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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받아들여진다는 것

-쫄보가 혼자 여행하는 법

by 알로하엘린


바람이 부는 오전이었지만 일상을 벗어난 시간과 장소에서는 세게 부는 바람에도 사뭇 관대해진다.

이리저리 나부끼는 머리카락과 손 안에서 식어가는 커피. 평소라면 산책길에 나설 리가 없는 날씨였지만 여행지에서의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세피아 톤의 축축한 모래가 조금씩 말라가는 바닷가의 데크길을 걸었다. 쨍한 바다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흐리멍덩한 색감의 풍경이 아쉽기는 했지만 (소중한 이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은) 나의 무의식은 이제 멜랑꼴리라는 낭만의 멱살을 끌어 잡고 나를 조금 더 깊은 사유의 세계로 데려가고 있었다. 요즘 내게 당착해 있는 크고 작은 일들과 주변 사람들과 나 자신에 대해 무언가 심도 있는 생각들이나 관점을 달리 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뿅뿅 솟아오르기를 기대했다. 혹은 아련하고 고독하고 애틋한 시적이면서도 웅장한 어떤 정서의 혼합물이라도 일어나기를...


하지만 오늘은 그런 것들이 허락되지 않은 날이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다 보니 나의 생각들은 깊어지려다가도 바람싸대기를 맞을 때마다 끊겨나갔고 다시 집중해서 버버리코트 같은 감성을 불러보려다가도 머리카락이 360도로 회오리치며 얼굴을 감싸고도는 바람에 낭만은커녕 최소한의 기품조차 잃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움츠려드는 몸을 미적지근해져 가는 커피 한 모금으로 위로하며, 나의 시야를 가리며 사방에서 몰아치는 차가운 바람 속을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는 것은 좌충우돌하며 살아온 내 삶과 비슷해 보이기도 했다.



글의 내용과 무관함 주의



엄마와 아빠는 애증의 관계다. 어렸을 때는 애정이 더 컸었는지 한 번씩 지지고 볶으면서도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무조건 붙어있었던 엄마와 아빠.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 김치볶음밥을 만들고 있는 엄마에게 백허그를 하며 애정표현을 하던 아빠가 있다. 주말과 국경일, 휴가철이면 엄마아빠는 나와 동생을 데리고 전국팔도를 돌아다녔다. 여름방학이면 거의 일주일씩 여행을 가곤 했는데 나와 열 살 터울이 나는 남동생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해엔 온 가족이 잼버리 티셔츠를 맞춰 입고 안동 하회마을에 가 있었다. 양반탈과 부네탈 장식을 들고 깔깔거리며 앞서가던 나와 동생 뒤로 막내를 안은 아빠와 그 옆에 함께 걷던 엄마는 분명 행복했었다.



한 번씩 엄마아빠를 지지고 볶게 만들던 그 균열은 서서히 커져 언제부턴가 지지고 볶는 횟수가 늘어가더니 이혼을 하네 마네하는 격렬한 싸움도 잦아졌고 70줄이 된 둘은 이제 따로국밥에 가까워져 데면데면하니 살고 있다.

등산과 수영, 노래교실과 영화관람이나 수다 모임으로 일주일이 거의 풀로 채워져 있는 엄마와, 다른 약속 따윈 없이 손님이 거의 없는 부동산(이라 부르고 복덕방이라 읽는다)에서 종일을 보내고 비둘기와 들고양이 밥을 주는 낙으로 살며 가족들과도 잘 소통하지 않게 된 아빠.

독재자처럼 느껴졌던 엄마는 비교적 순해졌고 자상하고 유머러스했던 아빠는 화를 잘 내는 불통의 기인이 되었다. 엄마는 만성불면증에 시달리며 밤을 새우고 아빠는 초저녁부터 신생아처럼 잠들기 일쑤인 요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그저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아빠의 자발적 고립을 내버려 두는 것뿐. 그것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옳은 것도 틀린 것도 그렇다고 최선도 아니지만, 현재의 나로선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다.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그날도 엄마랑 긴 대화(?)를 나눴다. 엄마의 이야기는 네버엔딩스토리에 가까워서 나는 나의 컨디션에 맞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돌리거나 끝내야 했는데 그날은 충분히 들어주자고 마음먹었더니 4시간이 넘게 엄마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중간중간 내 얘기도 하긴 했지만 2시 정도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아빠가 퇴근한 6시를 훌쩍 넘긴 시간에야 끝이 났다. 아니 끝을 냈다.





엄마랑 나는 생각하는 것에 다른 점이 많고 서로 고집도 있어 잘 맞지 않는다. 내가 마음을 보여줬다고 생각하는 순간 엄마는 내게 상처를 받는다. 엄마가 좋은 것이라고 준 것들은 내게 독이 되었다.

그렇게 서로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들어주려고 노력했더니 정말 끝나지 않을 것 같이 이야기를 하는 엄마. 이미 여러 번 듣고 또 들은 이야기들. 엄마의 응어리나 억울함이나 뭐 그런 것들이다. 하지만 그 응어리들은 나에게 백번을 말해도 풀리지 않는다. 그것은 아빠를 향한 것이기에 아빠가 들어주고 보듬어주어야 하는데 아빠는 엄마를 향해 똑같은 크기의 응어리와 억울함을 품고 있어서 풀어줄 수가 없다.



응어리라고 하면 내게도 있다. 그것은 엄마로 인해 생긴 것들이지만 엄마는 나의 응어리를 인정하지 않기에 평소에는 꺼내지 않는다. 하지만 억눌린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니 나 역시 어떤 순간들엔 그 응어리들을 꺼내 풀어달라고 내밀게 된다.

이만큼 들어줬으니 내 말도 좀 들어달라는 마음이 들었던 것일까? 나는 불쑥 내 응어리를 꺼내어 엄마에게 내밀었다. 엄마에게 받았던 상처들과 그로 인해 지금까지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들에 대한 이야기들.

내 마음의 응어리를 말했더니 엄마는 부모로서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는데 왜 자기한테 상처받았다고 하냐고 뭐라고 한다. 동생은 안 그런데 너는 왜 그러냐고 엄마의 주특기인 비교하기도 시전 한다. 언제나처럼 튕겨져 나오는 나의 마음들.


보통 때의 나 같으면 역시 엄마랑은 말이 안 통한다고 생각하며 대충 대화를 마무리하거나 다른 주제로 넘겨버리는 식이 었겠지만 그날은 무슨 용기였는지 더 말하고 싶었다.


엄마, 나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잖아. 나도 내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은 거야. 이런 얘기들을 엄마한테 하지 내가 어디 가서 누구한테 하겠어...


역시 보통 때 같으면 엄마는 자기 방어적인 태세로 내가 이상하다고 해야 하는데... 웬일인지 오늘의 엄마는 내 말을 반쯤은 수용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럴 수도 있겠네"


토씨는 정확하지 않지만 처음으로 내 일부를 쳐다봐주고 인정해 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눴던 이야기들은 기억이 거의 안 나고 엄마가 한 저 말도 토씨가 맞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말이 담고 있던 그 느낌은 남아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철저하게 이해받지 못했던 나의 내면 아이가 지금도 자라고 싶어 자꾸만 손을 내밀고 있는 것 같아 안쓰러웠다. 인정을 받던 안 받던 나의 상처는 여전하지만 인정을 받고 안 받고는 상처가 아무는데 큰 역할을 한다.


그날 저녁 아빠와 엄마와 나는 식탁에 둘러앉아 동태찌개와 브로콜리, 꽈리고추 멸치조림과 알타리 무김치, 진미채볶음에 따뜻한 밥을 먹었다. 맛있었다.







흐린 바닷가에서 나는 왜 걷기를 멈추지 않았을까? 썰렁하고 흐린 날씨라 해도 한 번이라도 더 바다를, 하늘을, 그 모든 것들이 담겨있는 풍경을 눈에 담고 싶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보나. 이런 생각이었던 것 같다. 뷔페에 갔을 때 배가 부르고 더 이상 먹고 싶은 것이 없는데도 한 접시만 더. 하면서 일어나는 그런 마음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렇게 걷다 보니 해변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자원봉사자들인지 공공근로사업 참여자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해변 곳곳에 흩어져 모래사장에 파묻혀있는 쓰레기들을 줍고 있었다. 무표정에 가까운 사람들은 익숙한 자세로 쇠집게를 들고 능숙하게 해변의 쓰레기들을 집어 올렸다. 이 모습은 내가 산책을 다닐 때나 보던 그런 일상의 모습 아니던가...?

낭만은 게한테나 줘버린 산책이었지만 그럼에도 관광지 특유의 비일상적인 풍경들과 상반된 그들의 모습은 상당히 이질적인 느낌을 주었다. 쨍한 하늘과 푸른 바다와 깨끗한 모래사장의 완벽한 낭만의 삼합은 이렇게 바람 부는 흐린 날의 아침에도 묵묵히 청소하는 현실의 노고로 완성된 것임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내 안에서 유기체로서의 세상과 나의 관계가 인식되며 썰렁한 기운을 뚫고 무언가 따뜻하고 다정한 뿌듯함과 안정감이 피어올랐다.



바람과 싸우고 인류애로 화해하며 그렇게 걷고 걸어 길 끝 광장에 다다르자 거기에는 빨갛고 커다란(그 옆에는 파랗고 커다란) 느린 우체통이 나타났다. 기대하지 않는 순간에 등장하는 뜻밖의 만남. 엽서가 없거나 볼펜이 없거나, 대부분은 둘 다 없어 그냥 지나치곤 했던 느린 우체통엔 웬일로 엽서도 가득 볼펜도 넉넉하게 준비가 되어있었다.


나는 식어버린 커피를 버리고 엽서 두 장을 챙겨 바로 옆 호텔 안에 있는 카페로 가서 커피콩빵에 따뜻한 커피를 앞에 두고 누구에게 엽서를 쓸지 잠시 고민했다. 부모님과 남편에게 쓰기로 결정하고 이제 쓰기만 하면 되는데... 어쩐지 쓸 말이 떠오르지 않아 볼펜을 든 채 한참을 멀뚱거렸다. 카페에는 손님이 나뿐이라 한 번씩 직원들의 시선이 느껴졌고 아직 덜 녹은 손은 굳어있었다.

뭘 썼었더라... 아마 그날의 기분이나 '형식적인'에 가까운 인사말들과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 건강하세요 함께 해요 같이 밋밋하지만 진심인 말들을 적었던 것 같다.


느린 우체통에 엽서를 넣으며 일 년 뒤를 떠올렸다. 나도 잊고 지내다 어느 날 문득 엽서를 받았노라고 연락을 받는 상상. 보내는 즉시 가 닿으면 평범하기 짝이 없었을 나의 그냥저냥 한 엽서가 일 년 뒤에 도착할 것이라는 전제 속으로 들어가자 특별해졌다.

그리고 일 년을 훌쩍 넘겨버린 지금 그 특별한 엽서들은 부모님에게도 남편에게도 도착하지 않았다. 조금 더 느린 우체통이었던 것인지 어디 다른 곳으로 떠나버린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짧았던 여행일지라도 여행은 나를 언제나 더 멀리로 데려다준다.

마지막 일정은 닭강정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서프라이즈 이벤트로 강릉과 속초의 유명 닭강정을 다 사가는 것이었다. 닭강정 플렉스. 남편의 치킨사랑은 나의 순금사랑만큼이나 각별하다.

돌아갈 곳이 있기에 여행이 즐거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숨 쉬듯 누리느라 소중함을 몰랐던 나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길을 돌렸다.






모든 여행의 목적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새로운 눈으로.
-헬렌 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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