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털이는 선천적으로 큰 개나 다른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아마도 한 번도 공격을 당하지 않아 그런 암팡진 태도를 가진다고 짐작한다.
하지만 몇 가지 경우는 아주 무서워해 구석을 찾아 숨고 심지어는 ‘바들바들’ 떨기까지 한다. 우선 천둥, 번개가 몹시 칠 때는 공황 상태에 빠져 어쩔 줄 몰라 꼭 아내나 아이들이 안고 있어야 한다. 아마도 전생에 지은 업이 있어 개가죽 쓰고 태어난 업보가 아닌가 생각했다. 듣기로는 대부분의 개가 이러한 행태를 보인다고 하니 어쩌면 개의 본능의 일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사람)도 지금과 같은 고도의 문명을 이루기 전에는 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예를 들면 동의보감(東醫寶鑑)에도,
“천둥 번개 또는 몹시 어두운 때가 닥치는 것은 온갖 용과 귀신이 행동하고 지나가는 것이므로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향을 피우며 단정히 앉아 피해야 한다"
라고 되어있다. 나도 어쩌다 출장길 외국의 낯선 호텔에서 몹시 사나운 날씨를 만나면 마음이 불안해지고 괜히 아내와 아이들이 걱정되는 것을 보면 나는 ’ 개 같은 놈‘인 걸까?
두 번째는 개털이 스스로가 잘못한 일을 하고 그것이 발각된 경우다. 횟수가 많진 않았지만 쓰레기통을 뒤지다 걸렸다거나 배변관리에 실패한 경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꼬리를 말고 엉금엉금 기어 오고 그래도 쓰다듬어 주면서 용서해 주지 않으면 바로 발랑 배를 보이고 뒤집어진다.
하지만 개털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우리 가족 구성원이 고함을 지르며 싸우는 경우이다. 특히 아내가 소리를 지르며 ’ 날개를 털 때‘에는 한참 동안 구석에 숨어 이미 큰 두 눈을 더 크게 뜨고 ’바들바들‘ 떨고 있다. 조그만 강아지가 철없이 까불다가 갑자기 구석에 숨어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면서 ’바들바들‘ 떠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면 누구나 슬며시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참을 인(忍) 자가 세 개면 살인을 면한다 ‘는 말처럼, 날개 털다가 웃으면 당분간 같은 내용으로 다시 날개 털기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개털이 덕분에 양말이나 속옷 빨래를 뒤집어 내놓기, 과자 가루 이불 위에 흘리고 먹기, 욕실 휴지 다 썼는데 모른 척 나오기, 흰 드레스 셔츠나 넥타이에 음식물 묻혀오기 등 여러 가지 항목들이 아내의 날개 털이 범위 외로 분류되는 긍정적인 성과가 유도되었다.
하지만 개털에게 있어 천둥소리 나, 아내의 날개 터는 소리보다 더욱 두려운 소리가 있다. 천둥 쳐봐야 아파트 창문 단속을 하고 tv나 음악을 켜고 아내가 다독이면 이내 안정이 되고, 아내가 날개를 털어봐야 그 시간이 30분 넘기가 어려운데 무려 두 시간 가까이 두려움에 떠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축구 보는 것’이다.
축구를 보는 것이야 별일 아니지만, 축구를 보다 보면 당연히 “슛“, ”때려~“, ”아이고“, ”골~인“ 등등의 다양한 탄성을 낼 수밖에 없는데 이때마다 개털이는 후다닥 도망가 침대 및 또는 커튼 뒤 아니면 욕실 변기 뒤 등에 숨어 ‘바들바들’ 떨고 있다. 경기가 소강상태 이거나 하프타임 휴식시간 등에는 슬며시 나왔다가 다시 ”슛~“하고 소리를 지르면 여지없이 도망가는 것이 반복되는 것이다. 개털이 입장에서 보면 연장전을 한다든지, 그것도 끝나지 않아 승부차기까지 가는 것은 더 고역일 수밖에 없는 일일 것이다.
잘못했어요.
눈을 가늘게 뜨고 꼬리를 말고 엉금엉금 기어 오고 그래도 쓰다듬어주면서 용서해 주지 않으면 바로 발랑 배를 보이고 뒤집어진다. 더 이상 야단 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