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 앞에서 무너지는 몸, 그리고 자율신경계에 대한 고찰
오늘 점심은 햄버거 하나였다. 특별히 많은 양도 아니었고, 그다지 기름지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오후 내내 속이 더부룩하고 꽉 찬 느낌이었다. 체한 것도 아닌데 소화가 되질 않았고, 밤이 되도록 허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단순히 음식 탓이라고 하기엔, 이상할 정도로 피로했고 무기력했다. 문득, 내가 오늘 1시간 넘게 가장 더운 시간대에 외출을 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햇빛을 그대로 받으며, 병원을 오가는 길에 버스를 2시간 40분 동안 탔다는 것도. “혹시 더위 먹은 걸까?” 자각은 그렇게 시작됐다.
오늘따라 땀이 비정상적으로 많이 났다. 겨드랑이, 등, 허벅지까지 옷이 젖었고, 아무리 닦아도 축축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날씨 탓이라기엔 뭔가 이상했다. 적어도 4년 전의 나는 이런 날씨를 견딜 수 있었으니까. 오히려 이보다 더운 한 여름에도 이정도는 아니었다. 여름이 바뀐 걸까? 아니면 내 몸이 바뀐 걸까?
이 질문은 곧 자율신경계에 대한 이론적 고찰로 이어졌다. 자율신경계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으로 이루어진 우리 몸의 자동 조절 시스템이다. 체온, 심박수, 소화, 발한(땀) 등 우리가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없는 기능을 관장한다. 여름 더위에 반응해 땀을 흘리며 체온을 낮추는 것 역시 자율신경계의 역할이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만성화되면, 특히 **CPTSD(복합외상후스트레스장애)**처럼 교감신경이 과도하게 항진된 상태에서는 이 반응이 지나치게 활성화된다. 그 결과, 땀이 필요 이상으로 많이 난다. 체온 조절이 과도하거나 둔감하게 작동한다. 더위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기본적인 외부 자극에도 탈진한다. 나의 반응은, 단지 더운 날씨 때문이 아니라 몸의 신경 체계가 비정상적으로 반응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4년 전과 비교하면, 다른 생리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는 나의 자율신경계가 예전과 같지 않다는 방증이다.
그동안 쌓인 심리적 외상, 회복 과정의 기복, 그리고 정신적 에너지를 과잉 소비한 패턴이 몸의 반응 체계 자체를 변화시켰다. 특히 무의식적인 긴장 상태가 지속되면, 교감신경은 늘 싸움을 준비하며 "도망칠 준비가 된 몸"을 유지하려 한다. 이 상태에서 여름의 더위는, 단지 기온 상승이 아니라 생존 위협으로 해석된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않기로 했다. 어쩌면 햄버거 하나가 아니라, 그 날의 긴장, 피로, 자율신경계의 과잉 반응이 모두 모여 내게 “그만”이라고 말한 걸지도 모른다. 이럴 땐 먹는 것보다 쉬는 게 우선이다. 그리고 충분히 수분을 보충하고, 가능하다면 하루의 일정을 하절기용 리듬으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보통 몸에 문제가 생기면 정형화된 질병이나 외상만을 의심한다. 하지만 정상과 이상 사이에는 수많은 반응의 스펙트럼이 있다. 자율신경계의 변화는 특히, 심리적 고통이 육체적 고통으로 전이되는 통로가 된다. 오늘 내 하루는, 그런 연결 고리를 감지한 순간이었다. 햇볕, 긴 이동, 익숙한 음식, 그리고 땀. 그 모든 요소들이 내가 나를 돌볼 시점임을 조용히 알려주고 있었다.
#2025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