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학은 왜 ‘치료’가 비어 있는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몇몇 지인들은 한결같은 말을 했다. “약은 먹지만, 나아지는 건 결국 내가 혼자 해내야 해.” 그 말은 감정적인 푸념이 아니라, 오랜 시간 병원을 다닌 사람의 실감이었다. 누구도 그들을 속이진 않았다. 다만 시스템이 그렇게 짜여 있을 뿐이다. 정신과 외래 진료 시간은 평균 10분 남짓이다. 그 시간 동안 환자는 상태를 보고하고 의사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진 뒤 약을 조정한다. 그게 전부다. 상담은 따로 예약해야 하며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비용도 상당하다. 결국 대부분의 환자는 약만 받고 돌아간다. 그리고 스스로를 조절하며 살아간다.
이런 구조 속에서 우리는 질문하게 된다. 정신과의사는 정말 ‘치료자’인가? 실제로 개입을 통해 정서적 변화를 유도하고 삶의 조건을 재구성하도록 도와주는 사람은 따로 있다. 심리상담사, 행동치료사, 때로는 오랜 시간 곁에 머물며 함께 살아주는 주변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단과 입원 결정, 약물 처방, 공적 기록은 모두 정신과의사의 권한이다. 치료가 아닌 판단만을 수행하면서 치료자라는 이름은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정신과의사는 자주 ‘환자의 회복을 돕는다’고 말하지만 그 회복 과정은 대부분 환자 스스로의 몫이다. 진짜 개입은 타 직군에게 맡기고 의사는 시스템 상의 판단자 역할에 머무른다. 더 큰 문제는 그 판단에 대한 책임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오진이나 자살 등 중대한 결과가 발생해도 의사가 실질적 책임을 지는 경우는 드물다. 책임은 흐릿하고 권한은 선명하다.
가장 단순하고 합리적인 제안은 이렇다. 진단은 의사에게, 치료는 치료자에게. 정신과의사가 질병을 분류하고 법적, 행정적 판단을 내리는 역할을 계속 수행하되 치료 개입의 중심은 심리상담사, 행동치료사 등 실제 회복을 돕는 직군에게 위임해야 한다. 이들이 보험 체계 안에서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환자가 처음 병원에 들어왔을 때부터 약물과 병행해 상담이나 생활 기반 개입이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기술도 아니고 제도 설계도 아니다. 핵심은 기득권이다. 정신과는 다른 진료과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개입적인 구조에서 고수익을 유지해왔다. 단시간 진료로 다수 환자를 상대할 수 있고 약물 치료는 표준화되어 있어 리스크도 낮다. ‘치료’라는 명분을 유지하면서도 그 실질을 외부에 떠넘긴 채 진단권과 권위를 유지하는 데 성공한 구조다. 이런 구조를 의사 집단이 스스로 포기할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시장 논리는 냉정하다. 시대에 뒤떨어진 방식은 도태된다. 의료 또한 예외일 수 없다. 치료자로 남고 싶다면 치료자의 책임과 노동을 감수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진단자로 남는 것이 맞다.
정신건강의 목표는 병명에 대한 처방이 아니라, 삶의 회복이다. 그 회복은 단순한 약물 복용이나 진단서로 이뤄지지 않는다. 정신의료 체계는 지금보다 훨씬 더 개입 중심, 관계 중심, 환자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진단은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그 진단은 출발점일 뿐이지, 종착점이 아니다. 정신과가 진정한 의료로 기능하고 싶다면, 더 이상 ‘치료자’라는 이름을 명패로만 두고 있어선 안 된다. 치료자라면, 마땅히 치료자의 노동을 감수해야 한다. 그것이 아니면, 그 이름은 내려놓아야 한다.
#2025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