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정체성·사회적 성숙을 연결하는 생활 기반의 이론적 구조
현대 대학은 점점 더 기능적 교육기관으로 축소되고 있다. 수업, 시험, 졸업 요건은 남았지만, ‘대학생활’로 불리던 총체적 경험은 공간 밖으로 밀려났다. 그 결과, 기숙사는 종종 ‘있으면 좋은’ 편의시설 정도로 간주된다. 하지만 기숙사는 단지 주거 편의가 아닌, 대학 교육의 인지적·사회적·정체성 발달에 기여하는 핵심 인프라이다.
윌리엄 페리(William G. Perry Jr.) – 하버드 교육심리학자
페리는 『Forms of Intellectual and Ethical Development in the College Years』(1970)에서 대학생은 절대적 사고에서 상대주의적 사고로 전환하며 정체성과 가치 체계를 재구성하는 존재라 설명했다. 이 발달은 지식 전달만으로는 일어나지 않는다. 타인과의 지속적 상호작용, 사회적 갈등, 실생활 속 모순 경험을 통해 유도된다. 기숙사는 이 전환의 주요 장치다. 공동생활은 개인의 도덕 판단, 관점 수용 능력, 자기 통제력을 발달시킨다. 이는 페리가 말한 “성숙한 지적 자율성”의 전제 조건이다.
Jean Lave & Etienne Wenger (1991), Situated Learning: Legitimate Peripheral Participation
학습은 단순한 정보 수집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 공동체 안에서 점진적으로 참여해가는 과정이다. 학습자는 단순한 수혜자가 아니라, 공동체 내부의 관찰자, 부분 참여자, 핵심 실천자로 발전해야 한다. 기숙사는 이 학습 모델의 ‘생활 기반’을 제공한다. 서로 다른 전공, 문화,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일상을 공유함으로써
인지적 다양성과 사회적 협상력을 훈련한다. 이것이 공동체 기반 학습의 비형식적 실현 메커니즘이다.
Roger Barker – Behavior Setting Theory (1968)
행동은 환경 내에서의 “규칙적 패턴”에 따라 형성된다. 인간은 공간 구조, 동선, 밀도, 가시성 등에 따라 상호작용 방식을 달리하고, 이로 인해 사회적 연결망과 심리적 안정성이 결정된다.
복도형 기숙사는 교류 빈도, 학업 몰입, 심리적 소속감에서 우수한 결과를 보였다. 스위트형/원룸형은 개인화, 고립, 낮은 응집력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즉, ‘어디서 사느냐’는 ‘어떻게 학습하고 성장하느냐’를 결정한다. 기숙사는 공간을 통해 행동의 형식, 관계의 밀도, 학습의 자극 조건을 구조화한다.
기숙사를 단순한 ‘잠자리’로 간주하는 순간, 대학은 지식만 공급하고, 삶은 방치하는 구조로 전락한다. 기숙사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인지-정체성-공동체를 통합하는 교육의 실험실이다.
그리고 실험실이 없는 교육은, 학습이 아니라 주입이다.
#2025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