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과부하 시스템에 관하여
나는 흔히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으로 보인다. 조금 전까지 과하게 말하더니, 갑자기 무표정해지고, 어떤 날은 지나치게 예민하다가 또 어떤 날은 감정이 거의 없어 보이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런 나를 불안정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 내 문제는 감정 자체에 있지 않다. 문제는 인지 처리량이다.
인지과부하(cognitive overload)는 한 사람이 순간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을 넘어서서, 인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주의집중, 기억, 판단, 감정조절 등이 동시에 요구될 때, 뇌는 과부하에 빠진다. 기계로 치면 CPU가 100% 돌아가다가 결국 멈추거나 다운되는 상태다.
뇌는 외부 자극을 처리할 때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감각 입력(Sensory Input) – 오감으로 들어온 정보가 필터링 없이 들어온다.
주의(Attention) – 어느 정보에 집중할지 선택하는 과정이다.
작업 기억(Working Memory) – 선택된 정보는 단기적으로 유지되며, 판단이나 감정과 연결된다.
의사결정과 반응(Executive Function) – 정보를 종합해 행동이나 말을 결정한다.
문제는 주의와 작업 기억 단계에서 필터링이 제대로 안 될 때 생긴다. 보통 사람들은 일부 정보만 선택하고 나머지는 무시한다. 그런데 나는 그게 잘 안 된다. 들어온 정보가 전부 ‘중요해 보인다’. 그래서 전부 다 처리하려고 한다. 작업 기억이 터지고, 감정도 같이 따라 터진다. 이건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인지 필터가 약한 구조적인 상태다. 주의가 넓고, 연상 속도가 빠르고, 예측하려는 경향이 강할수록 더 쉽게 과부하가 온다.
나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정보를 ‘줄여서’ 받아들이지 못한다. 누가 웃었는지, 어떤 말투였는지, 과거에 저 사람은 어떻게 말했는지, 지금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 그게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 모든 게 동시에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걸 다 받아들이고 해석하려고 한다. 그 결과, 말이 많아지거나, 완전히 멈춰버리거나, 감정적으로 과잉 반응하거나, 무반응 상태가 되거나 양극단의 상태를 오가게 된다. 내가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다. 그냥 그렇게 된다. 처리가 불가능한데 인식은 멈추지 않으니까.
이 구조는 아주 어릴 때 만들어졌다. 살기 위해, 실수하지 않기 위해, 놓치지 않기 위해. 나는 스스로를 그렇게 훈련시켰고, 이제는 그 훈련이 ‘고장’처럼 굳어버렸다. 사람들은 내 반응만 보고 감정 기복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내가 오히려 감정을 자주 ‘보류’한다고 생각한다. 생각이 너무 많아, 감정을 놓칠 뿐이다.
나는 인지과부화 상태에서 살아간다. 그게 나를 피곤하게 만들고, 인간관계를 어렵게 하고, 때로는 나조차 나를 감당하지 못하게 만든다. 필터링을 배우는 중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게 고쳐질지, 아니면 그냥 이 상태로 평생 버텨야 할지. 아마도 후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어쨌든 살아야 하니까, 나는 오늘도 가능한 만큼만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흘려보내는 흉내라도 내본다. 진짜로 흘려보내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냥 그렇게 살고 있다.
#2025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