만, 20대는 세대를 달리하는 터울이라 생각하게 된다. 그 때즘 회사에서 나보다 그 즘 터울이 나는 고등학교 선배 언니가 있었다. 언니는 정말 오뚝하고 날렵한 콧날과 큰 입과 눈, 시원한 키를 가진 분이었는데 워크숍으로 북한산 등산을 갔던 어느 날엔가 회사에서 일 좀 한다는 언니들 무리에 껴 선배 언니 집에 들르게 되었다. 그 날 언니는 좋은 음악과 함께 보기에도 너무 예쁜 찻잔에 차를 대접해주었다. 싱글 라이프를 즐기고 있는 언니에게 처음으로 집에서 차를 마시는 것을 배우게 된 것이다.


생각해보면, 언니는 당시 신입 2-3년 차인 내가 이사회(BOD) 코디를 맡아 외국인 경영진들과 섞여 긴장된 회의실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때에도 항상 종이컵 두 개를 겹쳐서 "희봉 씨, 뭐 마실래? "하면서 다른 멤버와 다른 맛있는 차와 커피를 주시곤 했던 것 같다. 그때부터인 것 같다. '차는 이쁜 티팟(Tea Pot)을 이용해서 정성스럽게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면서 마시고, 편안한 음악을 곁들이자'라고 생각한 것이.

이후에도 내가 3개월 남짓 머물렀던 회사에서 같이 한 이사님은 가시 돋친 장미꽃 같은 분이었다. 나는 그분은 가시도 꽃도 좋았다. 그런 그녀는 매일 아침에 뜨거운 차를 역시 티팟에 우려내 일상적인 이야기들로 시작해 업무를 나누기를 원했는데 그때 역시 아침의 차 한잔의 여유로 기억되고 있다.


역사 속의 차(Tea) 이야기*

차를 처음 접하면 찻잔은 눈의 즐거움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찻잔은 그 형태마다 차의 유형에 따라 만들어진다. 대표적으로 찻잎을 끓이거나 일본과 같이 가루로 된 차를 마시는 동양에서의 찻잔은 마시기 좋게 널찍한 모양으로, 잎차를 그대로 우려 마시는 경우에서야 작은 찻잔이 만들어졌다.

이와 달리 영국의 대표적인 차로 생각되는 홍차는 찻물의 온도가 높은 탓에 찻잔에 손잡이가 달려있으며, 뜨거운 차를 잔 받침에 먼저 붓고 식히는 것에 유용하게 만들어졌다.


어릴 때 세계사를 보면, 동서양의 교류에 빠짐없이 나오는 것이 유럽인의 도자기 사랑이다. 유럽인들이 중국 땅을 발견하고 대항해시대가 열리면서, 중국의 차는 도자기와 함께 향신료, 비단과 함께 서양에 동양을 알리는 주요 수출 품목이었다. 그중 도자기는 당시 망망대해에서 무역선을 비바람으로부터 보호해주는 무게감이 있었고, 습기에 약한 차를 운송하는데 적합한 방습제의 역할을 해주었다. 동인도(Vereenigde Oostindische Compagnie) 상인들은 이때부터 도자기의 매력에 빠졌다고 한다. 특히 유럽에서는 차를 마시기 시작하면서 찻잔으로 도자기에 매료되었고, 그들의 차를 마시는 취미는 중국풍(Chinoiserie) 유행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 당시에도 취미 하면 장비부터 챙기는 것이 우리들의 삶인가 보다.


대항해시대 유럽인들 중에는 중국 도자기를 주문하면서 가문의 문장을 도안으로 보내기도 해 특별 제작을 요청했다고도 한다. 유럽인의 찻잔에 대한 열망은 그다음 어떻게 변형, 발전됐을지 상상이 되는가? 바로 그들은 직접 도자기를 만드는 공장을 설립하는 것에 이르렀다. 도자기를 만들려면, 마땅한 흙이 필요한데 유럽의 드레스덴의 지역에서 고령토가 발견된 후 예수회 선교사를 통해 도자기 생산 과정이 담긴 보고서가 파리로 보내지게 되면서,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에도 도자기를 제작할 수 있게 됐다.

본차이나(Bone China)라는 영국의 도자기는 동물의 뼛가루가 절반이 함유된 독특한 자기로, 영국에서는 웨지우드(Wedgwood)와 로열덜튼(Royal Doulton)에서 제작된 자기가 영국황실에 납품되기까지 이르렀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의 차가 삼국시대부터 유입돼 차 문화가 생겨난다. 고려시대에 와서는 왕실에서 팔관회, 연등회와 같은 다례의식(茶禮儀式)** 이 행해졌다. 일본은 8세기 나라시대에 중국 당나라의 차 문화가 유입돼, 12-14세기(가마쿠라시대)에 기본적인 모양새가 잡혔다고 한다. 영국은 17세기 초에 네덜란드를 통해 중국의 차가 소개된 이후 중국 홍차를 수입했으며, 영국 런던의 커피하우스 개러웨이(Garaway)에서 최초로 차를 판매한 것도 1657년이라고 한다.


* 오설록 티뮤지엄의 기획전(2017-18)의 자료 참조.

** 차로서 예(禮)를 행하는 것을 말하며, 삼국시대에는 헌다의식(獻茶儀式), 고려시대에는 진차의식(進茶儀式), 조선시대에는 다례의식(茶禮儀式)으로 행하여졌다. <네이버 지식백과>, '다례'의 용어해설 참조.


차로 마음의 벽을 쓰러뜨리다

제주에서의 온천욕을 충분히 하고 차를 마시는 것, 그리고 스페인에서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 지친 상태에서 숙소에 들어와서 마신 오르니만스 만자니야 꼰 미엘(HORNIMANS MANZANILLA CON MIEL)을 마시는 것은 여행 중 목이 칼칼하고 감기 기운이 쓱 올라올 무렵, 차가워진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마법과도 같은 일이었다.


다도체험을 할까 싶으면, 경주라는 영화 때문인지 경주에 가서 해야 할 것만 같은데 제주도에도 오설록 뮤지엄 티스톤에 가면 저렴한 가격에 동행과 함께 다도를 체험할 수 있다. 다기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 우리가 알고 있는 차의 대분류에는 무엇이 있는지, 차를 우려내고 마시는 적정한 온도는 어느 정도인지 등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편안한 조명과 그곳의 널찍한 원목 테이블,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차문화를 배우는 시간이라 복잡한 시간에서 나를 떼어내 휴식하게 하는 느낌이 든다. 좋은 곳에 가면 그곳이 필요하겠다! 고 생각나는 사람이 있는데, 제주에 초대한 엄마와 동생과 함께 쉼을 누리는 시간을 보냈다.


차를 매일 마시면, 나 스스로의 마음의 빗장을 무너뜨리게 되고 마음에 평온을 준다.

차를 함께 나누면, 차를 나눈 사람들과 벽을 낮추고 따뜻한 온기를 나누게 된다.

우려낸 차가 마지막 다관에서 떨어지는 방울을 옥루(玉淚)라고 하는데, 이는 가장 진한 향과 맛을 지녀, 가장 귀한 손님의 잔에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했다.

옥루를 담아 누구에게 줄까 하면, 괜스레 설레고 온몸에 찌끼를 내뱉어 경지에 오른 느낌이 들었다.


다도를 하기 전에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를 디지털액자 화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세한도는 국보로 조선 후기 학자인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작품이다. 그는 학자이면서 문장가이며, 감성이 풍부한 작품들을 그려냈다. 김정희는 안동 김 씨가 씌운 대역죄로 당시 제주도로 유배를 오게 되는데, 그중에 위리안치형*에 처해졌다. 그 당시 제자인 이상적이 학자인 그에게 중국에 오갈 때마다 청나라의 최신 학문과 동향에 담긴 책을 보내주었고, (나의 작은 경험으로 감히 말한다면, 사회적으로 수세에 몰린 사람에게 그런 우정을 표시하는 일은, 자신의 사회적 운명을 걸고 하는 일이다) 그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다고 한다. 불모의 섬에 갇힌 학자에게 당대 최신의 서적을 보내기 위해서는 물리적으로도 큰 노력이 필요했을 텐데, 나는 누군가의 이상적이 될 수 있을까 하며 한참을 바라봤던 기억이 있다.

그림 안에는 소나무 한 그루와 잣나무 세 그루, 집 한 채가 있다. 한참을 보면 외롭다는 느낌이 훅 드는 그림이다. 내 상황이 황량할 때 내 주변에 남겨진 소나무와 잣나무의 존재라는 의미란다. 그림 아래에는 길이 함께하자는 장무상망(長毋相忘)* 이란 글자도 있다.

* 가시로 둘러싸인 집에서 머물러야 하고 집 밖으로 못 나가는 형

** 길이 서로 잊지 말자. 중국 섬서성 순화에서 출토된 瓦當(와당)에 새겨진 말. <네이버 지식백과> 한자성어•고사 명언 구사 전


일상에서 차 마시는 일 _직장과 집에서


차를 습관화해서 먹기가 가장 어려운 곳이 있다면 바로 회사가 아닐까 한다. 마음먹고 티팟을 구매하려고 몇 번을 시도했지만, 실제로는 몇 번의 선물을 받고서야 직장에서 차 마시는 것을 할 수 있었다.

같은 차라도 제주도에서 녹차밭 바라보며 마시는 것과 회사 자리에서 마시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물론 별도의 공간이 있을 정도의 직위에 있다면 장미꽃 이사님처럼 사람들을 불러서 차 한잔 대접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다.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급적 회사에서 차를 마시려고 한다면, 반드시 유난히 맛있는 브랜드의 한눈에 반한 차를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민트 크루, 오설록의 웨딩 그린티, 실버문 티,, 그 정도의 차였던 것 같다.


코로나 19로 재택을 하거나 어떤 사유로든 집에 머무를 수 있다면 차와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지인들을 초대해 차나 커피를 대접할 때 마음이 참 좋았다. 집에서 차를 나누는 일은, 평소 나누지 못하는 또 다른 이야기를 잇게 하는 계기가 됐다.

중국차(茶)이다. 그러나 찻잔은 유럽풍이다.


가루를 녹여마시는 일본차의 기본 중에 기본 ^^ 두툼한 찻잔은 차의 온도를 유지시켜 마시는 내내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 것도 일상을 쉬어가는 방법이 된다. 에너지가 필요한 때 조명이 그윽한 곳에서 귤, 오렌지 종류의 상큼한 차도 활력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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