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의 모델과 인간 생산 활동의 한계

본질에 도달하지 못하는 인간 문명의 구조

by 민진성 mola mola

모든 생산물은 추상적 모델이다

손에 쥔 젤리는 단순한 식품이 아니다. 그것은 달콤함으로 도파민 분비를 자극하고, 무해하거나 상대적으로 해가 적은 성분으로 구성되며, 특정한 식감을 제공하기 위해 고안된 추상의 산물이다. 우리가 젤리를 ‘음식’이라고 부르는 순간, 이미 젤리는 생리적 필요와 감각적 즐거움 사이에서 추상화된 모델이 된다.

의자 또한 단순히 ‘앉는 물체’가 아니다. 직립보행하는 인간의 신체적 구조와 피로를 줄이기 위한 기능적 장치이며, 문화적 맥락 속에서 다양하게 변주된 수많은 모델 중 하나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생산물은 언제나 필요와 환경, 신체 구조를 추상화하여 재현한 결과물일 뿐이다.



이데아의 불가능한 현현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이러한 한계를 일찍이 지적했다. 이데아는 완전한 본질이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은 그저 이데아의 불완전한 모사에 불과하다. 젤리나 의자가 가진 기능과 형태는 어디까지나 ‘좋음’, ‘편안함’이라는 이데아를 향한 불완전한 그림자다.

칸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것은 ‘현상’에 국한된다고 보았다. 즉, 인간은 사물 자체(물자체, Ding an sich)에 결코 도달할 수 없으며, 우리의 경험은 감각과 범주를 통해 구성된 현상 세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이데아의 불가능한 현현은 결국 인간 인식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다.



과학기술의 환원적 성격

현대 과학은 자연을 수학적으로 모델링하며 설명한다. 그러나 이는 자연의 무한성을 온전히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측정 가능한 변수와 법칙으로 환원하는 작업이다.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 이론이나 라투르의 행위자-연결망 이론도 같은 문제를 지적한다. 과학은 객관적 진리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대의 패러다임과 네트워크 속에서 작동하는 하나의 모델 체계일 뿐이다.

예컨대, 뉴턴 역학은 오랫동안 ‘자연의 본질’을 드러낸 것처럼 보였으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의해 특정한 조건에서만 성립하는 근사 모델로 위치가 바뀌었다. 이 사례는 과학기술이 본질을 드러내기보다는, 시대마다 유효한 추상을 반복적으로 갱신하는 구조임을 보여준다.



존재론적 함의

이처럼 인간의 모든 생산 활동—경제 제도, 예술 작품, 언어 체계—는 본질과 직접적으로 대면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언제나 추상화된 구조물의 연쇄로만 주어지며, 본질은 그 과정에서 끝없이 미끄러진다.

베르그송은 인간의 지성이 사물을 다룰 때 항상 정적 개념과 도식으로 환원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현실의 삶과 시간은 끊임없는 흐름(durée) 속에 있다. 즉, 인간의 사유와 생산 활동은 본질의 흐름을 포착하지 못하고, 단지 그 흔적을 모델로 고정할 뿐이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본질을 실현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러나 바로 그 한계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모델을 무한히 창조할 수 있다. 본질은 닿을 수 없는 지평선이지만, 그 불가능성이야말로 인간 문명의 동력이 된다.




#2025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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