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커지면 아이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어 집이 넓어지고 주말이 한가해진다. 그래서 가끔이긴 하지만 ‘두 치’가 ‘한 치’ 대접을 받기도 한다. 예전에 아이들 건사에 분주했던 주말이었는데 점차 아내와 시간 내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가까운 산을 가기로 했는데 아내와 개털에게는 ‘대모산’이 가장 적당했다.
개털이는 여전히 아내와 나 사이에서 ‘양몰이’를 하면서 깡충깡충 즐거워했다. 다만 점점 계단 오르내리는 것은 힘들어하고 특히 정상 가까운 곳은 데크를 이용해 계단을 설치해서 계단 폭도 넓고 경사도 급해 내가 개털 이를 안고 다녔다. 이때만큼은 아내가 앞서가 개털이 시야에 보인다면 내가 안고 오래 걸어도 얌전히 있었다.
개털이는 하산 길 중간에 비교적 길게 이어진 흙길을 무척 좋아하는 것 같았다. 이 흙길이 끝날 즈음에 ‘대모산 불국사’라는 고졸하고 아담한 사찰이 있다. 고려 공민왕 때 창건된 절이라고 하는데 무엇보다 활짝 열려있는 사찰이란 점이 좋다. 담은 물론 흔한 일주문도 없고 어디까지가 절이고 어디까지가 아닌지도 불분명해 보였다. 그래서 개털일 데리고 참배하기에도 눈치 볼 일 없어 편했다.
우리나라 조계종의 소의경전이라고 하는 금강경엔,
“어떤 곳이던 만약 이 경전(금강경)만 있으면 일체 세간의 천신들과 사람들과 아수라가 마땅히 공양하여야 한다. 마땅히 알라! 이 곳이 곧 탑(塔)이라는 것을!(1)”
이라고 했지 어느 한 줄 넓은 땅에 담을 높게 쌓고 큰 집을 짓고 거대한 금칠한 부처상을 들여놓고 그것을 숭배하라고 한 곳은 없다. 그러한 시각에서 보면,작지만 초라하지 않고 정갈하지만 까탈스럽지 않고 경건하지만 위압적이지 않으며 법당 한 구석에 금강경 사경 책이 놓인 불국사가, 보기에 따라서는 불법(佛法-부처님 범)을 여법(如法-법대로,법과 같이) 히 구현한 사찰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그래서 대모산 하산 길에 나와 아내는 매번 개털이 와 이곳을 찾아 참배했다. 내가 전각에 참배할 때는 아내가 개털 이를 데리고 있고 반대의 경우엔 내가 개털 이를 데리고 있었다. 잠깐 동안의 참배가 끝나면 개털이는 재회를 몹시 나 기뻐했다.
하산길이 끝나갈 즈음 주차장 가까이 내려오면 푸성귀를 파시는 분이 몇 분 계신다. 근처에 작은 밭들이 보이는데 그곳에서 재배하신 것을 파시는 것 같았다. 철에 맞는 싱싱한 채소를 비교적 싼값에 사는 맛도 쏠쏠하고 그러한 채소를 다듬어 저녁상을 보는 것도 좋다. 내 경험에는 산에서 막걸리 한잔을 마시는 것도 좋지만 더 좋은 것은 집에 와서 다 정리한 후 조촐하게 상을 봐 한잔 하는 맛이 더 좋다.
이렇게 산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개털이는 또 큰일을 해낸 것처럼 깡충깡충 뛰면서 생색을 낸다. 하지만 이미 흙 강아지가 된 개털이는 간식 먹기 전에 목욕부터 해야 할 운명이고 목욕을 시키다 보면 아내는 털을 다듬는다, 발톱을 깎는다 하면서 개털이 약을 있는 대로 올리다가 개털이 폭발 직전에야 끝낸다. 나는 드라이와 개털이 수건 두 장을 욕실 앞에 가져다 둔다.
대모산에 다녀온 날은 아내도 그렇지만 개털이도 더 곤하게 잠을 잔다. 개가 코를 곤다는 사실은 대모산 다녀온 어느 날 침대 밑에서 이상한 소리가 간헐적으로 나서 그 음원(音源)을 찾다가 처음 알았다. 녀석은 코를 골다가 움찔움찔하는 것이 꿈도 꾸는 것 같았다. 순간, “개털아! 다음 생에는 개가죽 쓰고 나오지 말고 사람으로 나오면 좋겠다. “ 하는 축원이 떠올랐다. 생뚱맞은 생각이지만 누구에게 피해 주는 생각도 아니고 하니 문제 될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내일 아침 개털이 코 곤 사실을 이야기하면 믿어줄까? “ 하는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1) 출전『무비스님 금강경 강의』「제15. 지경 공덕분(持經功德分)」pp.177-178. 불광출판사. 원문은 “在在處處若有此經, 一切世間天人阿修羅, 當知此處則爲是塔”(재 재처처약유차경, 일체 세간 천인 아수라,당 지차처 즉위시 탑)이다. 김용옥은 이 부분의 설명에 있어, “교회론의 궁극적 해결”임을 갈파했고 “성경 한 구절 한 구절이 드높은 교회당보다 더 드높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회당”이라고 일갈했다.(김용옥. 도올 김용옥의 금강경 강해. pp. 294-295. 통나무.2003).
** 사진 설명 : 개털이는 여전히 아내와 나 사이에서 ‘양몰이’를 하면서 깡충깡충 즐거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