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요즈음에는 하루키를 읽지 않게 되어버렸지만, 몸을 움직이지 않고는(어설픈 운동이라도 하지 않으면) 제대로 살아갈 수 없고 아무것도 지속할 수 없음을 알아버린 지금, 내가 그렇게도 천착했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의 회고록이라 칭한 이 작품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이책은 아주 여러 해 전에 샀었지만 왠지 손이 가지 않아 책 정리 목록에 포함되었었고, 그렇게 책이 사라진 후에 다시 읽고 싶어져서 2023년에 나온 58쇄 책을 다시 구매하고서도 한참을 책상 위에서 떠돌다 읽게 된 책이다.
그렇게 좋아했던 하루키를 왜 그렇게 홀대한 것일까, 문득 생각해 보았다. 심리를 분석한 결과 죄송한 이야기지만, 나를 견디게 해준 것은 고맙지만 스스로에 대한 변명의 여지(이만큼 힘들었으니 별로 노력하지 않겠어 등등)를 주면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세월에 대한 원망, 뭐 그런 비슷한 감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그때는 그렇게 밖에는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앞으로 나아가는 일 따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피폐했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하루키 님에게 섭섭하기도 한 것이다. 소설 속에, 에세이 속에 조금만 달리기나 운동을 하면서 신체와 정신을 단련시키고 정신을 걷어차면서 성장하라고 말해주었어도 좋았을 텐데.. ,라고 말이다. 아니 이야기했는데 새겨듣지 못했다. 이 책만 해도 2009년에 1쇄를 찍었으니까. 결국은 아는 만큼 보이고 사람은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본인은 그렇게 루틴을 철저히 지키며 확고부동하게 성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하루키의 글을 씹어먹으면서도 이리저리 방황했던 젊은 나에 대한 미안함/어리석음/죄책감으로 살짝 자리잡고 있다).
서론이 길었다.
이 책은 하루키가 작가로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어떻게 달려왔는가, 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작가로서 살아남으려면 육체적 능력을 강화하여 작품을 집요하고 지속적으로 써야만 한다는 것을. 이것은 당연하지만 인생의 모든 부분에서 같은 원리로 통용가능하다. 일도 사랑도, 충실한 삶을 위해서는 강한 정신력과 체력이 필요하고 그를 위해서는 운동을 해서 자신을 끊임없이 벼려야 하는 것이다.
일에 몰입하려면 건강한 육체가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달리고(혹은 빨리 걷거나 등산, 헬스를 하고) 읽는다. 신체와 정신을 단련하는 자는 살아남을 수 있기 마련이니까. 뭔가 다른 무언가를 손에 쥘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키는 이 책에서 자신이 얼마나 치열하게 달려오고 써오고 살아왔는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냥 재능만으로 룰루랄라 지내오면서 얻는 업적이 아님을 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결론은, 이미 하고 있지만 더욱더 운동과 루틴에 대한 중요성을 뼈저러게 느끼면서 하루키 님처럼 열심히 살고 사랑하겠다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