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은 공적인데, 왜 상속은 사적인가?

혼외자의 지분 상속과 민법의 구조적 모순

by 민진성 mola mola

법인은 ‘공적’ 존재다

법인은 단순히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니다. 회사를 설립하는 순간부터, 그것은 사회적 책임을 지는 ‘독립된 인격체’로 간주된다. 자산도, 계약도, 법적 책임도 법인 스스로가 진다. 그래서 경영자는 마음대로 회삿돈을 쓸 수 없다. 그건 ‘배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법인의 지분은 사망과 함께 ‘사적인 유산’으로 간주된다. 그리고는 가족, 특히 ‘자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뉘어진다. 회사에 단 한 번도 출근한 적 없는 자녀, 심지어 생전에 존재조차 드러나지 않았던 혼외자에게도 말이다.



혼외자도 ‘법정상속인’이다

한국 민법은 분명하다. 혼외자라도 부모와 친생자 관계만 성립되면 법정상속권을 갖는다. 지분이든 부동산이든, 아버지의 재산은 혼내·혼외를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나눠져야 한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지금 논의하는 건 "부동산 1채를 자녀들이 나눠 갖는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나눠 갖는 건 회사의 지배력, 즉 경영권이다.



기여 없는 지분 상속, 그리고 그 대가

가장 흔한 시나리오는 이렇다. 아버지는 생전 회사를 세워 30년간 키웠다. 그는 장남에게 회사를 맡기고, 슬하의 자녀들에게는 각기 약간의 재산을 남긴다. 그런데, 생전 인정하지 않았던 혼외자가 사망 후 법원에 친생자 인지 소송을 제기해 지분 상속을 청구한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혼외자는 회사를 운영할 의지도 없고, 상속세를 낼 돈도 없다. 결국 그 지분은 외부에 매각되고, 회사는 뜻하지 않게 경영권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실제로도 이런 사례는 많다.



실례: 기업의 경영권 분쟁들

효성그룹은 형제 간 지분 상속 분쟁으로 내홍을 겪었다. 금호아시아나는 오너일가 내부에서 갈라진 지분 탓에 위기 상황이 반복됐다. 남양유업도 상속과 경영권 분쟁 이후 결국 외부에 팔리며 오너가 물러났다.


이와는 결이 다르지만 참고할 만한 사례도 있다. SM엔터테인먼트는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가 생전 보유하던 지분을 외부(하이브)에 매각하면서 카카오와의 경영권 쟁탈전이 촉발되었다. 이 역시 상속은 아니지만, 지분이 외부로 유출되면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다는 구조적 위기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왜 이런 구조가 만들어졌을까?

간단히 말하면, 민법은 법인의 성격을 고려하지 않는다. 민법은 상속을 "개인이 죽고 그의 사적 재산을 가족에게 나눠주는 것"으로 본다. 지분이건 토지건, 그저 ‘사적 자산’의 일부일 뿐이다. 여기엔 19세기 시민법적 전통이 깔려 있다. 현대 법인의 등장 이전, 상속은 농지, 주택, 금괴를 나누는 것이었다. 그 시절의 법체계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평등권’이라는 신성불가침의 논리

혼외자에게도 지분을 나눠줘야 하는 이유는 하나다. “헌법상 평등권”이다.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말한다. 이 평등권은 혼내자와 혼외자, 경영 자녀와 비경영 자녀를 구분하지 말라는 논리로 확장되어 적용된다. 하지만 묻고 싶다. 기여가 전혀 없는 것이 어떻게 평등한가? 법인을 단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사람이, 그 법인의 경영권을 손에 쥐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가?



외국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일부 국가는 경영권 중심의 상속 구조를 인정한다. 독일은 가업승계를 위한 유류분 제한을 법원이 허용할 수 있다. 프랑스는 특정 요건 하에 가업 자산에 대해 상속세를 감면하고, 유류분 제한한다. 미국은 패밀리 트러스트 제도를 통해 수익권은 자녀들에게, 경영권은 특정인에게 귀속한다. 공통점은 회사의 안정적 지속을 위해 상속 구조에 ‘예외’를 허용한다는 점이다.



법인의 공공성을 무시한 민법의 한계

법인은 그 자체로 공적 책임을 가진 조직체다. 직원이 있고, 계약 상대가 있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있다. 그런 조직의 지분을 단지 ‘피상속인의 개인 자산’이라 간주하는 건 시대착오적이고 위험한 접근이다. 상속이 평등해야 한다는 논리도 중요하지만, 기업의 존속과 사회적 영향까지 고려한 ‘실질적 정의’가 법률에 반영되어야 한다.



바꿔야 할 것들

1. 상속법 내 경영권 분리 개념 도입 : 경영권은 ‘기여’ 또는 ‘계약’에 따라 별도 분배할 수 있도록 허용

2. 유류분 제도의 유연화 : 혼외자나 비경영 자녀에게도 일정 부분 유류분 제한을 허용

3. 차등의결권 주식의 상장 허용 : 경영권을 보호하면서도 지분은 나눌 수 있게 해야 함

4. 신탁제도 활용 장려 : 기업 전체를 신탁화하고, 수익권·경영권을 분리하여 운영



이제는 ‘공로 있는 자에게 정당한 권리를’

혼외자도, 비경영 자녀도, 법 앞에서 평등한 인간이다. 그러나 경영과 기업의 지배권은 단순한 평등으로만 설명될 수 없는 고도의 신뢰와 책임의 문제다. 우리는 이제, 그 평등이 누구에게, 어떤 대가로, 어떤 결과를 남기는지를 함께 질문해야 한다.




#2025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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