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이 개 중절이 달도자라면 개털은 달도자! 이 뜬금없는 소리의 뜻은,(1) 쉽게 설명하자면 기뻐할 때 기뻐하고 슬퍼할 때 진심으로 슬퍼하는 것, 악어의 눈물과 같은 거짓 눈물을 흘린다거나 괜히 노란 잠바(2) 입고 헛소리 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감정에 충실하되 그 감정이 주변 상황과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 그것이 조화이고 도(道)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이다.
이 말이 맞는다면 개털이는 “도(道) 통한 개다” 단 한 번도 자기의 감정을 숨기거나 거짓으로 표현한 적이 없었다. 또한 잘한 것(예를 들면, 간식 주는 것)을 잘못했다고 하고 잘못한 것(예를 들면, 싸우는 것)을 잘했다고 한 적도 한 번도 없었다. 물론 하찮은 강아지 한 마리 가지고 지나친 비약이라고 할 수도 있고, 본능에 따른 단순한 행동에 지나친 주관을 대입한 편협한 오류라고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개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나름대로 사태를 인식하고, 판단하고, 행동한 것의 결과이다.
내가 소리 지르는 것을 무서워 하지만 그것이 아내를 향했을 때는 두려운 마음을 누르고 나에게 분노하는 것은 좀 복잡한 본능인가? “먹지 마!, 기다려!” 하면 먹지 않고 기다리는 것은 본능인가 아닌가? 본능을 참는 본능도 본능인가? 나는 아주 조금이지만 개털이가 돼서 개털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경험이 있다. 그래서 개털이는 그 감정의 표현이 숨김이 없고 주변의 상황과 딱딱 맞는 달도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 주변에 도통한 강아지들이 무척 많을 것이다.
같은 논리에서 생각해 보면 어떤 노란 잠바는 도(道)랑 상관없이 딴 게 통한 사람들이 입은 것이 분명하다.
(1)『중용(中庸)』이라는 책의 1장의 일 부분이다. 해당되는 구문은 아래와 같다. ‘희노애락지미발(喜怒哀樂之未發), 위지중(謂之中); 발이개중절(發而皆中節), 위지화(謂之和). 중야자(中也者), 천하지대본야(天下之大本也); 화야자(和也者), 천하지달도야(天下之達道也). (굵게 표시한 부분이 위에서 인용한 부분이다) - 기뻐하고 성내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정(情)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 상태를 ’ 속‘이라는 의미로서 중(中)이라 하고 그것이 나타나서 모두 절도(節)에 알맞게 된 상태를 것을 화(和)라 한다. 중(中)은 것은 천하의 큰 뿌리요, 화(和)란 천하에 통하는 도리이다. (이기동 역해. 2017. 『대학. 중용 강설』 성균관 대학교 출판부. pp116.)
(2) 우한 코로나와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의학을 잘 모를 것 같은 정치가들이 입고 나오는 의상이다. 나는 감염병과 같은 의료 관련 문제가 생기면 의학 전문가가 해결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노란 잠바는 의학을 공부한 전문가인 의사가 돌림병 막을 방법을 강구한 후 이를 행정적으로 시행하기 위한 실무를 진행할 때 입는 것이맞다. 즉 노란 잠바는 노란 잠바의 역할을 감당할 능력과 의지와 책임이 있는 경우에만 노란 잠바다.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초 엘리트’가 입고 전혀 상관없는 일에 대한 의사 결정을 하고 책임 안 지는데 악용될 수 있다.