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만 있는 대학은 진짜 대학이 아니다
“대학교는 수업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이 질문은 낯설지 않다. 등록금이 비싸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캠퍼스 리모델링 예산이 언급되면, 기숙사 확충을 논의하면 항상 따라붙는 말이다. "공부하러 온 거지, 호텔 지으러 온 건 아니잖아?" 하지만 우리는 점점 더 자주 묻게 된다. 공부는 도대체 어디서, 어떤 조건에서 이루어지는 걸까? 대학은 더 이상 단순히 지식을 공급하는 기관이 아니다. 삶의 방식과 공동체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 핵심에 기숙사가 있다. 기숙사는 선택이 아니라, 대학이라는 제도를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이다.
대학생활은 강의실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강의실 바깥에서야말로 진짜 대학이 펼쳐진다. 같은 수업을 듣는 친구와 밤늦게까지 토론을 하고, 누군가의 방에서 스터디 모임을 열고, 라면 하나로 밤을 새우며 공동체라는 감각을 배워간다.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가능한 것들이다. 기숙사는 바로 이 '생활 속 학습'을 가능케 하는 물리적 기반이다. 기숙사가 없다는 것은, ‘학문’을 캠퍼스 안에 두고 ‘삶’을 바깥에 내맡기는 구조를 고착화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 대학의 평균 기숙사 수용률은 20% 수준. 서울의 주요 대학 대부분은 이보다 낮거나 비슷하다. 연세대 약 22%, 고려대 약 19%, 서울대 약 27%, 이화여대 약 14%. 이는 곧, 학생 10명 중 7~8명은 대학 안에서의 공동 생활 경험을 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들은 학교 주변 비싼 원룸이나 불안정한 월세방, 혹은 왕복 2시간 통학이라는 조건 속에서 학습은 학습대로, 생존은 생존대로 나뉜 삶을 살아간다. 대학이 공동체여야 한다면, 이것은 공동체가 구조적으로 붕괴되어 있다는 신호다.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칼리지 생활' 그 자체가 교육이다. 두 대학은 학생 전원이 기숙사에서 공동생활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칼리지 내부에서 모든 학습과 일상이 이어지고, 동료와 함께 살며 논쟁하고 협력하는 과정이 교육의 일부다. 학문과 삶이 단절되지 않아야 진짜 교육이 가능하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구조다.
미국 리버럴 아츠 칼리지들은 '거주 기반 공동체'을 운영한다. 윌리엄스 칼리지, 스와스모어, 아머스트 등은 학생 전원 기숙사 거주를 전제로 운영한다. 이는 단지 숙박 문제가 아니라, 토론, 네트워킹, 인격 성장, 학제 간 융합학습의 토대로 간주된다.
통학 시간에 갇힌 청년의 삶은 하루 3시간 이동하며 공부·교류·휴식 모두를 포기한다. 혼자 먹고 혼자 사는 고립된 일상은 우울과 외로움, 자기비하로 이어지는 감정적 소외가 될 수 있다. 비용 앞에서 무너지는 자율성은 어떤 수업을 들을지, 어떤 활동을 할지도 모두 '돈'의 문제로 수렴된다. 이것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대학이라는 제도의 ‘불완전 작동’이다.
종종 이런 질문이 나온다. “기숙사 수용률 100%로 하면 방 남는 거 아냐?” 하지만 그 질문은 기숙사를 단지 ‘침실’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한 발상이다. 남는 방은 고등학생 캠프, 지역 청소년 프로그램, 교환학생 하우징, 혹은 국제 컨퍼런스, 방학 리서치 펠로우십 등으로 교육 공동체를 지역사회로 확장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즉, 기숙사는 언제든 ‘대학의 공공성’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적 인프라가 된다.
지금 우리는 “공부만 하면 된다”는 말이 얼마나 많은 삶의 층위를 잘라낸 채 작동해왔는지를 되돌아봐야 한다. 기숙사는 단지 자는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관계 맺음의 장소, 삶과 배움이 연결되는 접속지, 학문의 공동체가 시작되는 첫 걸음이다. 기숙사가 없는 대학은, 책은 있지만 대화가 없고, 강의는 있지만 친구가 없으며, 지식은 있지만 기억이 없는 곳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곳엔, 대학이라는 이름만 남는다.
#2025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