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털과 산책을 가거나 개판에 갈 시간이 안 될 경우 아파트 뒤편에 있는 쌈지 공원에 간다. 잔디밭이 정갈하고 소나무와 감나무 대추나무 단풍나무가 어울려 있고 원두막과 의자도 갖추어져 있다. 가끔 길냥이도 출몰하고 몇 가지 종류의 새들도 오는 곳이라 아쉬운 대로 바깥바람을 쐬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특히 아내가 시간이 없을 경우 나 혼자 개털을 데리고 나오기에는 가장 적합한 곳이다. 멀지도 않고 시간도 길지 않지만 ‘개털이 산책시켰다’는 공치사가 가능한 이점이 있다.
그날도 개털일 데리고 쌈지공원에 가서 나는 가벼운 책을 읽고 있었고 개털이는 잔디밭에서 냄새를 맡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후에 잔디밭을 보니 개털이가 보이지 않았다. 걸터앉았던 의자에서 일어나 찾아보니 평소 잘 가지 않던 회양목이 모여 있는 곳에서 등을 땅에 대고 열심히 뒹굴고 있었다. “뭐하니?” 했더니 놀란 듯 ‘후다닥’ 일어났다. 개털이가 ‘놀란 듯’ 할 때는 스스로가 뭔가 사고 쳤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이다. 도망가려는 것을 잡아 세워 살펴보니 뭔가에 대고 등을 비볐는데 냄새가 아주 고약했다. 똥냄새 같기도 했고 뭔가 썩은 냄새 같기도 했다.
녀석을 쌈지공원에서부터 집어 들고 집으로 가기로 했다. 평소에는 당겨서 품에 안고 다녔는데 냄새가 하도 심해 도저히 안을 수가 없어 ‘앞으로 나란히’ 자세로 들었다. 냄새 때문에 엘리베이터도 이용할 수 없어 비상계단으로 올라갔다. 일단 욕조에 넣고 물 온도를 적당히 맞춘 후 샤워가 너무 강해지지 않게 조절해 얼굴을 피해 살살 물을 뿌려 줬다. 개털이는 싫기는 하지만 아주 싫은 것은 아닌 정도로 반응했다. 나는 욕실을 살펴 개털이 샴푸를 찾아 가급적 살살 샴푸를 묻히고 다시 물을 살살 뿌려 줬다. 생각해 보니 아이들은 둘 다 내가 다 목욕시켜 키운 것 같은데 개털이 목욕을 처음인 것 같다. 욕심 같아서는 샴푸를 좀 더 했으면 좋을 것 같은데 개털이가 싫은 내색을 해서 적당히 하고 큰 수건으로 개털을 감아 데리고 나왔다. 딸아이 방의 헤어 드라이를 찾아 미풍으로 살살 털을 말려 줬는데 어느 순간 개털이가 부르르 털을 털더니 앙탈을 해 놔 줬더니 깡충깡충 뛰며 눈을 반짝이고 나를 쳐다봤다. 목욕을 했으니 간식을 달라는 것인 줄 알고 간식까지 챙겨 주었다. 수건을 치우고 개 샴푸를 제자리 놓고 손을 씻고 있는데 아내가 돌아왔다.
문을 열면서부터 오만상을 다 쓰며 “이게 무슨 냄새야” 하는 것이었다. 간단히 개털이가 사고 친 이야기를 해주고 내가 직접 목욕시킨 이야기도 해줬다. 아내는 바로 개털을 잡아 냄새를 킁킁 맡더니 몇 가지 이해할 수 없는 언어의 음절로 놀라움, 노여움, 한심함, 속상함 등등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개털은 다시 욕실로 잡혀 들어갔고 다시 물소리가 났다. 내가 살며시 보니 개털 이를 ‘목욕’ 시키는 것이 아니라 ‘손빨래’ 또는 ‘운동화 세탁’ 하는 수준이었다.
대강 샴푸를 끝내고 나를 부르더니 ‘개털이 수건’을 가져 오란다. 알려주는 장소에 가보니 낡긴 했지만 깨끗한 수건이 접혀 있었다. 아마도 낡은 수건은 따로 개털이 수건으로 건사하는 것 같았다(내가 좀 전에 쓴 큰 수건은 새 수건이었다). 샴푸를 마친, 아니 ‘손빨래’가 끝난 개털이는 다시 수건 위에 올려졌고 아내의 손가락에 이마를 한 대씩 맞으면서 헤어 드라이 세례를 받고 있었다. 도망가려고 하면 바로 잡히고 한 대 줘 박히고 다시 헤어 드라이의 강한 바람에 노출되길 몇 번인가 반복했다. 개털이 야단치는데 가끔 내 이야기도 하는 것 같았는데 나는 아까 개털에게 사용한 새 수건을 아내 몰래 빨아야 해서 그냥 못 들은 척했다.
나는 그 예쁜 개털이가 왜 그런 고약한 냄새가 나는 물체 (고양이 똥이던, 개똥이던 아니면 다른 물체이던) 위에서 뒹굴었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검색을 해 보았다. 다른 것보다 바로 눈에 띈 것은 “개의 냄새 맡는 능력이 사람의 1만 배나 되며, 이는 올림픽 규격 수영장 20개를 채울 물에 액체 한 방울을 떨어뜨려도 감지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공항에서 보던 마약 탐지견이나 폭발물 수색을 하던 군견이 후각 능력을 활용한 것임이 생각났다. 동시에 최근에 내가 예전에는 쓰지 않던 향수를 쓰기 시작했다는 것도 생각났다. 아마도 이 녀석은 내 향수 냄새가 마음에 들어서 자기도 자기가 마음에 드는 향수로 치장했거나, 아니면 내 향수 냄새가 마음에 안 들어 나에게 자기가 느끼는 향수 냄새를 알려주기 위해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검색하는 내 의자의 발치 조금 떨어진 곳에 등을 보이고 부엉이처럼 앉아있는 개털이가 얄밉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나는 그날 이후 향수는 물론 로션, 스킨 등 향이 강한 다른 화장품을 일체 쓰지 않기로 했다. 다만 세수나 면도 후 얼굴이 당기는 것은 사실이니 ‘베이비오일’을 대신 사용한다. 그래서 그런지 몇 년이 지난 지금 내 피부는 아기 엉덩이처럼 부드럽고 뽀송뽀송하다.
** 위 사진 설명.
개털이 사고 친 현장.다른 세대의 아파트 뒷 베란다와 접한 부분이라 가급적 가지 않는다. 개털이 뒤로 보이는 회양목 무리 밑에서 뒤집어 뒹굴다 고약한 냄새로 범벅이 되었다.
** 아래 사진설명.
쌈지공원 산책길.
아파트 뒤쪽이라 좁기는 하지만 인적이 없고 조용해 잠깐 다녀오기는 그만이다.
목욕한 개털이
개털은 다시 욕실로 잡혀 들어갔고 다시 물소리가 났다. 내가 살며시 보니 개털 이를 ‘목욕’ 시키는 것이 아니라 ‘손빨래’ 또는 ‘운동화 세탁’ 하는 수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