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생존 사이
의사라는 직업은 표면적으로는 가장 많은 희생을 요구받는 직군이다. 긴 학제, 치열한 경쟁, 높은 책임감. 하지만 구조를 하나씩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의외로 낮은 개입도, 높은 권한, 낮은 책임이라는 기묘한 불균형이 숨어 있다. 대표적인 예가 정신과와 피부과다. 정신과는 짧은 외래 진료, 약물 처방이 대부분이고 피부과는 본래 질환 진료보다 미용 시술로 시장을 장악했다. 두 과 모두 환자의 회복보다는 형식적인 진단과 서비스 제공에 가까운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의사’라는 타이틀 아래 가장 높은 사회적 신뢰와 수익을 동시에 얻는다.
이런 구조는 분명히 정당하지 않다. 치료를 하지 않는 ‘치료자’, 공공 자격으로 민간 시장을 독점하는 ‘전문가’ 이건 제도적으로 다시 설계되어야 마땅하다. 진단은 정신과의사가 하더라도 치료는 심리상담사와 행동치료사에게 위임해야 한다. 미용 피부 시술은 별도 자격을 만들어 스킨디자이너 같은 직종에 이관하고 의사는 본래의 의학적 치료로 돌아가야 한다. ‘면허’가 권리가 아닌 책임이라면, 그 책임이 없는 면허는 조정받아야 한다.
그렇게 구조를 해체하고 문제를 정리한 후 어느 날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내 자녀는 의사였으면 좋겠다.” 특히 정신과나 피부과라면 더 바랄지도 모르겠다. 치열한 윤리와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멀리 있고 안정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보장받을 수 있으니까. 사실상 가성비로만 보면 의사보다 나은 직업은 없다.
나는 이 구조가 불공정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시스템이 개편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이 구조 안에서 내 자녀가 살아남기를 바란다. 그건 현실이고 생존이고, 사랑의 한 방식이다. 모순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만이 어쩌면 타인의 윤리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내가 이 구조를 비판하는 이유도 결국 그 구조 안에 ‘삶’을 집어넣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 나 역시 윤리적으로, 현실적으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완벽하게 정의롭지 않은 세상에서 가장 정의롭기만 한 선택은 때때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최소한 그 모순을 인식하며 살아가야 한다. 나는 그걸 부모가 된다는 것이라 부르고 싶다.
#2025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